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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아직도 네 시

다자녀 가장이 보는 글

by 가리느까

"아빠, 인도는 아직도 네 시야."


초4 막내 아이가 한 말을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인도네시야."


풉!

이런 걸 쿨하다고 할지, 시크하다고 할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둘 중 하나인 건 확실하다.

그 반대라면 이렇게 물었겠지.


"아빠, 인도는 몇 시~~게?"


그러면 잠시 생각하게 된다.

난센스 퀴즈였음을 깨닫는 동안 어디에서 답이 툭하고 튀어나올 터이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재미있었지만 "재미없어?"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에 대한 식상한 반응에 아이가 실망했을 수도 있었다.


아이는 아마 그 누군가가 '정답'을 먼저 말하지 못하게 하는 자기만의 장치를 개발한 것이다.


보통 이런 날은 한 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몰라 무지 소중했을 법한, 고급스럽게 잘 포장된 초콜릿을 아빠가 자주 쓰는 물건 주위에 눈에 띄게 올려놓고 가더니, 잠시 후에 되돌아와 놀이용 고무 같은 물렁한 걸 가져와 보여주며 "이거 학교에서 내가 (직접) 만든 거야" 하고는 큰방 욕실에 들어갔다.


"한율아, 이게 뭐지?"


막내 아이는 "비누야. 이제 이거 써" 하면서 빨갛고 둥근 천연비누 하나를 스텐 비누곽 위에 올린 후에 거품을 내어 보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거실 쪽으로 향했다.


'내가' '직접' '만든' 비누임을 티 내거나 강조하거나 생색내지 않았다.

나한테는 찾을 수 없는 시크 그 자체였다.


오늘은 정말이지 막내가 다 큰 어른이 된 듯싶었다.

어서 내일 아침이 되어 곤히 잠든 아이를 만나고 싶다.

천진난만 하던 아이가 듬직해 보였다.



아이가 놓고 간 비누를 다시 내려다 본다.

비누는 욕실 안 하얀 배경에 자신의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비누가 예쁘면 얼마나 예쁠까 싶지만 가없이 예쁘다.

세정력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비누를 볼 때마다 개구쟁이 막내 아이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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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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