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서의 등장! 그는 아군인가, 적군인가
실례합니다를 외치곤 주춤주춤 거리며 들어오기를 망설이던 그림자의 발은 어느새 소리 없이 "늘"이 있는 곳까지 걸어와서 가만히 멈추어 서서 “늘"의 귀에 귓속말로 들릴 듯 말듯한 소리를 내며 인사를 했다.
"저... 기.. 기 안녕하세요."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늘"이 소스라치며 뒷걸음쳤다.
"아니.. 이게 무슨!!"
"아.. 아! 죄송해요.. 제 목소리가 좀 작은 편이라서 이렇게 말하는 게 습관이 돼서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했어요.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신 건지.. “
"사실 저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늘"씨를 도와드리러 왔어요"
"네? 그게 무슨.."
"창문 밖을 보시겠어요?"
"늘"이 창문 밖을 보니 야구장의 벤치 클리어링을 보는 듯 그림자들이 서로의 없는 머리를 잡고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서로가 먼저 "늘"에게 이야기하려고 하는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죽자 사자 싸우는 그들의 모습에 당황하는 "늘"에게 가만히 다가온 그림자는 다시 귓속말로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저들은 늘 저런 식이예요. 이기적이고 말 많은 그림자들.. 저들을 통제하려면 항상 규칙이 필요하죠. 그런데 그걸 제가 할 수 있어요. 저는 그림자 세상에서 오랫동안 그들의 하는 모든 일을 기록하고, 통제하는 일을 했거든요. 심지어 그 그림자 세상에 대표라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도 알고 있죠. 아 아 먼저 제 이름을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제 이름은 "조 사서"라고 해요. 그림자 세상에서 도서관에서 책들을 관리하는 사서로 일했었죠."
"아.. 그분.."
"늘"은 실이가 자신의 그림자 어머니에게 들었던 김 대표가 실이의 무능하다고 흉을 보던 대화의 기억에서 상대방이 사서였다고 스쳐 지나가듯이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를 아세요? 신기하군요. 김 대표가 저에 대해서 말했을 리가 없을 텐데..."
"아 실이가.. 말한 적이 있어요."
"아 실이 그 충성스러운 강아지 말씀이시군요. 그렇군요. 그렇군요."
마치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조 사서"는 몇 분간 고개를 끄떡이더니 바로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설명했다. 조 사서는 자신의 취미가 그림자들의 이야기를 모으는 일을 하는 "이야기 수집꾼"인데, 이곳에 그림자들이 핫플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그림자들의 대기 명단을 받아 "늘" 이야기 상담소의 예약을 전담하는 직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대가로 그가 바라는 건 한 가지 "늘"의 그림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같이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그 제안을 들은 "늘"도 첫 상담에서 수진의 그림자에게 협박을 받았기 때문에 증거로서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자 조 사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늘"의 동의가 떨어지자마자 "조 사서"는 밖에 나가서 싸우는 그림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조 사서는 자신의 말투를 "늘"과 나누었던 작고 나긋나긋한 여성스러운 목소리에서 강하고 굵은 바리톤 목소리로 바꾸어서 그림자들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봐 그림자들!! 조용! 나야 조 사서!"
“조 사서“라는 그 한마디에 미친 듯이 싸우던 그림자들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싸늘해졌다. "늘"은 조 사서가 같이 나가지 말고 거실에서 대기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저 창문 밖에서 그들의 모습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서로의 머리를 잡고 미친 듯이 싸우던 그림자들이 조 사서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마치 유령을 보듯이 그들의 시선을 일제히 조 사서를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의 아랑곳하지 않고 조 사서는 말을 이어갔다.
"나 알지? 여기서 이렇게 싸우면 안 되지! 어이 거기 만수 그림자! 그 손 좀 놓는 게 어때? 아니면 너 어릴 때 이불에 오줌 싼 이야기 여기서 해 볼까 하는데..."
