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표의 과거 : Ahn estelle's
돌아온 나의 아버지의 모습은 한없이 초라했고, 그의 모습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을만큼 초라한 검은 가죽같은 형체 만이 남아 있었다.
심지어 내가 문을 열어주기 위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는, 양말을 5일 정도 빨지 않고 신고 나갔는데 비가 내려 홀딱 젖어버린 양말에서 나는 역한 냄새까지 풍겨왔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내가 어느 정도 안 에스텔을 잇는 피리 연주가로 그림자 세상에서 인정받고 있었다고 어머니 또한 부업을 하며 우리의 삶이 통나무를 간신히 붙잡고 가 아닌 두발로 건널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다시 정상괘도로 돌아올 때까지 어머니와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처럼 시간이 갈 수록 우리 눈에 비친 그는 마치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그를 나에게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주인 때문에 그도 그렇게 된 것이라고 두둔하며 황급히 그가 술로 엉망으로 만든 방 안을 치우곤 했다.
그렇게 그가 돌아오고 잠시 밝아졌던 내 인생의 빛이 찰나의 순간이었구나를 깨닫게 해준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림자 세상의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 돌아온 아버지는 술에 곯아 떨어 주무셨고, 어머니는 부업을 나가고 없는 텅 빈 방 안에 나 홀로 앉아 처음으로 그를 자세히 쳐다보게 되었다. 어릴 때 보았던 아버지의 딱 벌어진 어깨는 어느새 불에 잔뜩 그을려 타버린 새우등처럼 굽어 있었고, 그의 손은 파리가 음식을 먹고 손을 비비듯 심하게 떨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나 또한 그림자들의 말처럼 곧 그렇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갑자기 나를 덮쳐왔다. 그 불안감들은 얼마 전 다시 돌아온 나의 아버지에 대해 오늘 중앙 분수공원에서 공연을 하다가 우연이 그림자들에서 비롯 되었다.
"야 그거 들었어? 그가 다시 돌아왔데 다른 여자랑 바람나서 도망간 그 그림자 말이야. 한때는 그래도 촉망받는 음악가였잖아 클클클"
"맞아 안 에스텔의 첫 제자가 될 뻔한 자였지. 그런데 안 에스텔이 받아주지 않았어 그의 음악 안에 어둠이 너무 많다고 했데 어두움 그림자가 그를 곧 집어삼킬 거라고 했다던데 역시 안 에스텔이야! 사실이 되었잖아 클클클클"
"그럼 그 아들도 곧 그렇게 되는 거 아니야? 그의 아들이잖아! 피는 물보다 굵다는데..."
"진하다겠지 이 멍청이야! 그래도 안 에스텔의 제자니까 다르려나? 지켜보자고 클클클클"
그들은 내가 공연을 하는 내내 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듯이 나를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뒤척이는 소리에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는 다급하게 어둠 속에서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안 에스텔이 나에게 준 피리를 더듬더듬 찾아서 충동적으로 불기 시작했다.
"그와 나는 달라. 그래 나는 그의 아들이지만 그와는 달라!"
연주가 시작된 지 몇 분이 흘렀을까?
눈을 떠보니 내 앞에 자고 있던 아버지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일어나 앉아서 내 연주를 듣고 있었다. 심지어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모습 속에서 어머니가 말한 너무 사랑했지만 주변 그림자들의 외면과 무시 속에서 잃어버린 게 아니라 버릴 수밖에 없었던 소중한 그 무엇이 음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연주가 끝나자 아버지는 처음으로 나에게 덜덜 떨리는 그의 거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나지막이 나에게 피리를 불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갑자기 피리를 불게 된 아버지의 피리 소리는 처음에는 너무 생경해서 음침하고 한없이 나를 침잠하게 만드는 것 같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 침잠한 곳이 심해로 변해 곧 나를 그곳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게 만들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그의 연주에 너무 놀라 아버지에게 멋지다고 벌떡 일어나 소리를 쳤고, 한참을 부끄러워하던 아버지는 자기 주머니에 꼬깃꼬깃 뭉쳐있던 악보 한 장을 펼쳐 보여주었다. 그곳엔 어떤 노래 가삿말들이 적혀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다시 피리를 주며 같이 연주해 달라고 말했다. 그가 노래를 부를 테니 말이다.
