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까?
"유전"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얼마나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너무 두루뭉술하니까, 범위를 조금만 좁혀보자.
'성질머리'는 유전 될까?
"하여튼, 지 아빠(엄마) 닮아서 성질머리가 저 모양이지!"
하는 말은, 근거가 있는 말일까?
뭐, 천생 문과인 나는 평생을 가도 대답하지 못할 질문이다.
오늘은 비록 비과학적이겠지만, 내 나름의 답과 근거를 제시하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질머리도 유전이 되나요?' 하는 질문에 대한 내 답은,
yes다.
자, 그럼,
대체 누구의 '성질머리'를 이야기하려고 하느냐,
가계도에는 미처 그리지 못했지만, 조선의 21대 왕, 영조다.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기어코 굶어죽게 한 영조를 보면서 다들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거다.
'하여간 성질머리 하고는'
그렇다면 영조의 그 '성질머리'는 누구로부터 온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숙종이다. 영조의 아버지.
개인적으로, 조선을 다스렸던 27명의 왕 중 불같은 성질로 숙종을 이길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가지 요인이 그 '성깔'을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빵빵한 정통성이고, 다른 하나는 역시 유전자다.
정통성 이야기는 일단 조금 제쳐두고, 유전자부터 (드디어)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숙종은 현종과 명성왕후의 외아들이다.(뮤지컬로도 만들어진 고종의 그 분은 명성"황"후다.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명성왕후는 그 이름에 걸맞은 명성을 갖고 있다. 개드립ㅈㅅ
이 역시 한번쯤은 들어봤을지도 모른다.
아들(숙종)의 천연두를 낫게 하기 위해 한겨울에 흰 소복만 입고 목욕했던 어머니의 이야기.
그러다 걸린 감기가 악화되어 결국 목숨까지 잃은 이야기.
하지만, 명성왕후의 진면모는 사실 '조정'에서 드러난다.
엥? 왕후가 조정? 하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당연한 의문이다. 하지만 이 어머니에게는 사회적 통념보다, 지엄한 법도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던 모양이다.
숙종이 14살의 나이에 즉위한지 1년 남짓 지난 1675년의 일이다.
외아들로 자란 숙종은 삼촌인 복평군, 복선군, 복창군 형제를 잘 따랐다. 인평대군의 세 아들은 그 군호 덕에 '삼복'이라 불렸다.
그런데, 이 삼복이 궁중의 나인과 정을 통해 자식까지 낳았다는 고변이 들어왔다. 숙종은 일단 복선군과 복평군을 잡아들여 국문하게 했으나, 하루만에 풀어주었다.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삼복의 변'이자 나인들의 소매가 붉은색이라 하여 '홍수의 변'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이렇게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아, 한 가지를 빠뜨렸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종친을 고변한 청풍부원군 김우명은 무고죄로 처벌받게 되었다. 그렇게 숙종은, 삼복 형제를 계속 자신의 곁에 두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그런데, 다음날 문제가 터졌다. 숙종이 밤에 김우명을 비롯한 신하들을 궁중으로 불러들였는데, 정작 오라는 김우명은 안 오고, 명성왕후가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왔다. 그녀가 눈물 섞인 목소리로 풀어낸 이야기는 이러했다.
"미망인이 세상에서 살 뜻이 없어 늘 죽지 못한 것을 한탄하는데, 이제 망측한 일이 있어 선조(先朝)에 관계되니, 대신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선왕께서 복창(福昌) 형제를 두텁게 사랑한 것을 외신(外臣)들이 아는 바인데, 궁중에서 예모(禮貌)가 지극히 엄하여 나도 선왕의 지극하신 뜻을 몸받아 차이 없이 대우하였다. 이제 이들이 범한 것은 내가 잘 아는 바이나, 드러나게 되면 죽을 처지에 나아가게 될까 염려되므로, 내가 편의한 대로 처치하려 하였는데, 주상(主上)은 어려서 곡절을 모르신다. (후략)"
- <숙종실록> 권 3, 숙종 1년(1675) 3월 14일
요약하자면, 선왕(현종)이 귀애했던 복창 형제가 망측한 일을 저질렀고, 그건 내가 잘 아는데, 주상은 어려서 잘 모른다는 이야기다. 복창 형제를 그냥 풀어준 것이 잘못되었다는 거다.
또, 이런 말도 한다.
"선왕께서 이들을 사랑으로 대우하신 뜻이 장차 헛된 데로 돌아갈 것이므로, 그 판부(判付)의 말을 보고는 곧 선왕의 능 옆에서 죽고 싶었으나, (...) 드러내어 밝히지 않고 죽으면 지하에서 선왕을 뵐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선 죽는 것을 참고 대신에게 말하려는 것이다."
- <숙종실록> 권 3, 숙종 1년(1675) 3월 14일
막장드라마도 이런 막장드라마가 없다.
대비가 무려 자신의 목숨을 빌미로 임금과 신하들을 협박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복창군 형제를 고변했다가 도리어 무고죄를 뒤집어 쓴 김우명이, 명성왕후 김씨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친정을 살리기 위해, 한밤중에 조정에 나아가 엉엉 운 것이다.
실로 대단한 여인이다.
이러한 어머니의 '성질머리'를 그대-로 물려받은 숙종은, 어머니보다 더 대단한 아들이었다.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야사이긴 한데, 숙종이 어릴 때, 머리 빗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해서, 숙종의 시중을 들던 궁녀들이 매번 애를 먹었다고 한다. 어느 날, 명성왕후가 그걸 보고, '애 하나 못 잡아서 이 난리냐'며 자신이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크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명성왕후가, 아들의 등짝을 날려버린 것이었다.
원자-세자 테크를 타고 있는 귀하디 귀한 아들의 등짝을.
숙종의 '성질머리'는 그가 행한 정치를 보면 더욱 잘 드러난다.
숙종시대를 대표하는 정책(?)은 단연 환국이다.
쉽게 말하면 왕 마음에 안들면 싸그리 죽여버리고 새로운 사람들로 바꾸는 정책이다.
목적은, 당파싸움 근절.
이런 무지막지한 방법이 가능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숙종의 빵빵한 정통성이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숙종은 현종의 외아들이다. 또, 현종은 효종의 외아들이다.
반정을 일으킬래도 저 왕을 대신할 다른 종친이 없다. (삼복 형제는 결국 역모로 엮어 처형당한다)
정리하자면, 어머니 명성왕후로부터 물려받은 대-단한 성질머리에, 빵빵한 정통성까지 더해져, 숙종 치세의 강력한 왕권이 구축될 수 있었고,
청풍 김씨 쪽에서 넘어온 유전자는 오래오래 살아남아 꼬장꼬장한 영조나, 신하들에게 욕설을 퍼붓던(...) 정조에까지 대대손손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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