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속삭이는 순간
동경에 다시 살 준비를 하던 작년 10월, 우연히 발견한 이 집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하는 것만 빼면 충분히 좋았다. 혼자 지내기엔 꽤 여유로운 공간과 넓은 남향 창, 욕조, 넓은 수납까지 그럭저럭 아늑한 나만의 공간을 꾸밀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런데 이사를 하고 아직 짐도 들어오기 전에 빗물이 샜다. 하필이면 장마처럼 10월은 2-3주 정도 계속 비가 왔고, 집주인이 고쳐주긴 했지만 불안한 마음이 썩 가시진 않았다. 얼마전엔 온수기가 고장나서 일주일 정도는 동네 목욕탕을 가야했고, 집 바로 옆 도로를 큰 트럭이 달릴때마다 집 바닥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이거 정말 괜찮은거야? 지진이 나면 무너지지 않을까?
살아보니 아주 좋은 것 만은 아니었다. 창이 큰만큼 바람이 세어서 겨울에는 히터를 틀어놓아도 늘 추워서 오돌오돌 떨어야했다. 여름은 무엇이 시작될까..
1년을 살고나면 이사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년내에 이사가면 해약금을 따로 내야하기 때문에 8-9월즘에는 집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집 거실 탁자에서 종종 일을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공간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어제밤에는 문득 거실을 둘러보고, 그래도 참 괜찮은 집인데 말이야. 라고 무심결에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는 이 집을 옮겨야한다. 하지만 딱히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감정이 괜찮다고 속삭인다. 애착이라는 것은, 정이라는 것은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적 가치에 끌려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이 빠지는 그 순간, 그 장면, 왜 그 마음이 시작되는지 우리는 사실 설명하기 어렵다.
오늘 선배가 초속5센티미터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그 영화(단편 애니메이션)를 마치 물없이 고구마 먹을 때의 그 목막힘(= 답답해서 속터진다)에 가까운 컨텐츠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보았더니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주인공들은 아주 작은 우연으로 관계를 발전시켜가고, 서로가 좋아하는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다. 여자주인공이 전학을 가면서 둘은 계속 편지를 주고받았고, 남자주인공 조차 더 먼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기차를 타고 여자주인공을 찾아가게 된다.
벚꽃잎이 떨어지는 속도가 초속5센티미터이다. 두 주인공은 편지를 1000통가까이 쓰면서도 마음은 1센티 정도밖에 가까워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이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기차를 타고 가서, 늦은 시간까지 그를 기다리던 여자주인공을 만나 첫키스를 나누는 순간, 두사람에게는 주변의 세상이 바뀌는 느낌을 받는다.
이 영화는 그래서 마음의 거리와 물질적 거리간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혹은 있다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때로는 아주 작은 행동이 마음 전체를 움직일 수도 있고, 때로는 수많은 행동을 통해서도 마음을 1센티도 움직이지 못할 때도 있다. 끊임없이 숫자와 정량화된 기준으로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마음이 언제 시작되는가, 그 마음을 내가 언제 눈치채는가, 그 마음을 어떻게 키워가는가, 그 마음을 어떻게 전달하는가.
손 등이 스치는 순간, 우연히 눈을 마주친 순간, 눈물을 닦아준 그 순간.
혹은 그 어떤 우연이 없더라도 꾸준히 오래 지내온 시간의 축적에서 느껴지는 소중함들.
마음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사라지는 것일까.
이것이 대상에 대해 품게되는 애착에 관한, 그리고 그 대상이 만약 또다른 존재라면 애착에 대해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관한 앞으로 시작될 기나긴 연구의 에필로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