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집

by 채진아

아빠가 송우리 터미널로 마중을 나왔다. 자동차 조수석에 타자마자 나는 아빠의 옆얼굴을 본다. 핼쑥해진 아빠지만 일을 하고 있기에 얼굴은 생기 있어 보인다. 내가 가져온 쇼핑백에 담아 온 내 몸통만 한 네모난 빨간색 통을 보며 아빠가 말한다.

“뭐야, 그 큰 통은?”

“이거 된장 통. 엄마가 된장 새로 퍼준다고 해서 가져왔어.”

자동차가 달리는 도중 오른쪽에 있는 노란색 상가 간판을 보고 그는 말한다.

“이 더운 여름에 누가 호떡을 먹나, 장사가 되나 저거. 얌얌 호떡.”

얌생이 같은 아빠 말투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문이 닫혀 있는 것 같은데?”

그는 운전하며 상가 간판을 혼자 중얼중얼 읽는 습관이 있다. 그는 무언가를 밖으로 소리 내어 읽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낯을 가리고 조용한 아빠가 애써 시끄러워지는 순간은 내 앞에서다.

8년 동안 아빠와 함께 일한 근우가 공장에서 출가하고 난 뒤 모든 일은 아빠와 엄마의 몫이 되었다. 7월 초부터 일이 많아지면서 아팠던 손가락 마디며 허리며 발이며 아빠는 아픈 곳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에 찜통처럼 뜨거운 공장 안에서 아빠는 팔과 다리에 빨갛게 두드러기 같은 것이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본 이후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일을 하는 데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아빠를 도우러 가야 하는데,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그 생각 끝으로, 포천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포천 집에 도착하면 누구보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건 엄마다. 엄마가 거실에 보이지 않으면 나는 엄마 이름을 크게 부른다.

“엄마!”

그러면 방 어디에선가 엄마가 툭 튀어나온다. 아이고, 진아 왔어. 두 팔 벌려 안은 엄마와 나는 한 몸이 된 채 한 발 한 발을 똑같이 번갈아 가며 오뚝이처럼 몸을 옆으로 기우뚱기우뚱거린다.

“들어오면서 마당에 피어 있는 꽃 봤니?”

엄마가 내게 묻는다. 그 소리에 나는 밖으로 나간다. 집 뒤뜰에 핀 백합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얗게 빛나는 백합을 이런 꽃을 바로 집 앞에서 볼 수 있다니. 이걸 다름 아닌 엄마가 심었다니. 엄마가 심어 놓은 달맞이꽃, 철쭉, 장미 같은 꽃은 봄과 여름 사이에 그 빛깔을 달리한다. 집 마당이며 주변으로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집을 등지고 앞을 보면 오른쪽으로 좁고 길게 뻗은 텃밭에 방울토마토와 가지, 호박 따위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밭에 나 있는 상추와 고추, 참외, 포도 그리고 엄마가 심어 놓은 꽃들을 보며 나는 달력 없이도 계절을 가늠한다.

집 앞에 놓여 있는 둥근 테이블과 라탄 의자에 앉아 엄마와 나는 이야기를 한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얘기를 엄마는 시작한다. 하도 많이 들어서 시작하는 말과 끝을 외우고 있을 정도다.

“아니, 아빠랑 산에 올라갔는데 사람이 주변에 없는 거 확인하고 내가 꽥하고 방귀를 뀌었단 말이야. 아빠가 날 똥그란 눈으로 쳐다보길래. 사람 없으니까 그냥 꼈지, 하니까 아빠가 뭐라는 줄 아니? '나는 사람 아닌가?' 이러는 거야. 그게 얼마나 웃겼는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엄마는 말을 잇는다.

“아빠가 웃겼던 적이 살면서 딱 두 번 있는데 그 두 번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가 않아. 하나는 또. 그거 왜 주몽이가 부른 거 있잖아. 아이스크림.”

“주몽이? 아, 엠씨몽?”

맞다, 엠씨몽. 근우가 노래방에서 아이스크림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가서 컴컴한 거야. 한참 이따가도 불이 안 들어오니까는 흐흐흫 아빠가 컴컴한 데서 뭐라는 줄 아냐? '어휴, 아이스크림 다 녹았겠네.' 하하핳핳핳하핳.

웃긴 얘기를 하는 도중에 웃어버리는 엄마는 나를 웃기는 데 매번 실패한다. 같은 이야기를 나는 모른 척 받아주지만, 언니는 엄마가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말하곤 한다. ‘엄마 그 말은 열 번도 넘게 했어.’

엄마도 본인이 그 말을 수없이 했던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엄마는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대화를 이어가길 바란다. 그렇게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아빠가 원래 그런 말 안 하는데 진아가 일 도와주러 오는 게 이쁘데. 나는 마음이 아려온다. 둘이서 이 찜통 같은 더위에 힘들게 일하는 걸 알고 있기에 더 자주 포천으로 오지 못한 나를 나무랐는데 엄마, 아빠는 내가 이주에 한 번만 찾아와도 그걸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조금만 주었을 뿐인데 큰마음이 되돌아온다. 부끄러워 차마 전할 수 없는 아빠의 마음을 엄마의 목소리로 듣는다. 그때 아빠가 공장 안에서 큰 소리로 말한다.

