월급쟁이가 보는 글
'실제로 기태의 젊은 시절 꿈은 훌륭한 어른은 못 돼도 산뜻한 중년은 되는 거였다. 청결한 옷을 입고, 타인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젊은 세대를 지지하고, 주변에 해가 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
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 175쪽
소설 속에 나오는 기태의 젊은 시절 바람과 같은 선배가 한 분 있었다.
청결하다 못해 입성이 남루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싫은 소리도 곧잘 하며, 젊은 세대를 아우르다 실패한 적은 있으나 적어도 주변에 해가 되지는 않았던 선배였다.
나와는 세대 차가 거의 나지 않아 내 젊은 시절 그 선배는 닮고 싶은 인품을 가진 선망의 대상 그 자체였다.
그와 함께 일했던 기간은 5년이 채 되지 않지만, 그가 일하는 곳이 어디인지,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늘 관심을 가졌다.
25년 전 내가 그에게 품었던 일에 대한 열정과 인간성에 관한 연모는 요새 젊은 후배들이 느끼는 것과 많이 달랐다.
그 선배와 젊은 세대 후배들 사이에 어중간하게 위치한 다른 후배 하나가 그 선배에 관하여 평가했다.
한마디로 고지식한 꼰대라는 것이다.
나는 신입 때 2년 정도 앞서 입사한 그 선배에게 일이나 인간적인 면에 매료되었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반만 따라 해도 스스로 만족할 만큼.
세상에는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는 그들 대부분이 잘 하는 말은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다" 아닐까.
나와 그 선배는 바뀐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세대가 되고 말았다.
최근에 선배의 다른 소식을 들었다.
어쩌다 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고 했다.
충격을 받아 이제는 은퇴한 다른 선배한테 전화를 걸었다.
다른 선배는 그 선배에 관하여 '막중한 책임감으로 일과 후배들을 건사하였으나, 막상 직장에서는 외면당하고 도태된 불행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그처럼 세상 고민 다 안고 살아 봐야 어차피 직장 일밖에 아무것도 아닌데 너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했다.
'몸이 건강할 때는 수천 가지 고민이 생기지만, 몸이 아프는 순간 고민은 딱 하나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는 일과 사람을 챙기려다 병을 얻었 병에 걸렸다.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이제는 그를 본받지 않겠다는, 본받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나를 지배하려는데, 나는 그것마저 못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