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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뚜 Oct 26. 2021

난임 일기

#20 안되거나 되거나!

 30대가 넘으니 먹방, 일상복, 여행스타그램에 한정됐던 나의 SNS 피드가 임신, 출산, 육아 등 다양한 주제로 변경되었다. 임신은 정말 소중하고 축복받아 마땅한 것이지만, 나는 정말 아이를 원하는데 임신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으니 시샘도 나고 저 친구들은 너무 잘 생기는데 왜 나는 안 생기지? 하고 절망하기 딱 좋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직장에서 육아, 출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우울해지고 내가 좀 더 위축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한때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있다. 남들의 임신 소식을 100% 순수하게 축하해주지 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 싫었다. 내가 보기엔 쉽게 생긴 것 같은 아이도 결코 쉽지 않았을 수 있는데, 아기가 생긴 것은 정말 축복해줄 만한 일인데 나는 왜 축하한다고 말은 하면서 속으로는 시샘하고 있을까? 나도 부모님께 '임신했어요'라고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고, SNS 피드에 아기 초음파 사진도 올리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지금 나의 현실은 임신한 지인들을 질투하고 내 인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내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 무의미한 과정과 시간은 없다고 하는데 과연 이 과정을 통해서 나는 얻어지는 것이 있을까?

 3번의 인공수정이 실패했고 백신을 맞은 후에 시험관을 해보는 것을 권유받았다. 그리고 지금 백신을 2회 모두 맞고, 아직 병원에는 가지 못했다. 시험관을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왕 하는 거 시험관이 확률이 더 높으니까, 인공수정은 건너뛰고 시험관부터 하는 게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겐 아직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시험관은 우선 비용적인 면에서도 부담이 되고, 또 '남들은 자연적으로 임신이 잘만 되는데, 나는 꼭 시험관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안 할 자신이 결코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험관까지 했는데 안되면 나는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생각이었고, 진짜 나의 생각은 '어차피 해도 안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었다. 인공수정이 3번 실패했고 실패할 때마다 '그럴 줄 알았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는 안되나 봐'라는 인지적 오류가 나에게 가득 찼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시험관도 안될 건데 하면 뭐해? 하는 생각에 꼭 시간 낭비, 돈 낭비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건데 사람이 절망의 늪에 빠지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어차피 확률은 반반이라는 거다. 안되거나, 되거나! 근데 나는 '안 된다'만 보고 해 보기도 전에 벌써 포기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 공유한 행복에 나를 끼워 맞추며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고, 나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거야 하며 내가 만든 동굴로 계속 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을 자신은 없기 때문에 SNS는 삭제하려고 한다. 그리고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고 내 몸을 챙기고, 정신건강을 챙겨서 어차피 반반의 확률, '안된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된다' 도 생각하도록 노력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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