“실 나갔다!”

실이 나갔다는 말은 기계가 멈췄다는 말이다. 새로운 실을 연결해 줘야 기계는 다시 움직인다. 나는 한여름 태양 아래 뜨겁게 달궈진 공장 안으로 들어선다. 숨이 턱 막히는 한여름의 습함과 더위다. 아빠가 하는 일은 원사를 기계에 짜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박스 안에 여섯 개씩 들어 있는 큰 원사를 봉제 틀에 하나씩 옮겨 얹어 놓는 일이다. 한 개당 실의 무개는 약 5킬로그램 정도여서 원사를 하나 들 때마다 무거워 끙끙 소리가 절로 난다. 원사 가운데에 있는 보빙에 손가락을 넣어 양손에 한 개씩 한 번에 두 개를 들어 옮기면 일을 더 빨리 끝낼 수 있지만 손가락이 아파 금방 마디가 저려온다. 오래 일하기 위해 나는 원사를 하나씩 옮긴다. 아빠와 엄마가 원사를 연결하여 기계에 달면 기계는 다시 움직인다. 그렇게 하나의 큰 직물을 짜낸다. 원사를 다 올린 후 박스를 접고 비닐봉지를 주우며 마지막 뒷정리까지 하면 내 할 일은 끝이 난다. 정신없이 일을 하고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매트 위에 벌러덩 드러누우면 진이 다 빠져 그대로 잠이 드는데 그걸 반복하다 보면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샤워하고 나온 아빠가 팬티만 걸친 채 선풍기 앞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아빠의 팬티만 입은 알몸을 바라본다. 가슴은 축 처지고 가뜩이나 얇은 허벅지가 더 가늘어졌다. 다행히 팔다리에 난 두드러기는 옅어졌다. 많은 가족을 거느린 행복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아빠는 살이 빠지고 몸에 흔적이 남았다.

이른 밤, 이부자리를 깐다. 내가 포천으로 오면 엄마, 아빠는 안방이 아닌 거실에서 잠을 잔다. 내가 가운데를 기준으로, 왼쪽으로는 엄마가 오른쪽으로는 아빠가 자는데 보통 아빠는 열 시 정도에 일찍 잠이 든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남자는 보통 머리를 대면 십분 안에 잠이 들어 버린다. 어떻게 그렇게 꿈으로 빨려 들어가 코를 골기 시작하는지 잠이 안 올 때면 나는 그들이 신기하고 부럽다.

밤 열 시가 넘은 시각 코를 고는 아빠 옆에서 엄마와 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깊은 밤 진득하게 대화가 시작되는 날이 있다. 그날은 엄마, 나 둘 중 잠으로 곯아떨어지기 직전까지 얘기하다 잠이 든다. 대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잠을 이기지 못해 잠이 드는 것이다. 할 말이 너무 많은 나머지 부산스럽게 얘기하다 엄마가 나를 정말로 웃기는 순간 옆에 자고 있던 아빠를 까맣게 잊고 큰 소리로 깔깔댄다. 낮에 했던 얘기를 또 반복하고 거기에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어렸을 때 너 그거 상 받은 거 있잖아.”

“상? 나 상 뭐 받았는데?”

“바람이 부는 잔디는 양탄자 같다. 바다같이 넓은 우리 아빠. 글로 써놓은 거야. 상이란 상은 잘 못 받던 애가 글짓기상을 받아가 주고 그걸 몇 번이나 읽어 봤는지.”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밤에 나누는 이야기는 농도가 짙어진다. 그때의 대화는 혀로 굴리며 천천히 녹여 먹는 캐러멜 같다. 엄마의 입에서 이리도 많은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밤이 깊어지면 내가 껌뻑껌뻑 잠을 이기지 못해 눈을 감는 동시에 대화는 끝이 난다.

다음날 아빠는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일을 하러 나간다. 아침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엄마가 툭탁툭탁 주방에서 요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자고 있든 말든 엄마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요리를 만든다. 내가 집으로 가져갈 꽈리고추 무침과 메추리알 장조림을 만들고 있다. 엄마 또한 전날 늦게까지 일을 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반찬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노동을 한 내 몸은 두들겨 맞은 듯 말을 듣지 않아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누구를 위해 해 줄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이 없다. 나는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반찬을 반찬통에 담는 엄마 옆에서 꽈리고추 한 개를 엄지와 검지로 집어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한다. 고소하고 알싸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이번 꽈리고추 맛있게 잘됐네.' 나는 속으로 말한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면 늘 일정하게 맛을 뽑아낸다고 자부하는 엄마가 서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잠이 든다.

마음의 평화를 주는 안식처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밥과 여덟 명의 식기가 갖춰진 식탁, 매트가 깔린 시원한 거실, 거실에 누워 통창으로 보이는 연두색으로 물든 논과 투명한 하늘, 저녁에 걸을 수 있는 산책길,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밤. 그런 것들을 지나오고 나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끝없는 감사함과 삶을 느낀다. 엄마와 아빠가 온 힘을 다해 지켜내는 이곳에서 나는 바깥에서 들리는 소음과 걱정거리를 전부 잊는다. 나의 마음은 어떠한 파동도 일으키지 않는 잔잔한 호수가 된다. 엄마의 품만큼이나 포근한 ‘두 번째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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