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 포장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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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을 만난 뒤에도 한참 동안 인간"늘"은 많은 생각에 휩싸여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멍하니 그녀가 탈출한 문 밖을 쳐다보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건 자신이 사라진 그림자를 찾는 동안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주연이 검은 그림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자신에 대해 휘몰아치는 많은 감정들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가 멍하니 서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인간"늘"은 몇 시간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이 지금은 김 대표를 찾아가 따져 물어야 생각이 든 것처럼 다시 금빛 호수 공원을 향해 문 밖으로 나가 뛰기 시작했다. "늘"에게 분명했던 건 김 대표가 주연의 그림자가 그림자 세상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거라는 사실 하나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늘"에게는 철저히 숨긴 채 오히려 "늘"에게 사라진 다른 그림자들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생각하니, 자신의 몸을 그에 대한 수많은 의심의 실타래가 조여와 숨을 막히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늘"은 자신을 감싼 그 실타래가 풀어져야 살 수 있다는 듯이, 미친 듯이 9-B 표지판을 향해 뛰어갔다.
김 대표에게 물어야 많은 질문들이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기 시작했다.
'왜 주연의 그림자가 이상해졌다고 저에게 말해주지 않았나요?'
'그림자가 집어삼킨 사람을 다시 되돌릴 방법이 있나요?'
'당신의 가족만이 중요했나요? 주연도 저에게 남은 마지막 가족이었는데...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미친 듯이 뛰던 늘 앞에 9-B 표지판이 보였고, 그곳에 뛰어들 때까지도 "늘"의 질문들은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채 맴돌았고, 그래서 자신이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실은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그래서였을까? 늘은 자신이 벗어놓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그림자 세상에 들어가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미친 사람처럼 물속으로 뛰어 들어버렸다.
하지만 그림자 세상의 문을 마치 굳게 닫혀 있는 것처럼 "늘"이 아무리 그곳에서 허우적거려도 자신을 끌어당기는 어떠한 그림자도 빛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라앉으며 허우적 되는 늘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이 구해주기 위해 자신을 향해 헤엄치며 소리치는 말들만 공허하게 호수공원에 울려 퍼졌다.
"학생 안돼!!"
"학생!! 살아야지 살아야지 지금 힘든 그 일도 헤쳐나갈 수 있는 거야. 삶을 포기하지 마."
그렇게 헛된 몇번의 시도 끝에 늘은 갑자기 김 대표와 자신이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네가 그 도망친 그림자를 찾기 전까지는 이곳에 돌아오지... 못 할 거야"
"그럼요 당연한 소리를 하세요. 그런데 그 그림자는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글쎄.. 그냥 보면 알아 아마 알 거야."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들렸던 그 말이 지금은 절망에 가깝게 들려왔다.
마치 악마가 들에게 속삭이듯 기억 속 저편에서 저음의 어두운 목소리로 들려왔다.
"네가 그 그림자를 찾기 전까지는
이곳에 (주연도 주연의 그림자도 온전하게) 돌아오지 못할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림자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을 다음을 기약하며 뚝뚝 떨어지는 물을 자신이 돌아가는 길들을 축축하게 적시며 다시 주연의 집으로 돌아가던 늘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마치 주연의 집을 향하던 늘에게 문뜩 이상한 생각이 떠오른 듯 보였다.
'그 김 대표가 말한 사라진 그림자가 주연의 그림자인가? 그래서 보 알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주연은 죽지 않았는데... 김 대표는 분명 주인인 인간이 죽어서 기억을 지워야 할 그림자라고.. 말했는데. 그럼 주연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
그렇게 "늘"은 고개를 휘저으며 갑자기 든 생각을 더 이상 듣지 않겠다며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얼굴엔 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방울들이 맺혀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그림자 세상을 떠날 때 김 대표에게 정확하게 묻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는 듯해 보였기도 했다. 그렇게 우뚝 서서 자신의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소리 질리는 모습이 자신에게 막연하게 떠오른 생각들을 온몸으로 부정하는 듯이 너무 처연하게 보여서 마치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뿌리 약한 나무와 같아 보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런 늘의 모습을 눈살을 찌푸리며 부딪히지 않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 중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사람의 대화가 들려왔다.
"엄마 최근 뉴스에 뇌를 먹는 아메바가 있다던데 저 사람 이상해!"
"아까 금빛 호수 공원에서 자살한다고 뛰어들었다는 이상한 사람 있다고 온라인 카페에서 조심하라고 글이 올라왔던데.. 얘 가까이 가지 마라 혹시 모르니까 세상이 얼마나 흉흉하니..."
