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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뚜 Sep 18. 2021

난임 일기

#18

인공수정 3회 실패 후 고민이 많아졌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이제 한 달 정도 휴식을 취하고, 시험관을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난 아직 시험관을 할 경제적, 마음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일단은 백신을 맞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항상 풀지 못한 숙제가 있다. '임신' 그래서 나의 모든 생각의 끝에는 늘 '임신'이 있었다. 백신 1차를 맞고, 2차를 맞을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가 늘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지하철 환승을 하려고 구간을 지나는데 '난임부부 지자체 한약 지원'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사업이 2월부터 시작을 했는데 선착순 지원이 마감이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것을 발견한 시기가 8월 말이어서 담당 부서에 연락을 해봤더니 아직 예산이 소진되지 않아서 지금 지원이 가능하다고 신청을 하라고 했다. 이것을 하려면 조건이 한방 시술을 받는 동안 양방 시술은 받을 수 없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래서 사실 올해가 가기 전에 시험관을 시작해볼까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는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시험관을 하기 전에 나의 몸 상태를 조금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당장 시술을 진행하지 않고 한약을 먹는 것이 좋겠다고 남편과 상의 끝에 난임부부 한약 지원에 신청을 했고 선정이 되었다. 내가 원했던 1 지망 한의원에 선정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고, 관련 서류를 등기로 보내주기로 했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서 등기를 받기 못했다. 그래서 우체국에 직접 찾으러 가야 하는데 주말은 시간이 안되고 평일 운영 시간에만 가능하다고 해서 정말 곤란했지만, 반송 기한을 연장하여 남편이 대신 받아 주었다. 그렇게 어렵게 지원 통지서를 받아서 한의원에 연락을 했는데 이번에는 한의원과 일정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다. 나는 회사를 가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집 근처 한의원 중 야간진료를 하는 한의원에 지원을 한 건데, 첫날에는 피검사를 위해서 평일 낮시간에 방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안내받은 사실이 없기 때문에 조금 불쾌하긴 했지만, 그래도 방침이 그렇다고 하니 따르려 했다. 병원에 지정된 원장님이 계신데 그분에게 진료를 받아야 돼서 가능한 날짜와 시간이 도저히 안 맞아서 원래는 한약 지원을 포기하려고 보건소에 연락을 했는데, 2 지망 한의원으로 바꿔주실 수 있다고 해서 결국 집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동네 한의원으로 갔다. 물론 난임 한의원으로 유명한 한의원들이 있겠지만 내 일정을 맞출 수 없는 곳이라면, 다닐 수도 없기 때문에 그냥 나는 일정이 가능한 한의원을 방문했고 될 사람은 어디든 된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몸이 찬 편이라 임신을 하기에 건강한 몸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어느 한의원이든 약만 잘 내려주면 상관없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방문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한의원 원장님도 실장님도 친절하시고, 맥도 잘 봐주시고 침도 잘 놔주시고 진료와 처치를 잘해주셨다. 바로 집 앞이니까 다니기도 편리하고 동선도 용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수정을 하지 않는 지금도 나는 마음속 한편에 남아있는 숙제 때문에 한약 지원을 받기로 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쉬운 과정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뭔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남아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적어도 내가 40대가 됐을 때, 그때도 만약 애기가 생기지 않았을 때 지금을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약도 먹어보고, 인공수정도 해보고, 시험관도 해보고 모든 것을 다 해봤는데 생기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나의 능력을 벗어난 범위니까. 사실 임신을 하는 것 자체가 내 능력을 벗어나는 범위인 것 같다. 그저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요즘 내가 두려운 것은 내가 나중에 이렇게 힘들게 아기를 임신했기 때문에 이 아이에게 집착하는 부모가 될까 봐 두렵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힘들게 낳은 아기이기 때문에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나는 나 너는 너가 가능하기를 소망하며 어서 빨리 우리 부부가 이 숙제를 끝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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