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없는 여자의 그림자
"태어날 때부터 제 주인이 지문이 없었는지 아니면 지워진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 주인인 수진은 지문이 없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시련과 고초를 겪었어요. 제가 보기엔 현실세계에서 지문이 없다는 건 한편으로는 범죄자가 된 것 같아 보였어요."
"그건 비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 지문이 없다고 범죄자라니..."
"그럼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들어봐요!
첫 불행의 씨앗은 그녀가 처음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동사무소를 갔던 날 시작되었죠. 그리고 그곳에는 비도 오지 않고 바람은 시원하게 부는 그런 가을 날씨였는데, 이상하게 그 담당 남자 공무원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서 있었어요. 그 공무원의 손엔 땀에 젖은 듯 보이는 종이를 부들부들 떨며 당황한 듯 제 주인과 종이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제 주인 수진은 선명하게 찍히지 않은 지문 때문에 열 손가락 모두 빨간 인주를 묻히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해맑게 그 공무원을 쳐다보고 있었죠. 갑자기 그 공무원은 어떻게든 이 일을 해결하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는 듯 눈을 질끈 감더니 그나마 엄지손가락이 낫다며 엄지손가락에 빨간 인주를 가득 묻혀 찍게 하곤 수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3주 뒤에 오라고 말하고 사라져 버렸죠."
"그럼 해결된 거잖아요?"
"아니에요... 어쩌면 그는 해결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든 넘기고 싶었던 것에 가까웠죠. 왜냐면 3주 뒤 수진이 받은 주민등록증에 찍힌 지문에는 엄지손가락 지문이라고 말해야 알 수 있는 흐릿한 핑크색 줄무늬가 몇 개만이 그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그녀도 "늘"당신처럼 ‘내가 지문이 좀 흐린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그 주민등록증을 지갑 안에 넣고 말았죠. 두 번째의 불행의 씨앗이 된 거죠. 그리고 몇 년 뒤 그녀가 어렵게 발급받은 그 주민등록증을 분실해서 재발급을 받으러 갔을 때 그 불행의 씨앗이 열매가 그녀의 발 앞에 떨어졌죠. 동사무소에 있는 지문인증 기계가 그녀가 가진 모든 손가락을 대도 그녀가 그녀가 아니라는 듯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거든요. 결국 그녀는 어두운 표정의 공무원과 함께 어둑 컴컴한 골방에 끌려갔죠."
“… 그래서요?”
"담배 많이 피우는 듯 입술이 검은 공무원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죠. 이제부터 당신이 당신이 맞는지 직접 증명해야 한다고요. 말이 돼요? 분명 본인이 이수진이 맞는데, 지문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이 맞는지를 공무원 앞에서 증명해야 한다니..."
"그런데 자신이 맞는지를 어떻게 증명해요?"
"간단한 질문에 답하면 되는 거였어요. 평상 시라면 수진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할 질문들이었죠. 예를 들면 본인의 생일, 부모님의 성함과 출생 연도와 같은 간단한 질문이었거든요."
"그런데요?"
"수진은 처음 겪는 일이기도 했고,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담당 공무원의 태도는 쌓인 일도 많은데 이런 시간만 걸리고 귀찮은 일은 신입직원이 해야 한다는 듯이,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평상시 심장이 약한 그녀는 어두운 분위기에서 강압적인 말투로 질문을 툭툭 던지는 그에 대한 공포심에 수치스럽게도 본인 생일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나중에는 핸드폰을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어요.
"엄마.. 엄마... 나 생일이 언제지?"
"엄마 엄마 아빠 생년월일은?"
라고 울먹이며 전화를 하는 수진의 모습은 마치 시장에서 엄마를 놓치고 엄마를 찾아 울면서 시장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아기 같았어요."
"지문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그런 일을 겪다니.."
"이 일로 놀라긴 일러요. 그 이후에도 많은 굴욕적인 순간들이 수진의 마음에 문을 두드렸어요.
마치 "네~수진 씨라고요? 글쎄요…. 누구시죠?"라고 면전에 대고 욕을 뱉는 것 같은 일들이었죠.
예를 들면, 행복복지센터에서 인감 증명서를 뽑을 때, 월급 통장을 만들 때, 회사 출퇴근할 때 셀 수 없었죠. 마치 현실세계에는 지문으로 모든 걸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을 정도였으니까 말이에요. 마치 제가 있는 그림자 세상에서는 갖고 다니는 검은 카드가 현실세계에는 지문으로 통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몰랐어요."
"그렇죠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면 관심이 없어요. 수진은 심지어 무인 기계에게 무시를 당할 정도였으니까 말이에요."
