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동일한 점심」, 문학과 지성사
낯익은 미래, 숨겨진 폭력
어제와 구별되지 않는 오늘을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그’는 어제와 동일한 시각에 일어나, 동일한 지하철을 타고, 동일한 장소에서 일을 하다가 어제와 다를 것이 없는 점심을 먹는다. ‘그’는 “고속도로에서는 늘 규정 속도를 준수하고 갓길 운행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며, 차는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고 조금만 이상하면 당장 수리를 맡기는”사람이다. 「동일한 점심」에 등장하는 ‘그’의 삶은 이렇게 안정적이다.
‘그’의 삶은 늘 똑같이 반복된다. 그래서 처음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낯설다. 늘 익숙한 것들로 채워진 ‘그’의 삶에 ‘처음’이라는 단어가 어울릴만한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그’에게 굉장히 낯선 일이 처음 발생한다. 지하철역에서 열차에 몸을 던져 죽는 남자를 목격한 것이다. 그 충격적인 투신 현장을 목격하고 난 이후 ‘그’의 삶은 온통 ‘처음’있는 일들로 채워진다. ‘처음’으로 자신의 눈앞에서 죽은 사람을 봤고, 그 때문에 ‘처음’ 직장에 지각을 했다. 난생 ‘처음’생긴 일들은 ‘그’를 심장이 흔들릴 정도로 허둥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고, 정오가 되자 어제처럼 동일한 점심을 먹는다. 이제 걱정할 것 없다. 뒤통수를 강타했던 강렬한 충격은 반복되는 일상에 묻혔고, ‘그’는 다시 어제와 같이 살면 된다.
그러나 한 남자의 죽음을 목격한 경험은 ‘그’의 삶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킨다. 좀처럼 하지 않는 실수를 하고, 사내의 죽음을 떠올리는 등 어제는 하지 않았던 일들을 오늘 하게 된 것이다. 안정적인 일상으로 덮어지지 않는 그 미세한 균열의 정체는 무엇일까. 열차에 뛰어든 남자의 참혹한 시신을 본 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사고가 수습된 후 사람들은 열차를 타고 누군가가 깔려 죽은 레일을 지나 직장으로 갔을 것이다. 누군가의 숨이 허망하게 끊어졌고 몸이 잘게 바스러져 한낱 얼룩으로 스몄는데도, 그럼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분명, 사람들은 내가 열차에 뛰어든다고 해도, 별안간 참혹한 시신의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을 살아갈 것이다. 이제야 ‘그’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 ‘어제와 다르지 않다는 것’, ‘익숙한 것’들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된다.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음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라는 것은 대상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 자체가 무서운 무관심의 폭력이고 상처가 아닐까. 작가는 이렇게 ‘동일한 삶’이 유발하는 참담함을 사내의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무관심의 한 단면이다.
안온하고 편안한 삶, 어제와 동일하게 아무 문제없이 작동되는 삶에도 폭력과 상처는 숨어있다. 이것은 보려는 노력 없이는 드러나지 않기에, 우리는 의도적으로라도 주변에 무관심하게 보던 대상들을 천천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 숨겨진 폭력에 끝내 무관심하다면 우리의 미래는 지금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와 상관없다’는 말은 이렇게 무섭고도 비참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