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엔 하늘 사진 수백장
미국에서 남편은 종종 물었다. TV나, 먹는 건 그렇게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왜 애가 놀고 싶다고 하면 계속 밖에서 놀게 하는거냐고. 아이의 건강 염려증이 있는 남편은 아내의 이중잣대에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까 늘 불안했을테다. 나에게도 이유는 있었으니, 대답은 늘 같았다. 한국 가면 보기 힘들 하늘이잖아. Garden State에 사는데 자연을 즐겨야지.
어느 정도는 핑계다. 인정한다. 나는 본디 집보다는 밖을 사랑한다. 똑같은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집에서 보다는 자연 속에서 마시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매일 보는 하늘과, 매일 만나는 자연의 변화에 쉽게 감탄하고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사람. 남편과 아이는 지독한 집순이라 며칠을 어두컴컴한 기숙사에만 있어도 괜찮았지만, 나는 그럴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두통에 시달렸다. "아프지 않으려고 나가는거야." 얼마나 좋은 핑계인가?
우리 부부는 미세먼지에 유독 예민했다. 나가지 않으면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며칠이고 집 안에서만 버텼다. 미세먼지 때문에 잡았던 약속을 취소하기까지하는 우리를 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만성 비염인 남편은 재채기와 기침을 달고 살았고, 눈과 기관지가 약한 나는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밤이면 목이 부어올랐다. 결정적인 계기는 아이였다. 태변흡입증후군으로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에서 2주를 보내야했던 아이의 폐가 약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야말로 미세먼지와 맞지 않는 가족이라, 미국생활은 다른 건 몰라도 2년이나마 미세먼지에서 해방이라는 생각에 두 손 들고 반길 일이었다.
습관이 무섭다. 미세먼지 따위 없을거라 기대하고 온 미국임에도, 핸드폰을 개통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미세먼지 어플을 설치했다. 하늘은 파랬고 여름이라 구름은 몽글몽글 높았다. 역시 이게 하늘이지, 어우 미세먼지 없으니 살 것 같다 중얼거리며 어플을 켰다.
맙소사. AQI 수치가 북경과 비슷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다. 사실이다.
주위 지인들 중 미세먼지를 확인하는 사람도, 집에 공기청정기를 둔 사람도 우리밖에 없었다. 다행히 첫 그 며칠을 제외하고 우리가 있는 동안 뉴저지의 대기질 수치가 그렇게 나빴던 적은 몇 없었다. 뉴저지에는 공장이 많기에 우리의 기대만큼 마냥 공기가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일단 봄은 당연하고, 한여름 더위에도, 삼한사온 아닌 삼한사미라고 해야할 정도로 겨울까지도 미세먼지 수치가 좋지 않았던 서울보다야 백 배는 나았다. 적어도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을 포기해야 할만큼 나빴던 적은 없었으니까.
미국에서 나는 매일 같이 하늘 사진을 찍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무렵이 되었을 때에는 "한국가면 저 하늘도 보기 힘들겠지?" 하늘만 보면 자동 재생되는 테이프 마냥 중얼거렸다. 매일 같은 듯 다른 하늘 사진들로 폰 사진첩을 가득채웠다. 놀이터에서도, 공원에서도, 바닷가에서도, 차 안에서도 다시는 보지 못할 연인의 얼굴을 두 눈에 담고 또 담듯, 하늘만 올려다 봤다.
대부분의 민감한 사람들은 신중한 전략을 선택한다. 그들은 흥분보다는 안전을 중요시하고,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일부는 모험과 새로운 탐험을 즐기기도 한다. 쉽게 싫증을 느끼지만 동시에 자극에 민감하다면, 당신은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민감한 사람에 속할 것이다.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민감한 당신은 반복적인 일에 쉽게 싫증을 내고, 틀에 박힌 일상을 따분하게 여긴다. 당신은 흥미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전에 가보지 않은 새로운 장소에 가고 싶을 것이다.
센서티브 Highly Sensitive People, 일자 샌드
책에서 이야기하는 '감각적인 것을 추구하는 민감한 사람' 그 자체인 나에게 외출의 목적지가 늘 같은 집 앞 놀이터라는 건 고문 같은 일이었다. 거기에 재미도 없는데 늘 비슷한 레파토리의 역할놀이가 더해진 놀이터 일상. 따분함을 달래준 건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을 대하듯 볼 때마다 행복함을 주는 하늘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초록을 덧 칠하다 마법처럼 붉어지는 나무들 덕분이었고, 어느샌가 피어난 꽃들 덕분이었다. 가끔 유유히 산책하다 눈이 마주쳐도 도망가지 않는 사슴 가족과 청설모들 덕분이기도 하다.
연인을 보듯 애정을 담아 하늘을 보니 어제의 하늘이 다르고, 아침의 하늘과 저녁의 하늘이 달랐으며, 아이가 있는 하늘과 꽃이 더해진 하늘이 모두 달랐다. 예상 외로 귀국 후 며칠 간의 하늘은 미국에서의 하늘처럼 파랗고 높았다. 내 기억이 심하게 왜곡 되었었던지 솔직히 귀국 전 걱정했던 것만큼 한국의 미세먼지는 최악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세먼지 매우나쁨이 며칠째 이어지는 때면 자꾸만 그리워진다. 그 때 그 날들의 하늘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착용이 일상이니 우리 부부도 예전보다는 확실히 미세먼지에 조금은 둔감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이 뿌옇게 보일 정도인데도 따뜻하다고 아유 날 좋네, 이럴 때 나가야지 하는 사람들을 보면 당황스럽다. 미세먼지 매우 나쁨인데 버스 창문을 다 열어두었다고 이럴거면 걸어왔지 남편은 투덜거린다. 아무래도 2년 동안 한국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는 미세먼지에 적응 하는 동안, 우리는 숨을 들이키면 느껴지는 신선한 미국 공기에 익숙해져버려 지금이 더 어려운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