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정적이 도는 사무실에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린다. 정각 9시가 되자마자 울리는 전화기에 나는 번호를 확인하고 크게 한숨부터 쉬며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오늘도 다짜고짜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
“허 과장 굿모닝 특별한 일은 없었어?”
마치 특별한 일이 없었던 것이 내가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나의 상사의 목소리이었다.
“네 총지배인님 굿모닝. 뭐 늘 있는 일이 있었어요. 로봇이 불친절하다느니 인간미가 없다느니 뭐 그런 컴플레인들 말이죠.”
“그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런데 로봇들에게 인간미를 바라는 건 너무 한 거 아니야? 로봇도 자기 나름 최고의 서비스 로봇답게 노력하는 걸 텐데 말이야. 아무튼 허 과장이 로봇 통해서 대충 과일이나 올려줘 인간미 있게..”
“네 이미 그렇게 했어요.”
“아 맞다 허 과장 그 이야기 들었어? 허 과장 다녔던 그 호텔 올해까지만 운영한다고 하더라고 하던데.. 씁쓸하겠어. 하긴 그 어마어마한 객실 수로 지금까지 버틴 게 대단한 거지”
“네 들었어요. 다 그런 거죠 뭐”
“그래 우리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우리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그래도 인간과 로봇이 서로 협력하여 운영하고 있는 중이니까”
“아.. 네..”
“그럼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수고해”
“네 알겠습니다.”
10평 남짓한 공간에서 주인 없이 텅 비어 있는 6개 의자들 사이로 흔들리는 의자 하나에 걸터앉아 나는 지금 흔들리는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허탈한 표정을 억지로 누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총지배인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나마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지금 내 주변에 허탈하다 못해 일그러진 내 얼굴을 알아차릴 사람이 사무실에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호텔에는 나와 5개의 서비스 로봇이 전부였다.
코로나가 호텔업을 삼킨 지 10년째, 메르스도 사스도 쓰러트리지 못했던 호텔업계를 코로나는 들어온 지 단 6개월 만에 관광업계를 사막화를 시켜버렸고, 거의 일 년째가 되어갔을 무렵에는 수많은 호텔들을 폐업 신고 시키거나, 임시 휴업상태로 전환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덤으로 받은 추가 5년 코로나로 그때까지 간신히 인공호흡기를 대며 살아남았던 호텔들은 고정비인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여러 방면의 퇴직을 권고하기 이르렀다.
그렇게 현업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의 빈자리를 서비스 로봇들이 대체하게 되고 말았고, 점점 더 많은 분야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되고 겨우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아이러니한 일들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코로나가 일종의 감기처럼 바뀌게 되어, 사람들이 다시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야 했지만, 로봇들이 벌어서 받게 된 일종의 로봇 연금으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해짐에 따라 더 이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터에 돌아가서 9시간 이상의 근무를 더 이상 원치 않게 되었고, 오히려 그동안의 금욕적인 생활에 마치 보상이라도 받아야 할 굶주린 사람들처럼 미친 듯이 연애하는 폴리아몰리(비 독점적 다 연애) 현상들이 급증하게 되었다.
그 결과 급증하는 출산율과 동시에 가족의 개념이 한 가족이 아닌 우리 모두 다 가족일 수 있다는 가족의 개념으로 확장되어, 작은 객실을 갖고 운영하는 부티크 호텔 산업이 역으로 부흥하게 되었다. 이 현상은 자신들이 로봇보다 나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하듯이 자손 종족 번성이 우리와 로봇이 다른 점이라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인 듯 유행처럼 퍼져 나갔다. 어쩌면 그 모습은 지난 10년 동안 벌어졌던 수많은 질병과 자연재해 그리고 천재지변을 겪고 살아남은 인간들이 이제 더 이상 도덕과 윤리라는 잣대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시 인류를 번영하게 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사라지면 우주의 먼지가 될 텐데, 우리 아무나 다 같이 사랑하자’
그러면서 객실 수가 많았던 호텔들은 모두 폐업하게 되었고, 곳곳에 있었던 편의점 자리에 50개도 안 되는 객실을 가진 부티크 호텔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했다. 심지어 슬리퍼를 신고 몇 걸음 걷지 않아도 부티크 호텔을 갈 수 있는 집들을 슬부권이라고 해서 인기몰이를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티크 호텔들의 대부분이 국내 로봇 체인들로 (세븐스타 로봇, 메가 슈퍼 로봇, 풀 로봇) 들어서기 시작했고, 로봇 체인 호텔을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로컬 부티크 호텔들은 고군분투하기 시작했다.