“아들 우리 같이 해 보자”
그의 제안에 나는 나도 모르게 피리를 들었다.
순수한 그림자로
태어난
그들의 운명은
늘 그들의 주인에 의해 정해지지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보낸 이의
그림자에게는
최고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고
하루 종일 움직이지 않고 어두운 상념만을 붙잡고 있는 이의
그림자에게는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을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아버지가 부르는 그 곡은 정말 오묘하고 이상한 가사였는데, 오히려 나에게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왔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 피리라면 아버지를 정상괘도로 돌려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희망이 다시 나에게 평범한 그림자 가족이라는 타이틀을 걸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아버지에게 내 소중한 피리를 맡기고 출근길에 나섰던 것 같다. 나 대신 이 피리가 아버지의 소중한 무엇을 찾게 하길 바라며 말이다.
'그래 그가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면 내게 가장 소중한 이 피리로
그의 가슴에 난 구멍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스승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집에 돌아온 나는 나의 그런 생각이 얼마나 하찮고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여전히 손을 떨고 있던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내 소중한 피리가 아닌 소주병이었다. 그는 나의 피리를 그가 지금 마시는 소주 한 병과 바꾸었다고 말했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피리 얼마나 한다고! 딸꾹 이것도 피리고 저것도 다 피리인데 말이야 딸꾹”
하며 그는 자신이 떨고 있는 손에 들고 있는 소주병을 입구에 입을 댄 채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그런 그에게 내 전부를 맡겼다니 한심한 나를 탓하며 나는 울며 집을 뛰쳐나왔다. 아버지가 팔았다는 그 집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렸다.
“내가 멍청했어 그는 내 아버지도 그 무엇도 아닌데..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스승을 그에게 팔아 버린 거야 이 멍청하고 가난한 내가 말이야!”
그리고 그 집에 도착해서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렸다.
"제발 제발 돌려주세요 제 피리를 제발요! 제 스승이 제게 남긴 유일한 유품이에요! 제발!"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자 그 문에서 뚱뚱한 체격의 남자가 문을 열었다. 다행히 그의 손에는 피리가 들려있었고 불행히 이미 그 피리에는 이미 햄버거 육즙 같은 기름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아무 쓸모없는 이 소리도 안 나는 피리를 술주정뱅이에 속아 사고 말았어. 이게 안 에스텔의 피리일 리가 없어 소리도 안 나는데.. 네가 혹시 그 사기꾼에 아들이니?”
“네네네 무슨 말을 하셔도 그건 제 피리예요. 그러니까 그 피리를 저에게 주세요”
“공짜로? 말도 안 돼! 공짜는 내 사전에 없다! 흠흠흠 돈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데!”
“하지만 저도 돈이 없는데...”
“그럼 이 피리를 불어봐라 클클클클 어차피 소리도 안 나는데 그래도 네가 분다면 내가 그래 꽁으로 주지! 하지만 못 분다면 너는 평생 내 발이나 닦아야 할 거야~ 그것도 평생 말이야"
그는 더럽고 냄새나는 그의 발을 나에게 꼼지락 거리며 치켜들어 보여주었다.
그는 내가 고개를 끄떡이자마자 햄버거 기름이 덕지덕지 칠해져 있는 피리를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말없이 그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때 마침 바람이 불었고 그 소리에 길을 가던 그림자들이 점점 내 곁에 모여들기 시작했지만 그 어느 것도 나는 느낄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믿었던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내 전부를 다시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 인간에 평생 족쇄가 채워진 그림자의 인생에 대한 분노가 나를 휘감고 있었다.
"바람아 불어라 그래 모두 다 휩쓸어 버려라
살아있는 그 모든 것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