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하바 Apr 28. 2021

아이의 더러워진 운동화가 좋다


아이의 운동화를 빨았다. 

산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새 운동화. 


유치원 놀이터에서 어떻게 놀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앞코가 더러워진 운동화와 흙투성이가 된 옷을 보면 웃음이 난다. 


작년 말 유치원 상담을 갔을 때, 

모든 면에서 다 열심이고 침착하게 잘하는 모범생이지만 

딱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날이 좋지 않아 바깥 놀이를 못한다고 하면 

속상해하거나 실망하는데, 내 아이만 기뻐한다고 했다. 

바깥놀이가 하기 싫어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하는 날도 잦았다. 

세네 개 반 아이들이 한꺼번에 나와 놀이하는 홀 놀이 시간도 싫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이 북적이는 환경을 아주 어릴 때부터 싫어하던 아이. 

누구라도 제 근처로 다가오는 듯 싶으면 굳어버렸다. 

아이들이 저에게 부딪힐까, 다칠까 겁이 난다고 했다.


교실과 붙어 있는 홀 놀이 시간에는 아이가 싫다고 하면 

교실에 혼자 남아 책을 읽거나 교구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단다. 

바깥놀이 시간에는 아이 혼자 두고 나갈 수는 없으니 같이 나가야만 했다.

어떤 날엔 그저 벤치에 앉아 뛰노는 아이들 구경만 하다 들어왔단다.

또 어떤 날엔 꼭 저처럼 조용히 구석에서 노는 아이들이 옆으로 오면 

그 아이들과 쪼그리고 앉아 사부작 거리는 놀이들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건 나쁜 것도 아니고, 성향이 그런 거니 제가 강요할 수도 없는 부분이라

아이에게 맞춰 가면서 점점 참여할 수 있게 북돋워 주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나만큼이나 아이를 잘 이해하고 계신 선생님께 감사했다. 

그러니 아이가 정든 선생님과 이별하고 새로운 반이 되는 걸 

몇 주씩이나 고민하고 잠 못 이룰 만도 했다. 


일곱 살이 된 후 하원 시간에 작년 반 선생님을 만나면 아이도 나도 기뻐 인사를 건넨다. 


"Y야! 선생님 놀이터에서 Y 못 알아봤잖아. 저기 신나서 웃으면서 빨리 뛰어가는 아이가 누구지 했는데

자세히 보니까 Y여서 깜짝 놀랐어. 정말 멋지게 잘하고 있네?"


일곱 살 아이의 마음속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저 더러워진 운동화를 보며 오늘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구나, 

너는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구나 미루어 짐작해 볼 뿐이다. 


꽃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꽃을 피우듯, 절대로 조급해하지 말자. 

부모의 역할이란 아이 한 발짝 뒤에서 조용히 기도하며 따라가는 것,

언제고 아이가 뒤 돌아봤을 때 환하게 웃으며 토닥여주는 것이면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부터 아이를 울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