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 살인 신청하세요!
그림자가 내민 손에서 전해져 오는 미세한 떨림이 인간"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떨리는 손에 들려진 쪽지를 들고 "늘"은 확인 차 그림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 쪽지를 수진 씨한테 전해 달라는 건가요?"
그림자의 손을 비록 떨렸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늘"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아니에요. 그건 저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조금 더 자세히 이 쪽지에 적힌 글씨를 봐주시겠어요?"
"늘"은 그림자가 자신에게 건넨 쪽지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림자의 손가락은 살인이라는 두 글자 앞에 뭉개진 글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늘"은 하얀 거실 등에 종이를 비추고 최대한 눈을 가늘게 뜨고서, 그곳에 적힌 있었던 글씨의 흔적들을 조심스럽게 소리 내어 읽었다.
"청... 청... 부. 부.. 살인? 청부살인!!"
"역시.. 저만 그렇게 보인 게 아녔군요. 그런데 놀라운 건 벼룩시장 신문에서 처음 이 채용공고를 봤을 때 이미 이렇게 앞 글자가 지워진 상태였어요. 그래서... 불안한 마음에 바로 수진에게 전달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늘"씨가 괜찮으시다면 이곳에 전화를 해서 확인해 주실 수 있나요? 어떤 사람을 채용하는지.. 정말.. 그 "
"청부살인이 맞는지 말이죠?"
"맞아요."
"맞다고 하면요?"
"맞다고.. 해도.. 저는 그녀에게 이곳의 연락처를 줄 거예요. 어떻게든 살게 할 거예요. 비록 누군가의 목숨을 헤치는 일이라 해도 분명 지문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예요. 저는 이렇게 점점 죽어가는 그녀를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요. 혹시 당신이 저를 이기적이라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요. 전 태어날 때부터 수진의 편이에요. 그녀는 평생 저의 존재 따위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제가 싫다고 하면?”
"저는 바로 이 집에서 나가서 당신이 엉터리라고 소문을 낼 거예요. 그림자 말도 못 알아듣고 알아듣는 척하는 사기꾼이라고 엉터리라고 말이에요. 그럼 당신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퇴근까지 반납하고 저기 저렇게 줄 서 있는 그림자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겠죠?."
"매일 저를 찾아와서?"
"맞아요. 또 말하기 좋아하는 그림자는 나쁜 소문들을 좋아해요. 그 소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당신은 평생 괴롭히겠죠. 혹시 실이라는 강아지 이야기 아나요? 그림자인데 자신의 주인을 놓쳐버린 그 멍청한 그림자 말이에요 아직도 실이의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죠"
"늘"은 실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앞으로 이 부탁을 거절했을 때 자신에게 벌어질 일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져서 수진의 그림자에게 알겠다고 바로 고개를 끄떡이며, 자신의 핸드폰을 빠르게 들었다. 전화기 너머로 몇 번의 벨이 울리더니 둔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한껏 예민해진 그의 목소리에 "늘"은 역시 이곳은 위험한 곳이구나라는 느낌이 불현듯이 스쳤다.
"저... 그 벼락 시장 채용공고를 보고... 전화를 했는데요. 그 청부.. 살인"
잔뜩 주눅이 들은 "늘"은 그 남자가 들릴 수 있는 최소한의 데시벨을 내며 말을 전하고 있었다. 혹시나 자신이 잘못 말하면 본인이 청부살인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에 최대한 저자세로 어눌한 척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화받는 남자는"청부 살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책상을 두드리며 급발진하기 시작했다.
"아니에요! 청부 모시 깽이 아니라고요! 에이 퉷퉷! 도대체 몇 번째 전화야? 아씨 정말 오늘 하루 종일 재수가 없네. 참나 아니 빨리 사람 뽑아서 쌓인 일을 처리해야 된다고 유명한 홍보 대행업체에 광고를 맡겼더니 하루 종일 이런 장난 전화를 받고 있고 아주 경쟁업체에 손님 다 뺏기겠네! 참나."
