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라는 그림자, 행복이라는 빛
인생은 때론 너무도 쉬워 보이지만, 또 어느 날은 도무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어렵게만 느껴진다. 어떤 날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척척 풀리고, 세상이 내 편인 듯한데, 또 어떤 날은 모든 것이 나를 외면하는 것 같다.
감정도 그렇다. 예상치 못한 감정이 불쑥 찾아올 때가 있다. 그 감정에 휘말리면 이유 없는 우울함과 비관적인 생각이 나를 집어삼킨다.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걸까?
나는 운동을 통해 감정을 다스린다.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데 있어서 운동만큼 즉각적인 효과를 주는 것도 드물다. 그래서 나는 감정이 흐려질 때면 몸을 움직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감정이 해소되진 않는다. 하루 종일 운동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고 다짐해 보지만,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는 긍정마저 억지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고 감정을 부정할 수는 없다. 슬픈 날에는 슬픔을, 즐거운 날에는 즐거움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게 주어진 삶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돈을 버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도, 결국은 행복을 향한 여정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을 찾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신은 우리가 이 ‘행복’이라는 환상을 좇으며 살아가도록 설계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보상을 주듯 아주 잠깐,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행복이 늘 가까이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 사실을 모르고 산다면, 우리는 평생 ‘되지 않는 무엇’만을 좇다가 인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수행’이라는 단어를 되뇌며 산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며 내 안의 진동수를 낮추지 않기 위해 애쓴다. 내가 존경하는 김승호 회장도 그렇게 살아간다. 그는 주중에 농사를 짓는다. 많은 이들이 꺼리는 그 일을 기꺼이 해내는 이유는, 세상의 이치를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 성취로는 결코 오래도록 즐거움을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삶은 대부분 겉모습일 뿐, 그 속의 진짜 감정은 알 길이 없다. 결국 행복은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서 결정된다.
나는 나의 성공보다,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을 주었을 때 더 깊은 행복을 느낀다. 나의 성취는 오래가지 않지만, 누군가를 도왔다는 감정은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는다.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과연 어떤 감정이, 어떤 삶이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행복을 만들어내는가. 그리고 결론은 명확하다.
올바르게 사는 삶, 타인을 불행하지 않게 하는 삶, 내 영혼이 조금씩 성장하는 삶.
그 길 위에야말로 진정한 행복이 피어난다.
물론 물질적 풍요도 필요하다. 풍요는 에너지이며, 그 에너지가 있어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그 에너지가 있어야 존경을 받고,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원천이 된다.
우리는 결국 서로의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기란 어렵다. 우리의 오감이 이미 그것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다시 우울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감정 또한 인생의 절반이며, 행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대비의 색임을.
우울이 있기에 행복은 더욱 소중해진다.
그 양면을 모두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