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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행 Sep 15. 2020

한국 단편문학 깊이 읽기 4

정이현, 「그 남자의 리허설」

<오렌지색 책>, 앨런 터커

나만이 나를 회피할 수 있다

 

정이현의 「그 남자의 리허설」에는 무한 경쟁이라는 살벌한 삶의 전쟁터에 내몰린 ‘한 남자’가 등장한다. 천성적으로 행동이 빠릿빠릿하지 못하고 느린 ‘그’의 직업은 성악가이다. 한때 ‘그’는 “하늘에서 내린 보이소프라노”라는 상찬을 들었던 주목받는 신예였지만, 지금은 매년 재계약을 걱정해야 하는 무능력한 시립합창단 소속 성악가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잘나가는 오페라 기획자로 “시계의 분침을 10분 일찍 돌려놓고” 바쁘게 활동하는 열정적인 사람이다. “그가 안 되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접지 못하고 지질지질 끝까지 가보는 스타일이라면, 아내는 포기가 빠르고 추진력이 강한”여자이다. 잘나가는 아내와 성공한 동료들 사이에서 ‘그’가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 열등감은 소극적인 그에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성공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이 시대에 ‘그’가 살아남는 방법은 두 가지다. 남들처럼 ‘그’도 앞뒤 안 가리고 삶의 전쟁터 속으로 뛰어드는 것, 다른 하나는 철저히 ‘회피’하는 것이다. 당연히 천성적으로 ‘그’는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모른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것’, 그것만이 살길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에 대한 불안감과 그로인해 생겨난 자신에 대한 열패감 모두 외면해버리고, 치열한 경쟁의 상황은 회피하면 그 뿐이다. ‘없는 듯, 존재감 없이 살아가기’ 그래서 ‘그’는 “쓸데없는 일”로 사람들과 트러블이 생기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한다. 그런 ‘그’를 “굳이 분류하자면 평화주의자에 가까웠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시도를 해도 실패가 예상되는 경우라면 인간은 아예 인정받기를 포기하는 것으로, 욕망을 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지키려 할 것이다. ‘그’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 자체도 ‘회피’해버린다. 그로써 ‘그’의 욕망은 거세를 당했고, 그 빈자리는 결핍감으로 채워진다. 그 자리는 무엇이든 채워져야 했다. ‘그’의 욕망은 외면하고 덮고, 잘라내 버린다고 해서 사라질 수 있는 계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회피의 전략을 선택한 이상 이 결핍감은 해결 될 리 만무하므로, 그 고정된 결핍감은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에게서 풍기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취’는 그런 ‘그’의 ‘썩어가는 내면’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에 ‘그’를 멀리한다.   

      

‘그’의 내면의 결핍은 점점 더 심하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으므로 ‘그’자신도 그 정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가 아내에게 “제발 말해줘, 나한테서 무슨 냄새가 나?”라고 애원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아내 또한 ‘그’가 가진 내면 상황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심한 악취만 풍길 뿐 ‘그’에게서 나는 그 냄새의 근원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 상황은 다음의 사건으로 형상화된다. 담배를 사기위해 초고층 드림빌에서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온 ‘그’는 아파트의 카드키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아파트 경비원과 관리소장에게 사정해 보지만 그들은 ‘그’가 아파트의 입주민인지를 “증명하지 않으면”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못을 박는다. “지갑도, 휴대전화도, 신분증”도 없는 ‘그’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이미 썩어서 그 형체를 알 수 없는 내면적 결핍을 가진 ‘그’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인 것이다.   

     

정이현이 보여주는 ‘회피’의 결과는 이러하다.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소통하고, 그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은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욕망이며, 그것은 외면하고 회피할 대상이 아니라고. 만약 두려움과 불안에 굴복하여 그것을 덮으려거나, 모른 채하려고 한다면, 그 내면은 서서히 썩어 들어가서 당신 자신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뭉개질 것이며, 결국 당신은 파멸할 것이라고. 지금까지는 그저 ‘리허설’에 불과했으며, 인생이라는 본 무대는 지금부터라고. 어떤가, 정이현이 소설 「그 남자의 리허설」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세지는 정말로 섬뜩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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