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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하바 Apr 01. 2021

그만 사랑하지 않은 뉴욕

뉴욕에 갔지만 뉴욕을 간 게 아니었던 어느 날

세계의 중심 용산 - 용산구에서 만든 문구가 저렇다 - 에 신혼집을 얻었다. 지리적으로만 보면 세계의 중심은 모르겠지만, 서울의 중심임은 확실한 용산구. 명동, 이태원, 홍대 등을 지척에 놓고도 사람 많고 복잡한 곳은 싫어하는 우리 부부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주말이면 외곽으로 나가거나 서울에서도 팔각정 같은 한적한 곳만 찾아다녔다. 싫고 다녀오면 머리 아파도 필요하면 번화가를 찾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어떻게든 대체할 다른 방법을 찾아내고는 했다. 결혼을 결심할 때까지, 아니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의 그는 분명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알았다면 분명 내 선택은 달라졌을 거다. 분명하다. 한 생명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걱정되고 두려운 나머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잘 감춰왔던 예민한 본성을 최우선 순위로 꺼내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는 항상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매일 어느 한 곳(아니 사실은 수십 곳)은 공사를 하고 있는 도시. 일방통행인 길들은 자주, 예고 없이 폐쇄되어 갑자기 우회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고 사람도 차도 넘쳐나는 도시. 온갖 다양한 나라의 언어들과 다른 생김새의 얼굴들이 어지럽게 일렁이는 도시. 겉에서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골목은 지저분하고 규칙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도시. 우리에게 다가 온 뉴욕의 첫 이미지는 그랬다.


"명동 뒷골목 같아" 그는 중얼거렸다. 그가 서울에서 가장 싫어하는 장소 중 하나인 명동. 그런 명동에서도 뒷골목이라니, 한순간에 그와 뉴욕은 어울리지 않는 도시임을 깨달았다. 한국은행에 보내야 할 서류가 있어 뉴욕 주재 한국 영사관을 찾았던 날, 그래도 나는 제법 설레었던 것 같다. 바로 그 "뉴욕" 이니까. 전 세계인들이 한 번쯤 꿈꾸는 도시 뉴욕. 뉴욕 옆 뉴저지에 살며 3개월이 다 되어 가는데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상상 속 뉴욕. 아마 그와는 달리 "운전"에서 기인하는 스트레스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뉴욕에서 뉴저지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대로 퇴근길 러시아워에 갇혀 시간을 보내며 그는 "뉴욕에서 뉴저지로 가는 건 금요일이나 주말 명동에서부터 꽉 막힌 여의도 지나 구로 거쳐 인천으로 오는 것"이라 투덜거렸다.


살아 보니 뉴욕의 주차는 스트리트 파킹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불안 요소를 하나라도 줄이고 싶었던 그는 뉴욕을 찾을 때면 항상 주차장 어플을 이용했다. 처음 뉴욕에 갔던 날에도 어플로 미리 주차장을 찾아뒀지만, 다 비슷비슷한 주차장 표시와 복잡한 뉴욕 도로에 길을 헤맸고, 간신히 주차한 곳은 수많은 근처 주차장들 중 하필 할인 쿠폰이 적용되지 않는 가장 비싼 곳이다. 어차피 주차비는 2시간이나 10시간이나 동일했다. 44달러(서울 주차비는 참 착하다.) 누군가는 기왕 이렇게 된 것 뉴욕의 맛집들을 즐겼을 거다. 또 누군가는 관광지 한중심에 위치한 영사관 덕분에 걸어서 갈 수 있는 타임스퀘어, 엠파이어 스테이트, 센트럴파크 등등을 둘러보며 여행 온 기분을 내었을지도 모르고. 사실 내가 그런 마음이었다.


