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하바 Apr 13. 2021

놀이터, 꽃과 노을


오랜 시간 나 혼자만의 취미였던 사진에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더 열심이다. 

값비싼 카메라를 덜컥 일시불로 사 온 것도 남편의 작품이다. 


덕분에 우리 가족의 외출에는 일종의 규칙이 생겼는데, 

한 사람이 사진을 찍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이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 


이 날은 달랐다. 

별다른 외출 계획 없이 시댁을 방문했고 늦은 오후,

여느때처럼 핸드폰만 챙겨들고 아이와 놀이터로 나갔다. 


이전까지의 놀이터에서 우리 모습을 떠올려 보자면,

놀이터에서도 내 눈과 손, 발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아이의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고, 자연의 변화 역시 늘 새로웠다. 

놀이터에 다녀왔을 뿐인데 사진첩에는 십수장의 사진이 우습게 늘어났다.

남편의 발은 주로 벤치 바닥에 붙은채로, 손과 눈만 바빴다. 

뉴스와 SNS와 부동산 정보를 훑느라 바빠 아이에게 자주 혼나곤 했다.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면,

늘 마주하던 일상의 모습들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남편의 시선이 화면 속 세상 대신 우리가 있는 공간을 훑고, 

프레임에 담기 위해 발이 움직이고 손가락으로는 연신 셔터를 누른다. 


새로운, 그것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취미를 갖게 된 남편을 격려하기 위해서라도

평소처럼 내가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건만

아! 이 날의 노을은 잠시간의 양보마저 힘들만큼 아름다웠다. 


철 없는 부모들이 각자 렌즈에 노을과 꽃의 아름다움을 담는 동안

세상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우리 아이는 입이 댓발은 튀어나왔다. 


미안하다 딸아, 

엄마는 사진에 담긴 너의 모습만큼

노을과 꽃 역시 사랑하나보다. 





서부해당화와 신호등 @과천어린이교통공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