"기계요?"
"공항에 있는 무인 자동 심사 대였죠.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검지를 찍고 지나가게 허락하는 시크하고 쿨한 무인 심사대는 그녀에게 출입문 입장과 여권까지 스캔하는 것은 허락했지만, 스캐너에 그녀의 손이 엄지 척을 하는 순간 ‘누구냐 넌!!’이라며 다시 출입문으로 돌아가서 절차를 밟으라고 야멸차게 명령했어요. 너 같은 여자는 처음이라는 듯 그뿐만이면 다행이었겠지만, 이런 여자에게 공항에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며 이 여자는 지문의 품질이 좋지 않아 정보화 기기를 통해 본인 확인이 어려운 사람이라는 듯 출국하는 모든 사람에게 들리도록 ‘삐삑삐삑’ 소리를 내며 다시를 외쳐댔죠.
물론 그 행위 자체가 자신에게도 초스피드를 자랑하는 자존심에 찬물을 뿌리고 심사 처리 시간이 일반 심사 대보다 오래 걸리게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식이 안 되는 그녀를 그냥 통과시킨다면 자신의 존재 자체에 의구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보낼 수는 없었던 것 같아 보였어요. 그렇게 수차례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결국 그녀를 일반 심사대를 가게 했어요. 마치 이 근처는 다시 알짱거리지 말라는 듯해 보였어요. 그 뒤로는 수진은 트라우마가 생긴 것처럼 그녀는 무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켰어요."
"그럼.. 무인인 모든 곳을?"
"가지 못하게 됐죠. 말이 돼요? 지금 시대에 무인 가게를 못 가게 되다니."
"손발이 모두 묶인 범죄자 같네요”
"이제 아시겠어요? 지문이 없는 것에 대한 불행에 대해서 말이에요. 미국으로 해외 출장으로 갈 때는 매일 악몽을 꾸는 것 같았어요. 지문이 없는 당신은 지문을 찍어 남겨야 하는 미국에 입국하지 못한다는 그런 꿈들이요. 본인이 여행사 직원인데 그 나라에 못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그래서 그 일도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렇게 집에 갇혀서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같아요."
"그렇군요..."
"늘"은 자신이 해줄 일은 없는 것처럼 가만히 그 그림자를 쳐다봤다. 그 눈빛을 눈치챈 듯 그림자는 간절하게 늘에게 호소했다.
"저는 그녀가.. 그렇게 죽어가는 걸 볼 수가 없어요. 제 주인인 그녀를 살려주세요! 이러다간 그녀뿐만 아니라 저도 속이 타 죽을 것 같아요. 사실.. 그림자는 죽을 일이 없지만.. 저는 그녀가 죽어가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잖아요"
그 그림자는 "늘"의 손을 꼭 잡으며 눈물을 흘리며 부탁하고 있었다. "늘"은 가만히 그 그림자의 눈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그 눈 속에는 과거 자기 주인들이 자살을 할 때마다, 말리지 못한 그림자의 모습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매번 김 대표를 찾아가 부탁을 했다. 이번에는 정말 아무런 욕망도 없고 욕심이 없는 그런 사람과 묶어달라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죽지도 않지 않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욕망이 없는 인간은 없듯이 그 그림자의 끝은 늘 자기 주인이 죽는 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은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그림자의 눈은 자신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형언할 수 없는 절망과 슬픔이 가득 느껴졌다. 그렇게 그의 눈을 빤히 보고 있는 "늘"에게 그림자는 말했다.
"살아는 있는 데 죽은 것 같은 그녀를 보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런데 당신의 소문을 듣게 된 거예요. 그림자와 대화하는 인간이 있다는 걸 말이죠. 그래서 저는 낮부터 이곳에 줄을 서 있었어요. 어차피 그녀는 밖에 나가지도 않을 테니까.. 이번에는 정말 제가.. 아니 우리가 그녀를 구할 수 있어요. 그녀의 인생 자체를 말이죠 저에겐 구체적인 계획도 있어요”
갑자기 눈이 빛나는 그림자는 늘에게 자신의 손을 피더니 그 안에 있던 꼬깃꼬깃한 종이를 피더니 말했다.
"지문이 없는 사람은 남길 증거도 없다."
그곳에는 수진의 연락처와 그림자가 보내고 싶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XX 살인 채용공고
한눈팔면 내 몸에 기어오를 것 같은 그것들
숨만 쉬면 나에게 달려오는 것들
내 인생에서 치우고 싶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들
이 모든 걸 한방에
깔끔하게 해결해 주실 분을 찾습니다.
스르르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