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지나치면 병이다
“이런 젠장”
부지불식간에 내 입에서는 한숨 섞인 불만이 튀어나가고 말았다. 내내 파랗고 몽실몽실 하얀 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이 집에서 나가려는 순간 슬금슬금 어두워지더니, 어느새 흐리멍덩한 회색 커다란 구름에 덮여 있다.
아침부터 유난히 맑은 파랑의 하늘을 배경으로, 내가 좋아하는 '뛰어내려도 땅으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커다란 뭉게구름'이 가득한 날이라 설레었다. 방학중인 아이와 함께니 언감생심 혼자만의 나들이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요즘 나에게 주어지는 자유시간이란 아이가 학원에 가 있는 50분이 전부니까.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시간을 보태어 계산하면 그 시간에 어딘가를 간다는 건 무리다.
게다가 태어나서부터 더운 걸 끔찍이 싫어하는 아이는 얼마 전 나에게 선언을 했다. “엄마 내가 결심한 게 있는데, 여름이 끝나기 전까지는 밖에 안 나갈 거야.” 다부진 선언이 무색하게 아이는 거의 매일 나가기는 한다. 일곱 살 스케줄이 왜 그리 빡빡한지. 피아노, 발레, 미술, 몽땅 동네 예체능 학원 들일뿐이지만 제 좋아하는 학원을 가느라 나가는 ‘밖’은 제외인가 보다. 아이가 말하는 '밖'은 하늘 보고 싶은 엄마가 원하는 그 '밖' 만을 뜻하는 거다.
집, 학원 혹은 아이 학원 간 틈에 마트나 도서관만 왔다 갔다 하는 외출 말고, 좋아하는 하늘 실컷 볼 수 있는 찐 외출이 유난히 간절한 여름이다. 올해 여름의 하늘은 왜 이다지도 예쁜지. 작년에는 코로나가 무서워 유치원이고 학원이고 보내지 못하고,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지냈지만 이 정도로 안타깝지는 않았다. 매일 연애하듯 올려다봤던 미국에서의 하늘과 닮은 2021년 여름의 대한민국 하늘. 덕분에 이례적인 폭염과 끝날 줄 모르는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하늘 성애자인 나는 여름 내내 자주 설렜고, 자주 행복했고, 또 자주 슬펐다.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던가. 하늘은 파랗고 구름들은 그림처럼 예쁜 날에는 종일 마음이 종종거렸다. 어디든 가서 저 예쁜 하늘을 담아야 하는데... 숙제라도 되는 양 안절부절 몇 번씩 창가를 오가며 하늘을 살폈다. 학원 셔틀 외출만이 허락되는 날에는, 전깃줄 혹은 건물들로 가득한 하늘이라도 못내 아쉽지만 한참을 올려다봤다. 다행히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둑해지면 이내 사라지는 증상이지만, 다음 날 또다시 맑은 하늘을 마주하면 좋으면서도 조바심이 나다 슬퍼지니 정상은 아니지 싶기도 했다.
아파트던 주택이던 빌라던 다 아무런 상관없으니 창 한가득 하늘이 들어오는 그런 집에 살았더라면 나의 이 지독한 하늘 사랑도 조금은 시들해졌으려나 가끔 상상해 본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집에 사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랬다고 하지 않는가. 한강뷰 좋은 것도 딱 6개월뿐이라고. 내 사랑의 끝을 만나도 좋으니, 단 한 번만이라도 가리는 것 없이 펼쳐진 하늘과 그 아래 물이 있는 풍경을 담은 창문을 가진 그런 집에 살아보고 싶다. 매일 지겹도록 하늘만 보고 싶다.
이 정도면 정말 병이다. 애정의 대상인 하늘은 당연히 모르는 외골수 사랑. 남편도 아이도 자매들도, 친구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안쓰러운 사랑. 이 사랑을 치유할 방법이 과연 있기나 한 건지 알 수 없으니, 중병에 난치병이 틀림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은 아무렴 어떨까 싶다. 사랑이 병이라면, '이 병이 깊어져도 좋으니 하늘 그대는 지금처럼 한 없이 예쁘기만 해 주시오' 매달려 보고 싶다. 유난히 파란 하늘과 커다란 구름들이 쉼 없이 모양을 바꿔대며 감탄하게 만드는 여름. 사랑의 열병에 빠진 나는 하늘이 너무 예뻐 슬퍼지고는 한다.
하늘이 예뻤던 날들에
사랑하는 마음 가득 담아 남긴 사진들은
언제고 변함없이 위안이 된다.
아이가 태어난 후, 무려 7년 만에 처음으로!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서
와인 한 잔 곁들인 저녁 데이트의 배경이 되었던
이 날의 아름다운 하늘은 아마 평생 기억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