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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행 Sep 16. 2020

한국 단편문학 깊이 읽기 5

김애란, 「칼자국」

그렇게 엄마는 어미가 된다

   

언제 들어도 가슴 저리게 다가오는 말이 있다면 ‘엄마’가 아닐까. ‘끔찍이도 엄마 말 안 듣던’딸이 성장하여 그 보다 더 ‘말 안 듣는’ 딸을 둔 엄마가 되었을 때, ‘엄마’라는 단어가 더 그렇다.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은, 과거의 엄마에게나 현재를 살아가는 엄마에게 서로의 길을 걸어갔다는 점에서, 그래서 애써 이해를 구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어서 사무친다. 그럼에도 ‘과거를 살아 낸 엄마’와 ‘현재를 살아가는 엄마’사이의 겹은 단단하고 두텁다. 완전히 똑같은 삶은 없으므로. 따라서 누군가 서로의 겹을 환기시켜 주지 않는다면 ‘엄마’는 전자든 후자든 그저 살아가다가 희미해지는 존재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김애란의 소설 「칼자국」을 읽으며 엄마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25년째 칼국수 집을 운영하여 ‘나’를 거둬 먹인 엄마는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엄마의 칼은 썰고, 가르고, 자르는 동안 종이처럼 얇아졌지만,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는 삶이였으므로 강한 자부가 있었다.” 엄마에게 칼은 자식의 배를 채우는 생명줄 이었고, 무능력한 남편의 부정을 무심하게 대할 수 있는 삶의 동아줄 이었다. 엄마는 그 칼에 자주 다쳤지만 손에서 칼을 놓는 일은 없었다. 신산한 삶이어도 엄마는 그 궁핍함에 잠식당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삶에서 고생이나 희생을 보지 못했다. ‘나’는 거기서 그냥 ‘어미’를 봤다. 그렇게 ‘엄마’는 어미가 된다.    

   

“엄마는 새끼 겁주고 놀리는 걸 낙으로 삼는 여자였다.” ‘나’가 여섯 살 때, 엄마는 방 안에서 부르르 몸을 떨다 죽어버리는 시늉으로 놀란 자식을 보며 깔깔댔다. 옷에 강낭콩을 넣고 “공벌레다!”라고 사기를 쳐서 ‘나’를 크게 울리기도 했지만 무서운 개를 맞닥뜨려 얼굴이 새파래졌을 때는 칼을 들고 달려 나와 자식의 든든한 가림막이 되어 주었다. “밥 잘하고 일 잘하고 상말 잘하던 어머니였지만 식당에 손님으로 온 한 사내가 칼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고 뒤늦게 들어오는 여자를 위해 국수가 식지 않도록 빈 그릇을 엎어놓은 모습을 사소한 따뜻함을 받아보지 못한 여자의 눈으로 바라봤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어미의 부음을 들었을 때 ‘나’는 엄마로서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다. 하찮은 것들로 채워지는 ‘어미’의 삶을 미리 짐작하기라도 하듯 ‘나’는 엄마가 칼국수를 삶다가 쓰러진 식당 부엌을 둘러본다. 그러곤 엄마의 칼로 사과를 돌려 깎기 시작한다. “둥글게 자전하며 자신의 우주를 보여주는 사과를 보며 ‘어미’로서 자식에게 보여줄 우주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과 조각이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축축한 혀를 굴려 그 맛을 음미했다.      


김애란은 「칼자국」에서 ‘엄마’가 어떻게 ‘어미’가 되는지를 정확하게 환기시킨다. 아이를 임신하면 누구나 엄마가 되지만 그로써 어미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손안에 반지의 반짝임이 아닌 식칼의 번뜩임을 쥐고 사는 어미의 삶에서 길어 올린다. 그렇지만 결국은 엄마와 어미의 삶은 하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늘을 다지고, 두부를 자르고, 김치를 썰며 이따금 어머니를 생각하는 ‘나’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살아낸 어미’와 ‘살아가는 엄마’는 자식에게는 모두 우주적 존재다. 따라서 엄마와 어미는 우리가 항상 마음에 새겨야할 존재가 아닐까. 사소한 것이 모여 우주를 만들고, 그 우주는 사소함으로 흩뿌리게 될 테니. ‘엄마’의 삶처럼, ‘어미’의 삶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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