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하바 Apr 14. 2021

포기할 수 없는 것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변명일 뿐



걷다 만나는 소소한 풍경들을 사랑한다.

버스 차창으로 바뀌는 계절을 느끼며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옮기는 시간을 사랑한다.

제각각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오늘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

가끔 만나는 아이들의 미소는

언제고 몽글몽글한 기분과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을 느끼게 해준다.


가장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은 역시 사진.


기분따라 날씨따라 상황따라

어제는 그냥 지나쳤던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지난 주엔 꽃망울이다 어느새 수줍게 피어난 봄꽃이,

엄마 손 잡고 뒤뚱거리며 걷는 아이의 뒷모습이,

작은 렌즈에 담고 싶은 피사체가 된다.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고서는

운전 대신 대중교통이나 걷기를 택하는 건

시간 단축이나 몸의 수고로움을 더는 것보다

얻어지는 즐거움이 곱절은 많기 때문이다.


걱정과 긴장이 많아 중요한 일,

긴장되는 일을 앞두면 자주 배가 아프다.

어김없이 배가 아파올 것을 걱정하느라

더 심하게 아플만큼 예민한 성격에

과민한 대장이 더해지니 난감할 수밖에.


그러니 언제고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운전을 해야만 하는 날에는,

집을 나서기 전 적어도 네댓번은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시간까지 더해야 한다.

포기해야 하는 즐거움도 많은데,

누구에게든 쉬이 말 못할 괴로움까지 더해지니

내가 운전을 하지 않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다.

(가끔 급한 다이어트가 필요할 땐

부러 운전 할 일을 만들기도 한다. 매우 효과가 좋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변명일 뿐.

덕분에 오늘도 나 대신 안전운전 해 주시는

믿음직한 드라이버가 모는 버스 안에 편히 앉아,

차창 밖 막 물 오른 초록으로 가득한 봄을 느끼며

이 글을 쓰는 나는 많이 행복하다.






걷다 마주하는 소소한 봄의 풍경들을 담다.





1. 마포대교 남단 어디쯤

2.경의선 숲길, 공덕에서 대흥으로 가는 길

3.과천 상아벌지하보도 옆 길

4. 서울로7017

매거진의 이전글 놀이터, 꽃과 노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