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없는 것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변명일 뿐

by 구하바



걷다 만나는 소소한 풍경들을 사랑한다.

버스 차창으로 바뀌는 계절을 느끼며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옮기는 시간을 사랑한다.

제각각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오늘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 중 하나.

가끔 만나는 아이들의 미소는

언제고 몽글몽글한 기분과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을 느끼게 해준다.


가장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은 역시 사진.


기분따라 날씨따라 상황따라

어제는 그냥 지나쳤던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지난 주엔 꽃망울이다 어느새 수줍게 피어난 봄꽃이,

엄마 손 잡고 뒤뚱거리며 걷는 아이의 뒷모습이,

작은 렌즈에 담고 싶은 피사체가 된다.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고서는

운전 대신 대중교통이나 걷기를 택하는 건

시간 단축이나 몸의 수고로움을 더는 것보다

얻어지는 즐거움이 곱절은 많기 때문이다.


걱정과 긴장이 많아 중요한 일,

긴장되는 일을 앞두면 자주 배가 아프다.

어김없이 배가 아파올 것을 걱정하느라

더 심하게 아플만큼 예민한 성격에

과민한 대장이 더해지니 난감할 수밖에.


그러니 언제고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운전을 해야만 하는 날에는,

집을 나서기 전 적어도 네댓번은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시간까지 더해야 한다.

포기해야 하는 즐거움도 많은데,

누구에게든 쉬이 말 못할 괴로움까지 더해지니

내가 운전을 하지 않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다.

(가끔 급한 다이어트가 필요할 땐

부러 운전 할 일을 만들기도 한다. 매우 효과가 좋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변명일 뿐.

덕분에 오늘도 나 대신 안전운전 해 주시는

믿음직한 드라이버가 모는 버스 안에 편히 앉아,

차창 밖 막 물 오른 초록으로 가득한 봄을 느끼며

이 글을 쓰는 나는 많이 행복하다.






걷다 마주하는 소소한 봄의 풍경들을 담다.





1. 마포대교 남단 어디쯤

2.경의선 숲길, 공덕에서 대흥으로 가는 길

3.과천 상아벌지하보도 옆 길

4. 서울로7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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