그 시대에 나는 서울 중구에 있는 로컬 부티크 호텔에서 서비스 로봇들의 관리자로, 28개 남짓한 객실을 소유하고 있는 곳에서 ‘나 혼자 인간, 로봇들과 호텔에서 일한다.’ 몸소 실현하고 있다. 다소 과장된 표제인 나 혼자 인간 호텔을 지킨다. 에 비해서 내가 하는 일은 다소 단순했다. 매일 총지배인에게 호텔 점유율과 로봇들이 처리한 일들에 대한 결과를 보고하고, 서비스 로봇들이 접수받은 컴플레인을 정리하여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고 결과 값만을 보고 하는 일이었는데, 딱히 총지배인과의 전화 통화 말고는 다 AI 시스템으로 처리하는 일이라 굳이 입을 열어 말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점점 주변에 생기는 국내 로봇 호텔 대기업 체인호텔들이 생기면서 우리 호텔의 점유율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므로, 총지배인과의 통화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처럼 잔인한 형벌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호텔에 혼자 남게 된 이유는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식 보고를 선호하는 총지배인의 성향이었고, 소유주의 뚝심이었던 서울 중구 중심에서 유일하게 로컬 부티크 호텔로서 인간미가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의견 때문이었다. 나 또한 이곳에 오면 내가 마치 로봇들의 상급자로서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행동하게 하는 유일한 인간을 느끼게 되는 쾌감을 느끼게 되어 다들 떠남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혼자 남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 총지배인과의 전화통화에서 불쑥 튀어나온 GRAND FOREVER FIVE STAR HOTEL이 폐업한다는 소식이 낚시에 찌가 되어, 잃어버린 지 오래되어 모래 더미와 같이 바닥에 묻혀 있었던 나의 기억을 다시금 끌어올리고 말았다.
“그 호텔이 그렇게 사라지다니 상상도 못 했는데, 그래도 그때는 내가 참 찬란했던 순간들이 많았었는데…….”
총지배인이 사라진다는 그 호텔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근무했던 호텔이었다. 햇수로는 7년, 처음 인턴으로 입사해서 2년, 사원으로 2년 그리고 주임으로 2년 마지막 대리로서 1년을 보낸 나의 찬란했던 순간들이 빛나는 보석들을 담겨 있는 보석상자처럼 그곳에서 꿋꿋이 버텨주고 있었다. 그런 곳이 사라진다니 나의 찬란했던 추억들도 모두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에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 지기까지 했다.
비록 나는 떠났지만 그래도 그곳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에서 받는 위로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곧 흔적도 없이 사라져, 손님과의 눈물 넘쳤던 추억도 동료들과 밤새 일을 하고 오징어 짬뽕을 들이키며 해장했던 그 기억들도 사라질 것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퇴사 후 처음으로 그 호텔의 이름을 검색해 봤다.
검색어: GRAND FOREVER FIVE STAR HOTEL
‘이제는 안녕 00 호텔’
‘친구들과 술 진탕 마시고 커튼에다가 토했던 00 호텔’
‘내 인생의 결혼식과 결혼기념일을 매년 챙겨준 00 호텔’
‘유일하게 인간미 가득했던 00 호텔이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검색 창에 쏟아지는 많은 기사들 속에 호텔을 마지막을 장식하는 수식어 속에 AI는 끊임없이 새로 오픈한 로봇 부티크 호텔을 추천하고 있었다. 광고 엄청 쏟아부었네.. 체인 호텔이란.. 나는 그 현란한 광고 속에 눈을 질끈 감고 그 호텔을 수식할 수 있는 나만의 수식어를 찾아 조용히 하얀 종이 위에 검은색 모나미 펜으로 끄적끄적 적어 본다.
‘내 생애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간직한 00 호텔’
그 순간 거의 죽어가는 이 로컬 부티크 호텔을 살릴만한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황급히 그 아이디어가 사라질까 봐 빠르게 컴퓨터 화면에 그려져 있는 메모리칩이라는 곳을 더블 클릭하며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더 메모리 회사에 연락해서 우리 호텔과의 협업을 제안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