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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Mar 02. 2023

엄마! 어서 와 이곳이 나의 운동장이야

엄마! 엄마도 해봐 필라테스!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습관적으로 수업마다 외치는 비명소리가 있었다.


"선생님 그건 정말 못 해요"


그러면 어김없이 그 소리에 맞춰 옆집 애견샵에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왈왈왈왈"


혹여 내가 수업 중에 원장님에게 물을 조금 먹고 오면 안 되냐고 묻는다면 원장님의 대답 대신 들려오는 강아지 짖는 소리가 마치 '그런 개수작 피지 말고 시킨 동작이나 하라'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운동이 끝나고 나면 소금 통에 절여진 삼겹살처럼 한없이 축 늘어져 실연당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거리며 엄마에게 통곡의 전화를 걸곤 했다.


"엄마... 음.. 마..."

"하하하하하하 오늘도 시체구먼.."

"음.. 마.. 집이 너무 멀어요 언제 가나요?"

"멀긴 뭐가 멀어 얼른 가 그런데 그 필라테스가 그렇게 힘들어?"

"응 온몸이 사우나에 온 것처럼 아주 절여져 왜?"

"아니 나 혼자 산다에서 김광규 씨가 하는 거 보니까 해보고 싶어서 시골 근처에 있나 검색해 봤더니 없더라고"

"그래? 요새는 웬만한데 다 있는데.. 아쉽게 됐네 엄마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그래? 그럼 우리 동네 오면 1회 체험권 등록해 줄게”


엄마가 필라테스를 해 보고 싶다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나의 이 고통을 엄마와 와이파이처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김포에 놀러 온다면 1회 체험권을 몰래 끊어드려 나의 운동장에서 나처럼 고통에 몸부림치는 엄마를 상상하며 기쁨에 몸부림쳤다.


'언젠간... 후후후후'


그리고 바로 어제 엄마가 김포에 놀러 왔다. 드디어 나의 오래된 계획을 실행하기로 하고 필라테스 샵에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한 후 강제로 엄마에게 내 요가복을 입혀 필라테스 샵으로 끌고 갔다.


산책을 간다고 끌려 나온 엄마는 몇 분 후 자신이 필라테스를 하러 가고 있다는 걸 통보받았지만 생각보다 강한 저항 없이 태연하게 걷는 엄마를 보며 나는 약간의 MSG 공포심을 뿌리기로 결심했다.


"엄마... 필라테스 끝나고 나면 걸을 수도 없을걸?"

"진짜? 그렇게 힘들데? 엄마는 60댄데 할 수는 있데?"

"그럼 죽지는 않아 걸어서 나오기는 할 거야! 푸하하하하 "

나는 음흉한 웃음을 지은 채 필라테스 샵에 도착했고, 원장님께 엄마를 맡기고 조용히 속삭였다.


"원장님 저희 엄마는요 요가로 달련된 분이라 운동 강도는 아주 세게 해 주세요"

"그래도 60대이신데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신지.."

"없어요 저희 엄마는 익스트림한 걸 좋아하세요 부탁드려요"

"아 정말요? 저도 그럼 분발할게요"


원장님의 열정에 반짝이는 눈을 보니 안심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를 두고 돌아섰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엄마를 데려오기 위해 필라테스로 향하는데 내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드디어 힘없어 대답도 못 하는 딸에게 그게 뭐가 힘들데? 운동은 하고 오긴 한겨?라고 핀잔을 주는 엄마에게 복수를 했다는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걷지 못하는 엄마를 부축하며 걷는 나를 생각하며 필라테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원장님과 엄마의 대화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아니.. 선생님! 벌써 끝났어요? 한 시간이? 아휴.. 아쉽네"

"아니 어머니 왜 이렇게 잘하세요 나이가 믿기지 않으세요 대단해요"


이건 또 뭔 소린가? 날아갈듯한 쌩쌩한 목소리의 엄마와 원장님이 나를 반겨주었다. 엄마의 볼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뜯고 좋아하는 아이처럼 신나 보였다.


"딸 벌써 왔어? 엄마는 너무 재밌었어"


원장님의 얼굴은 엄마보다 더 상기된 채 나에게 말했다.


"어머님이 진짜 잘하세요 나이가 안 믿길 정도로 첫 수업에 이 정도 진도는 처음이에요 따님 두 분보다 훨씬 잘하세요."

"끙... 아... 이게 아닌데.. 네.."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갈아입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필라테스가 너무 일찍 끝났다며 아쉬워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내가 매우 아쉬워졌다. 분명 내가 상상한 엄마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의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집으로 가는 길에 한 시간은 부족하다며 다음에는 두 시간을 끊어달라고 말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엄마 미안해 오늘부로 내 운동장은 임시폐쇄야 엄마에겐 너무 작았나 봐..'

나는 한번도 올라가지 못한 곳을 엄마는 첫날에 등반했다.
그래도 멋지다 우리 엄마!!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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