그리고 그가 전화를 뚝 끊으려는 찰나
"늘"에게 전화받은 사람의 그림자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도대체 오늘 전화들이 다 왜 이 모양이지? 바람피우는 부인을 죽여달라는 사람이 있지 않나? 게임하는 남편의 손가락을 잘라달라고 하지 않나? 심지어 해외 유명한 킬러라고 에프킬러라고 자신을 채용해 달라고 장난전화가 오지 않나.. 아무리 봐도 벼룩시장에 채용공고는 문제 될 것이 없는데... 먼지 청부 살인이라니 얼마나 위트 있어? 참나.. 청소부 하나 뽑으려다가 혈압 올라 내 주인 잡겠네 아주"
전화기 넘어 들리는 그림자의 말을 듣고 "늘"은 먼지라는 단어를 넣어 다시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먼지) 청부 살인 채용공고
(먼지) 한 눈 팔면 내 몸에 기어오를 것 같은 그것들
(먼지) 숨만 쉬면 나에게 달려오는 것들
(먼지) 내 인생에서 치우고 싶지만
(먼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들
이 모든 걸 한방에 깔끔하게 해결해 주실 분을 찾습니다.
늘은 다시 그 먼지를 넣어 읽은 채용공고를 읽자마자 긴장감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갑자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자신의 배를 잡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말이 되네 그래.. 그것도 청부 살인이지!!"
"왜요? 뭐라는데요? 사람 죽이는데 맞데요? 킬러 뽑는데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진의 그림자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늘"의 흔들리는 어깨를 더욱 세차게 흔들며 질문을 해댔다.
"나에게 좋은 생각이 났어요!"
한참을 웃기만 하던 "늘"이 옆에 있던 그림자를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당황스러운 "늘"의 밝은 모습에 그림자는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무슨..."
"당신이 저에게 준 이 쪽지는 청소업체예요. 먼지 청부 살인 요청을 받아 처리하는 곳이래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 딱 필요한 업체죠."
그 말을 들은 그림자가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질러진 옷가지들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들과 뒹굴고 있는 먼지가 보였다. 그림자도 이곳에 "늘"이 숨을 쉬며 살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가능한 한 빨리 먼지 청부 살인자가 와야겠네요."
"그래서 말인데... 이 업체에 다시 전화해서 이 집을 청소해달라고 요청하는 거예요. 사례는 충분히 줄 테니 제가 원하는 사람이 이 집을 청소해달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그 사람이.."
"수진 씨군요!"
"맞아요. 대충 아는 사람이 그 사람이 청소해 주었더니 인테리어를 새로 한 기분이었다고 말해서 꼭 그분이 우리 집을 청소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거죠. 그 전화받는 사람도 혹 할 거예요 지금 사람 구하는 게 급해 보였거든요"
"오!"
"늘"을 쳐다보던 그림자의 눈에 경애심으로 가득 차 보였다. 역시 인간은 다르다는 느낌과 자신이 이번에는 죽어가는 누군가를 그냥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니라 살리는 일을 한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이 벅차올라 보였다. 그리고 "늘"은 이를 알아차린 듯 때를 맞추어 그 경애심의 정점을 찍을 대사를 뱉었다.
"그림자가 꼭 누군가의
그림자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 사람의 마음의
빛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가 보여주자고요"
"늘"의 집에서 첫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수진의 그림자를 본 다른 그림자들을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수진의 그림자는 마치...
"모나리자의 미소를 그 그림자에게서 본 것 같아요."
"아니에요 반 고흐에 별이 빛나는 밤에 를 그림자 눈에서 본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저는 클림트의 "키스"에서 나는 화려한 빛을 그에게서 보았어요”
그리고 그가 주연의 집에서 나가자마자 “줄은 무슨 줄이냐며 그림자끼리”라는 소리가 들리더니 서로 들어가겠다고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폭동이 일어난 그림자들 사이로 발소리도 나지 않은 검은 그림자가 조용히 그들 곁을 지나더니 주연의 집 벨을 눌렀다.
"딩동 딩동"
"늘"은 첫 번째 그림자와 상담에서 느꼈던 여운을 뒤로한 채 대답했다.
"네! 들어오세요"
"그럼 실례합니다."
그림자들이 내뿜는 아우라가 아닌 뭔가 서늘하고 어두운 기운을 품은 검은색 형체가 "늘"의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