"아아아아... 안돼!!! 여기 여자 친구도 있다고!"
"그래 조용히 해야지! 그리고 거기 지현 그림자 네가 술 먹고 필름 끊겨 집까지 네 발로 걸어갔던 이야기를 해볼까? 당신 어머니한테도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잡고 있는 그림자 머리 좀 놓지 그래?"
"아.. 안돼... 알았어.."
"아시다시피 난 여러분이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치부책에 적어 갖고 있는 그림자 조 사서야! 그러니까 앞으로 내 통제를 따라! 아니면 당신들의 이야기를 그림자 세상의 블라인드 게시판에 실명으로 올릴 테니까! 그럼 그 뒤로 펼쳐질 일은 알지?"
"아아아 아안 돼!!!!"
그림자들의 절망으로 포효하더니 다시 약속한 듯이 다시 서둘러 줄을 서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떤 그림자의 눈에는 절망이 어떤 그림자의 눈에는 슬픔이 서렸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이 정말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집어삼키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집 안에서 지켜보는 "늘"은 마치 조 사서가 마법을 부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그가 한 한마디 할 때마다 편의점 음료들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모습에 그가 마법을 쓰는 건 마법사가 아닐지까지 의심스러워지기 까지 했다. 그러면서 저런 능력자가 자기 발로 들어오다니 수진의 그림자가 말했던 그림자 세상에 끼치는 소문의 파급력을 새삼 더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그림자들이 다시 일렬종대로 모이자 조 사서는 다시 얼음보다 더 차가운 말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곳은 모두 예약제야. 오늘은 "늘"씨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는 게 힘들어 보이니까. 여러분들이 이 명단에 이름을 적고 가면 내일부터 내가 연락할게. 그 말은 굳이 이곳에 서 있을 필요가 없다는 거야. 다만 내가 연락을 했을 때 안 오면 바로 다음 그림자에게 넘어간다는 것만 알아둬"
"하지만... 나는 오늘 이야기를 해야.. 벌써 세 시간이나 기다렸다고."
"누구는 안 기다렸어 나는 다섯 시간 째라고!"
"야 기다리는 게 뭐가 중요하니? 이야기 내용이 중요하지! 내가 먼저야!"
다시 그림자들이 싸울 기세로 바뀌자 조 사서는 차분하게 말했다.
"조용.. 조용!!!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거야? 다시 말해줘? 예약제라고!"
그러면서 조 사서는 자신의 품고 있던 붉은 책으로 된 책을 두드리며 그들이 볼 수 있게 높게 올려 보였다. 그 책을 본 그림자들은 다들 사색이 되어 명단에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 책 표지에 "그림자 세상에서 네가 한 일은 나는 다아 알고 있다!"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럼 그럼 예약을 해야지 맞아 조 사서가 말이 다 맞아"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마무리되고 그림자들은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사라졌다. 조 사서 또한 오늘은 "늘"에게 쉬라며 내일부터 차근차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고 "늘"을 안심시켰다. 조사서의 능력을 창문 너머로 본 "늘"은 마치 행운의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어깨가 든든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라면 빨리 일을 끝내고 곧 주연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그 안도감 때문인지 몰라도 "늘"도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잊고 바로 깊은 잠이 들 수 있었다. 심지어 내일 이 지저분한 집을 청소할 수진이 온다는 사실도, 주연이 사라진 것도 늘은 눈을 감은 순간 모든 일이 꿈처럼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두운 밤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켰고, 사라진 그림자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조 사서 말이야...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 김 대표가... 죽였다고!"
"맞아.. 나도 분명 그렇게 들었는데.. 주인인 인간을 죽여서 김 대표가 그림자 세상에서 사라지는 벌을 내렸다고 들었어.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그들의 이야기가 "늘"의 귀에 스쳐 지나간다.
"조 사서 그림자 아니고
저주받은 악령 아니야?
사실 둘 다 검은 형체여서
서로 구분하기 힘들다고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