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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뚜 Aug 07. 2021

난임 일기

#14

인공수정 3차가 되다 보니, 병원을 다니는 열정이 미지근해졌다. 처음에는 '진짜 열심히 해야지! 한 번에 되는 기적이 나에게도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두 번째는 '첫 번째에 내가 분명 실수했던걸 이번엔 되풀이하지 말자! 이번에는 꼭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더 정성을 쏟고 열심히 병원도 다녔던 것 같다. 인공 2차 실패 소식을 듣는 순간 나의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희망도 사라지고, '과연 내가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온통 내 머릿속을 지배했고, 그러다 보니 병원에 다니는 게 무슨 의미인가 의미를 잃기도 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에서를 보면, 사람이 의미를 잃어버리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사람에게 얼마나 의미가 중요한지 실존주의에서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 키워드인지 잘 나타난다. 그런데 나는 인공수정 2회 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의미를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이 의미를 잃어버리니 병원에 가는 것도 귀찮고, '이게 되겠어?' 하는 마음이 들다 보니 해야 할 일도 까먹었다. 난임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시간에 맞춰서'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약도 시간에 맞춰서 규칙적으로 먹어야 하고, 주사도 비슷한 시간대에 맞아줘야 하고 질정도 시간에 맞춰서 넣어야 한다. 그런데 1,2차 때는 그래도 의욕과 내가 아이를 낳아야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서 하는 게 어려웠지만 그래도 할만했다. 근데 출산에 대한 많은 의미를 잃어버린 지금은 시간에 맞춰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내가 일부러 안 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알람을 맞춰 놓는 것을 까먹는다던지 알람 소리를 들어도 약을 먹어야 하는 사실을 잊고 시간이 지나고 깨달아서 그제야 먹는다는지 하는 일들이 생겼다. 그리고 주사를 보통 출근하기 전에 맞고 오는데, 오늘은 주사를 놓는 날도 아닌데 달력을 보고 '헐! 오늘 주사 맞았어야 했는데' 라며 당황을 했지만 알고 보니 오늘은 주사를 맞는 날이 아니었다든지 이런 일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것을 보고, 정신을 아무리 똑바로 차리려고 해도 정신이 제대로 안 들었다. 의미를 잃어버리니, 희망도 사라졌다. '이번엔 잘 될 거야.'라고 주변에서 하는 말들이 그냥 무의미해 보였고 형식상 하는 말로 들렸고 그런 얘기를 듣는 지금 이 시간이 아깝고, 귀찮게 느껴졌다. 아직 시술 날짜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 날짜를 피해서 잡아야 하는데 라는 생각도 계속하니까 시술도 조금 귀찮게 느껴졌다. 육아 예능을 보거나, 지나가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듣고 떼쓰는 모습을 보면 '아 꼭 출산을 해야 하나, 애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오히려 더 하곤 했다. 그리고 주변에 어쩌다 보니 난임 시술을 받고 있다는 것들을 알리게 되었는데, 시술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꼭 뒤어 붙이는 말은 '안되면 말고'라는 말을 꼭 더했다. 나는 그냥 이 상황에 너무 지쳐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해서 찾아야 했고, 나중에 임신을 하지 않아도 친구들에게 '나 괜찮아' 하면서 동정표를 얻고 싶지 않아서 한 발 뺄 수 있는 멘트를 하나씩 날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 삶의 패턴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연애를 할 때에도 온전히 그 사람에게 올인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yes'라고 답할 수 있는 상대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사람도 사랑하지만, 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온전히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다 줄 수 없다며 그럴듯하게 포장하긴 했지만 나는 무언가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붓고 올인할 수 있는 용기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지금도 내가 상처 받지 않으려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한 발은 다른 쪽으로 빼놓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시술을 그만두거나 아이를 낳는 것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의 의미를 찾는 것과 이것에 내 마음과 정성을 쏟을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긍정의 힘이 나에게는 필요한 것 같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말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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