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하바 Apr 21. 2021

아침부터 아이를 울렸다

뚱뚱해보여서 싫어


아침부터 아이를 울렸다. "엄마 나 눈 운 거 같아?" 확인에 확인을 한 후 아이는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혼자 돌아온 집에는 아이를 울린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입고 싶은 옷 그냥 입으라고 하면 되지 그걸로 애를 울리니. 바로 후회가 됐다. 


최근 10대 20대 사이에서 '프로아나(pro-ana)' 바람이 불고 있단다. 거식증 anorexia을 찬성 pro 한다는 뜻이다. 사망률 1위 정신질환인 거식증에 걸려도 괜찮으니 마른 몸매를 지향하는 어린 아이들. 실제 지인의 초등학교 2학년 아이도 이미 작고 말랐는데도 살이 찌는 게 싫어 최대한 음식 섭취를 자제한단다. 

기사를 봤을 때도, 지인의 아이를 보았을 때도 "아니 저렇게 말랐는데 뭘 더. 에휴, 애들까지 잘못된 미의식을 갖게 만든 미디어나 어른들이 문제지, 쯧쯧." 나는 혀를 찼다. 


일곱살 아이는 누가 봐도 통통한 몸매를 가졌다.


전 날 밤 내가 골라둔 옷은 유난히 더 통통한 아이의 배가 드러나지 않는 원피스. 아이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펑퍼짐한 그 원피스가 더 뚱뚱해보여 싫단다. 이게 더 늘씬해보인다 우겨서 입혔던 옷을 벗기고, 결국 아이가 원하는 옷으로 갈아입혔다. 볼록 나온 배를 반으로 딱 쪼개듯 누르는 치마의 고무줄이 유난히도 보기 싫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라. 세상 모두가 아이를 비난해도 부모만은 무조건적으로 아이를 지지해줘야 한다. 존재 자체로 사랑 받아 마땅함을 잊지마라. 사람은 외모에 의해 평가받지 말아야 한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는 것들을 정작 내 자식 일이되면 까마귀 고기라도 먹은 양 자꾸만 잊어버린다. 




고작 일곱살 아이가 특정 옷을 싫어하는 이유가 "뚱뚱해보여서" 라니. 

몸무게 조금 늘었네, 하면 아이는 언젠가부터 "나 뚱뚱해진거 아니야. 키가 큰거야." 억울해했다. 


소아과 두 곳에서 아이 체중 조절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유아 검진 몸무게 상위 5%다. 여자 아이들은 30kg이 넘어가게 되면 성조숙증이 더 쉽게 나타날 수 있단다. 성조숙증은 아이의 성장, 건강과도 연결되니 엄마인 내가 아이의 몸무게에 민감해 질 수밖에 없는거라 생각했다. 


160cm에 53kg. 아니 솔직해지자. 최근에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운동을 하지 않아 지금은 54kg. 객관적인 수치로도, 누가 보아도 마르지는 않았어도 정상 범위에 속하는 체중을 가지고 있는 30대 후반. 나의 다이어트 역사는 중학생때 시작되어 인생최고 몸무게를 찍었던 고등학생을 거쳐 40대가 목전인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엄마 요즘 살 찐 것 같아. 아 엄마 몸무게 늘었네 다이어트 해야겠다. 엄마 배 나온거 봐봐, 어우 이 뱃 살 어떡하지. 무의식중에 아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뱉어낸 나의 말들이, 내가 혀를 끌끌찼던 미디어보다도 아이에게는 훨씬 강한 독이었다. 나는 안다. 내가 그 독을 먹으며 자랐으니까.


우리 네 자매 중 나와 12살 차이가 나는 어린 막냇동생을 제외하고 나머지 셋은 모두 엄마에게서 체중 관리를 받았다. 허벌라이프(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였다)의 화한 듯 씁쓸한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이상한 맛이 나는 물을 마셔댔고, 밥 대신 파우더로 때우던 날도 있었다. 엄마표 관리의 주된 타겟은 둘째였다. 둘째는 실제 성조숙증이 왔던지 초등학생 때 가슴이 나왔고, 엄마는 동생의 가슴에 붕대를 꽁꽁 묶어 주었다. 셋째는 사실 언니들때문에 피해자가 되었다. 한참 먹고 자라야 할 어린아이가 두 살 차이 언니도 보면 먹고 싶어진다는 이유로 먹고 싶은 음식들을 마음껏 먹지 못했었다. 


아마 엄마도 병원에서 둘째에 관한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들었었을테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형편에 제법 비쌌던 다이어트 제품들을 한꺼번에 들이고, 셋째까지 동원해 위 두 딸들의 다이어트에 집중했던 걸 보면. 그래서 항상 엄마 마음에는 셋째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하다. 그 때 잘 먹지 못해서 애가 키가 덜 컸다며. 




아직도 엄마는 우리의 몸매를 걱정한다. 이제는 아마 당신이 몇 년 째 고생하고 있는 당뇨라는 병이 혹여 우리에게도 전해질까 걱정되어서 일거다. 엄마는 뚱뚱했었고(셋째 출산 후의 일이다. 사실은 출산후 붓기였을 몸) , 가족 사진에서 본인이 뚱뚱했을 때의 모습은 형태를 따라 잘라내어 버린채 간직하신다. 엄마의 엄마도, 엄마의 자매들도 모두가 당뇨다. 가족력일 확률이 높은 병이지만, 사람들은 으레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뇨는 뚱뚱한 사람들이 걸리는 거잖아? 딸들이 뚱뚱한 채로 혹시나 당뇨에 걸리는 것, 엄마에게는 아마 가장 끔찍한 소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 집 여자들의 날씬함에 대한 갈망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허리 23인치를 벗어난 적 없던 젊은 여자가 아이 넷을 낳고 전에 없던 뚱뚱한 몸으로 변한 게 이유였을까. 출산으로 예전과 다른 몸에 속상할 때, 여전히 탄탄한 몸매와 잘 생긴 얼굴을 가진 아빠에게 들이대던 젊고 마른 여자들이 이유였을까. 태어나 지금껏 한 번도 말라본 적 없는 통통했던 내가 이유였을까. 갑자기 또래보다 한참 이르게 가슴이 불쑥 나온 동생이 이유였을까. 아니면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서 나는 모르는 독을 전해 받은 것일까. 


그 모든 일의 선후를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리는 자신의 통통한 몸을 결코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다행인건 그럼에도 마른 몸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 - 먹토, 거식증 - 을 할 만큼 잘못된 욕망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오늘 아침 우리는 고작 옷 때문에 싸운 것이 아니었다. 역사가 깊은 나의 '마른 몸매에 대한 갈망'을 아이에게 투영하고, 대를 이어 아이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순간 속상한 마음에 아무렇게나 던져 두었던 갈아 입힌 옷을 정리하며 이제 내가 할 일은 뚜렷해졌다. 아이의 건강에 집중하기. 나의 몸, 아이의 몸을 평가하지 않기. 무의식적으로라도 살 찐 몸에 대한 부정적 표현하지 않기. 걱정할 시간에 아이와 함께 움직이기. 건강한 음식들 만들어 함께 맛있게 먹기.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아이의 모습을 마음껏 사랑해주기. 


하원하고 돌아오면 꼭 껴안고 아침에는 엄마가 미안했다고, 엄마는 네 존재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이야기해줘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판다처럼 동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