"네 엄마"
그들이 늘의 옆을 지나가고 나니 저 멀리 주연의 집 앞에서 시작된 것 같은 검은색 줄들 끝에 서 있는 그림자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곳인 것 같아 그림자들이 가득하네”
"어 그러네.. 정말 이곳이 맛집이래?"
"어 완전 새로 생긴 그림자들의 꿈의 맛집이래!"
"그래서 그림자들이 그 좋아하는 퇴근도 마다하고 이곳에 줄을 선거야?"
"맞아! 이곳에 그림자와 대화할 수 있는 인간"늘"이 살고 있다잖아. 인간과의 대화라니!! 정말 있을 줄이야 정말 꿈의 맛집이네! 늘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이 되다니 어쩌면 어쩌면은 말이야 그가 인간이니까 내 주인한테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전달해 줄 수도 있겠지 "야 너! 그렇게 살지 마 짜샤"라고 말이야 난 그거면 돼!"
"나는.. 그냥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아.. 그런데 오늘 내로 가능할까? 줄을 봐봐"
"그러게.."
주연의 집 앞에는 검은 그림자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마치 강남 유명 맛집에 줄을 선 듯이 끝이 없는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늘이 그 옆을 지나가자 그들은 웅성이기 시작했다.
"저 사람인가 봐.. 정말 어둡네.. 인간이 저렇게 어두운 색을 낼 수가 있어?"
"이봐요 당신 정말 우리말이 들려요?"
"뒤에 너! 이건 반칙이야 집에 들어가서부터 대화하라고 김 대표가 그랬잖아. 어디 내 뒤에 서 있으면서 어디서 새치기를! 확 나 버스기사의 그림자야! 새치기 제일 싫어한다고!"
그들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말들에 정신이 더 혼란스러워진 "늘"이 그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시끄러워요!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데.. 그림자들은 정말 너무 말이 많아.. 정말.."
"늘"이 그들을 향한 경고와 같은 말에 갑자기 그림자들은 갑자기 조용해지며 놀란 듯 "늘"을 쳐다봤다.
"정말.. 우리말이 들리나 봐.."
"와 아아아 아"
마치 김 대표의 소문을 듣고 반신반의하던 그림자들이 이제야 믿을 수 있다는 듯한 감탄하는 그림자들의 눈빛들이 인간"늘"의 걸음 한걸음 한걸음을 쫓아갔다. 그리고 조용히 하라는 "늘"의 경고는 무시한 채 걷고 있는 "늘"에게 손을 내밀며 속삭였다.
"팬입니다.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그림자들이 내민 손에는 주인에게 훔쳐온 것 같은 머리끈, 손목시계, 귀걸이 한 짝들이 올려져 있었다. 마치 뇌물을 주는 듯한 그들의 손을 늘은 차갑게 무시하며 주연의 집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뒤로 돌아보며
"9분 뒤에 들어오세요."
"와 아아아아아 아"
그림자들이 지르는 함성을 뒤로하고 늘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에 주인인 주연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엉망이 된 집에 그 집보다 더 엉망인 자신이 서 있었다. 비록 집보다 엉망이긴 해도 늘은 마냥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능한 한 빨리 그림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라진 그림자를 찾아 김 대표에게 돌아가야 했다.
"사라진 그 그림자가 주연이 아니 여야 해! 그래.. 아니 아닐 거야 다른 그림자일 거야 내가 보면 알 수 있는 그런 그림자!"
마치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는 인간 "늘" 앞에 9분이 된 듯 그림자 하나가 문을 통과해서 들어왔다.
눈치를 보는 듯이 구부정한 허리에 눈을 요리조리 살피며 마치 자신이 스파이가 된 듯하게 조용하게 입을 가리며 늘에게 다가와 물었다.
"여기가... 눈을 쳐다보기만 해도 과거를 맞춘다는.."
"네 그런가 봐요. 빨리 말해요 저 시간이 없어요."
"늘"의 대답과 함께 눈치를 보던 그림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비밀인데요.. 제 주인은 손가락이 없어요."
"네?"
"아니 손가락의 지문이 없어요. 열 손가락 다!"
늘은 이건 무슨 황당한 이야기냐며, 계속 눈치를 보고 있는 그림자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면 굳게 다짐했다.
'빨리 해결하고 주연을 찾아가야 해 늘 정신 차려! 너는 더 이상 예전의 네가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