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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하바 May 04. 2021

그 아이의 불행을 부러워했다

사실은 용기가부러웠던 거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뚜렷하지 않은 것이 많다. 왜 작가가 되고 싶었는지, 국민학교 3학년 무렵부터 장래희망의 첫 번째 칸이나 두 번째 칸에는 순서만 바꿔가며 "작가"가 빠지지 않았는지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계기가 될만한 사건은 떠오르지 않는다. 


반면에 장래희망 작가와 관련해 한 가지 뚜렷하게 기억나는 일화는 있다. 한 학년이 두 개 학급뿐인 시골 조그만 학교라고는 해도 나는 항상 1등이었다. 시험 성적도, 과학 경진대회도, 심지어 연날리기 대회 같은 것에서도 말이다(군 단위의 나름 큰 행사였다). 그런 내가 항상 2등에 만족해야만 하는 것은 글쓰기였다. 제법 큰 대회에서도 자주 1등 상을 받아왔던 그 아이는 반에서 가장 조용했다. 아이는 거의 웃지 않았고, 가끔 웃을 때조차 소리가 나지 않는 미소뿐이었다. 


아이의 아빠는 마을 가장 번화가 삼거리 끝자락에서 세탁소를 했다. 아이는 아빠와 단 둘이 세탁소 겸 단칸방이 있는 그 집에서 지냈다. 아이의 엄마는 병으로 돌아가셨다고도 했고, 도망갔다고도 했으며, 자살했다고도 했다. 아이들끼리의 뜬소문일 뿐 어른들 중 그 누구도 정확한 사실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아이의 아빠는 학교에 찾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우리는 모두 아이의 아빠가 다리 하나가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동네에 세탁소는 그 집 하나였기에 지금 와 생각하면 그래도 두 식구 먹고 살기에는 수입이 괜찮지 않았을까 싶지만, 한 학급에 한 두 명씩 주는 생계지원 장학금은 꼭 그 아이가 대상이었다. 


이충무공 백일장 대회였다. 명량대첩에서 승리한 충무공의 사당이 있었던 계단 많은 언덕. 우리는 언덕 곳곳에 흩어져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나는 충무공에 대한 다분히 상을 노린 칭송의 글을 썼고, 역시나 1등은 그 아이였다. 담임선생님이 무슨 의도로 아이에게 반 전체 앞에서 수상한 글을 읽게끔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이는 담담히 글을 읽었다. 떠나간 엄마와 엄마의 부재를 채워주던 할머니와의 이별 이야기가 교실을 채웠다. 몇몇 아이들은 훌쩍이기도 했다. 아이의 조용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에서 나는 울음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장래희망란 첫 번째 칸에서 '작가'를 조용히 밀어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 아이만큼의 아픔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나 같은 평범한 아이가 갖는 보통의 고민이나 아픔은 턱 없이 부족하다 여겼다. 그러니 그 아이의 불행이 부러웠다. 그다지도 철이 없었다. 그때의 나는. 


어느덧 서른아홉. 아이의 아픔을 읽어낸 그 날로부터 30여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평범함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나의 시간들. 하지만 깊게 열고 들추어보면 삶의 어느 부분인가는 어린 날의 내가 부러워했던 만큼 충분히 불행하다고도 할 수 있는 나이. 이제야 깨닫는다. 그 날 내가 부러워했던 것은 그 아이의 불행이 아니라, 아픔을 담담히 드러낼 수 있는 용기였다는 것을. 


풀리지 않는 글을 붙잡고 있다 문득 카페 천장을 올려다본다.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은 서까래에 얇은 한지 한 장 덧대어 붙인 쪽과, 나무에는 윤기 나게 칠을 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는 하얗게 단장한 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충무공 백일장에서 아이의 글과 나의 글의 차이가 이랬다. 


덧대어진 얇은 한지 한 장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여전히 그 아이의 용기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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