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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재영 Apr 01. 2023

9. 생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가?

내 인생의 남은 날은 얼마일까?

살면서 잊기 쉬운 사실들은 인생의 끝이 있다는 것과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조정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인 것 같다.


특히 반복되는 쳇바퀴 속에서는 아무 이변 없이 영원히 하루하루가 반복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그제야 그 쳇바퀴 속이 좋았었구나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인생에서 우리를 무엇이 이끄는 지도 생각해보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은 것 같다. 더더욱이 어렴풋한 두려움 속에서 그 두려움이 없어질 때까지 우리는 더더욱 세차게 쳇바퀴를 굴린다.


남은 인생을 헤아려보고 사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닌 것 같다. 그건 어쩌면 비범한 사람의 일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또 하기 쉽지 않은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이제는 하게 된다.


전에 한국인 최초로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라는 교수가 학교에서 축사를 한 적이 있는데 듣다 보니 그때 나를 이끌고 있는 어렴풋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마주한 적이 있었다. 수를 공부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인생의 남은 날을 더 잘 세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축사의 내용 중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생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어떤 날은 그저 무력하게 이 한가운데에서 조금 더 멀어지길 바라며 하루를 흘려보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뜻밖의 열정을 만나 조금 더 욕심을 내기도 한다.


모두가 똑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었다. 이 질문에 답을 하며 다시금 생의 한 가운데를 인식해 보려고, 그 남은 삶을 잘 살아보려고 애를 써본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살아보니 알겠지만 그럼에도 생각해 보면 이런 순간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에 그렇게 생각해 본다.


내 이야기보다 남의 말들이 더 많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어려운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다 보니 떠오르는 김재진 님의 시로 이번 질문의 대답을 마무리하고 싶다.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김재진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 않고

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온다던 소식 오지 않고 고지서만 쌓이는 날

배고픈 우체통이

온종일 입 벌리고 빨갛게 서 있는 날

길에 나가 벌 받는 사람처럼 그대를 기다리네

미워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까닭 없이 자꾸자꾸 눈물만 흐르는 밤

길에 서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 보네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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