우리는 어땠냐고? 뉴욕이고 뭐고 졸리고 배고픈 세 살 꼬맹이. 사람 많은 곳은 질색인데 이미 막히는 도로와 주차장에서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채로 유모차를 밀고 있는 남편. 그리고 나. 우리 셋은 영사관 근처 아무 데나 사람 없는 식당에 들어가 뉴욕에서의 첫 끼를 먹었다. 뉴저지에 돌아가서 보냈어도 되는데 굳이 한참을 페덱스 찾아 걸어가 서류를 보냈다(심지어 페덱스 비용도 뉴저지에서 보내는 게 더 저렴했다. 풉. 걷다 우연히 마주친 LOVE 동상과, 페덱스 맞은 편의 카네기홀과, 사람들이 웅성거려 올려다보니 트럼프 빌딩이 있는 길들을 걸었다. 페덱스에서 주차장으로. 


길이 막히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며 그는 종종 댔고, 어차피 가는 길이니 센트럴 파크 안 쪽으로 나는 걷고 싶었다. 운전자는 그라 나는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센트럴파크를 바로 옆에 두고 담장 너머로 손을 뻗어 사진 두 장만 담고 계속 걸었다. 10시간에 44달러짜리 주차장을 고작 3시간 이용하고 같은 값을 지불하며 속이 부글거렸다. 목적만 달성하면 언제 어디서건 귀소본능이 뚜렷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출발한 지 10분 만에 뉴욕의 꽉 막힌 도로에 꼼짝없이 갇혀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막히는 시간을 피해 뉴욕에 좀 더 있다 가도 됐을 걸 그의 융통성 없음에 살짝 또 화도 났다.


뉴욕을 빠져나오는데만 한 시간 반이 걸렸고, 또 거기서 집까지 한 시간. 뉴욕에 머물렀던 시간과 차 안 갇혀 뉴욕 길 위를 헤맸던 시간이 비슷했다. 내내 보채던 아이는 잠들었고, 라디오에서는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막히고 공사하는 길 대신 구글 내비가 알려준 우회로에서는 항구가 보였고,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이 없이 둘이 왔더라면, 한 곳이라도 더 보려고 바쁜 관광객들 구경하며 우리는 언제고 뉴욕에 올 수 있다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노천카페에 앉아서 제법 괜찮았을 것 같아." 항상 아이와 함께여야만 했기 때문일까? 다음에 우리가 함께 뉴욕에 오기까지는 3개월이 걸렸고, 첫날 담장 밖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센트럴 파크는 미국에서 생활한 지 1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갈 수 있었다. 명동 뒷골목 같다는 남편의 뉴욕 묘사에 동의했지만, 나는 뭇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뉴욕에 마음을 빼앗겼다. 도착한 해 크리스마스 이틀 전에는 기차를 타고 혼자 뉴욕을 찾았다. 어느 봄 날엔 친구를 핑계로 유모차와 아이 짐 없이 하이라인 파크를 걸었고, 그가 이야기했던 여유 부리며 카페에 앉아 분주한 관광객들 구경하기도 해 보았다. 심지어 미국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1박 자유부인은 타임스퀘어에 숙소를 잡아준 친구 덕에 이틀을 제대로 뉴욕을 즐겼다.


뉴욕 지척에 살고 있으니 남편도 울며 겨자 먹기로 2년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뉴욕에 갈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 서서히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2년이 흘러 학위 과정이 모두 끝나고서야 남편은 비로소 뉴욕에 갈 때에도 편안해 보였다. 귀국을 2달 남겨둔 그제야. 미뤄둔 숙제라도 하는 듯 이틀 연속 뉴욕을 찾기도 했고, 대상포진에 걸려 아픈 다리를 끌고 꾸역꾸역 뉴욕 거리를 걸었다. 귀국 전 마지막 나들이도 그렇게나 사랑했던 필라델피아 대신 브루클린을 찾았다. 여전히 뉴욕은 강 건너 뉴저지에서 볼 때 가장 아름답다 주장했지만, 난 알았다. 내내 부정하면서도 결국은 그도 뉴욕과 사랑에 빠졌다는 걸.



우리가 사랑한 뉴저지에서 바라 본 뉴욕의 낮과 밤



언제고 예민한 남편을 지치게 하는 뉴욕의 교통체증



뉴욕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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