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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하바 Mar 26. 2021

무식하면 용감하다

범죄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 1위?



카메라를 들고 찬찬히 발걸음 내키는 대로 걸으며 보이는 순간들을 담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오랜 취미. 아이가 태어난 후로 꽤나 오래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남편이 미국 유학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의 주말은 없었다. 미국에 왔지만 첫 두 달은 면허를 따기 위한 고군분투, 첫 해외생활에 익숙해지는 남편과 아이 뒷바라지, 기숙사로의 이사 등으로 여유가 없었다. 드디어 9월. 뉴저지에 도착한 지 3개월 차 되던 어느 주일.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 


성당을 가기 위해 준비를 끝낸 시간. 집돌이 남편과 대를 거듭하며 한층 강력해진 집순이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딸이 나가지 않겠단다.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누워있는 두 사람을 놓고 무작정 혼자 나왔다. 힘들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뉴저지주 운전면허증을 갖게 되었지만 아직 운전은 두려웠다. 우버나 택시도 이용해 보지 않았던 때라 학교 스쿨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주말에는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운행하는 스쿨버스. 차로는 7분이면 가는 거리를, 주말 스쿨버스는 3곳의 캠퍼스를 돌고 돌아 40분을 걸려 도착했다. 간신히 얻어 낸 3시간의 자유시간 중 한 시간 반 정도를 왕복 이동하는 데 써야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들이 다 새로웠고, 그날의 선곡도 완벽했다. 어쿠스틱 팝 채널. 첫 도보여행의 출발지는 이름부터 딱인 리버티 스트리트.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어디든 갈 수 있는 두 다리가 있고, 내 손에는 몇 년 만에 카메라가 쥐어져 있었다. 아이가 아닌 피사체를 담는 것이 얼마 만이던가. 마냥 흥이 난 나는 이곳저곳을 잰 발걸음으로 걸었다. 수용소처럼 황량한 적색 시멘트 건물뿐인 기숙사가 아닌 아이보리 빛, 얼핏 봐도 외국스러운 거리. 모든 것을 담고 싶었다. 눈에도 카메라에도.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서관. 처음 들어가 본 미국의 공립도서관은 낡은 시간의 흔적만큼 바랜 책들에서 나는 종이 냄새까지 낭만적이었다. 앉아 책을 읽을 여유는 없었지만 빙글빙글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나선 계단을 올라 내려다본 도서관의 풍경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엄마의 본분을 잊지 않고 어린이 도서관까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안내 시간표를 집어 들고 나오는 길, 내 마음은 충족감으로 가득했다.


발길 닿는 대로 극장이며, 식당가며, 공원이며, 걷고 또 걸었다. 혼자 아이와 있어 본 경험이 거의 없던 남편은 언제 돌아오냐는 독촉 문자를 10분 단위로 보내왔다. 마음이 급한 만큼 발은 몹시도 바쁘게 걸으며 바쁜 와중에도 눈으로는 모든 것들을 담고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보며 좋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남편과 아이에게 연민의 감정마저 들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리버티 스트리트 이후로 단 한 번의 자유와 카메라 들고 걷기를 경험하지 못했던 나는 친해진 기숙사 동생들에게 그날의 충족감에 대해 신이 나 설명을 하고 있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 이상 뉴저지에 지내고 있었지만 한 시간 거리 뉴욕은 자주 가도 뉴저지 곳곳은 돌아보지 않았다는 동생들 앞에서 나는 여행블로거답게 사진들을 보여주며 한껏 의기양양했다. "어머 언니 거기 위험한 곳이라 우리 남편도 가급적이면 가지 않는 곳이에요." "정말? 전혀 몰랐는데? 그렇게 안 보였는데?"


사람은 무식하면 용감하다. 그리고 아는 만큼만 보인다. 나의 첫 출사 장소이자 이후 한 달은 그때의 충족감으로 살아갈 만큼 만족을 주었던 뉴브런즈윅은 뉴저지의 다른 곳들보다 평균적으로 93% 이상 범죄율이 높은 곳이었다. 나는 자칫 첫 홀로 외출에서 범죄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었다.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그 시간이 소름 끼치는 공포의 시간으로 변하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이 날의 경험으로 나에게는 한 가지 확실한 습관이 생겼다. 미국 내 어느 곳을 가던 방문 전 항상 안전도 체크하기.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미국은 총기 소지 가능 국가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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