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만히 때를 기다려 복수할 때를 !!
화가 난 인도 손님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였을까?
나도 손님의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알아들은 말은 Wedding photo, TV , Fell down 정도였다.
이제부터는 단어 조합이다. 음 그러니까...
화난 손님에게 차마 다시 말해달라고 말을 하지 못한 나는 눈치껏 대답했다.
“아 그러면 직원을 객실로 보내드릴까요?”
그는 갑자기 웃으면서
“Yes yes please /오호 그렇게 해줘"
를 연달아 말하면서 다시 자기가 얼마나 난감했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그 상황을 설명할 때는 그의 기분이 진정돼서 그랬는지 안 들렸던 말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불행히도 이곳에 출장을 오게 됐어.
그래서 결혼사진이라도 보려고 가져왔는데
사진을 보다가 잘못해서 TV 아래로 들어가 버렸지 뭐야...
진짜 나한테 소중한 사진인데 올라오는 그 직원이 꺼내 줄 수 있겠지?”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그가 꺼내 줄 거라고 말하자
그가 힌디어로 당신은 최고라는 찬사를 보냈다.
“아차해(최고예요)”
그 말에 나도 잊고 있었던 힌디어로 대답을 했다.
“딱헤띡헤(좋아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좋다고 연거푸 말했더니 뒤에 있었던 직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드디어 저 주임이 미친 것인가?’
라는 듯한 시선이 말이다.
나는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그 인도 손님에게 내가 두바이에 있을 때 간단한 힌디어를 배웠다고 일부러 크게 설명을 했다. 그 말을 듣은 내 뒤에 직원들은 '아하' 하고 그 시선들을 거두었다.
그렇게 전화가 마무리가 되고 인식 오빠는 고맙다고 다음에 한턱 쏜다고 말했다.
비록 그 한턱은 아직도 얻어먹지 못했지만, 내가 오빠를 조금 응원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에 다음에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나를 잘 피해 다니라고 경고성 멘트만 날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 전화를 끊자 내 머릿속엔 지나간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두바이에서 호텔리어로 일하면서 만났던 많은 외국인들과의 기억들이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언어 배우기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을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어 리스닝만 가능했던 내가 두바이 호텔에 갈 수 있었던 건,
두바이 호텔에 취업하기 위해 면접장에서 면접관에게 마지막 하고 싶은 말로 “SEE YOU AGAIN"을 말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비록 내가 아는 다시 보자 라는 가장 멋진 문장이었지만, 다행히 그 문장이 내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던 면접관 때문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영어 스피킹을 못하고 리스닝만 잘하는 내가 두바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방법은 남의 나라 언어를 눈치껏 따라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두바이에는 다국적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영어를 잘하지 않아도 눈치코치 백치미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눈, 코, 백)
그중에 눈치 하면 나였다.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둘째 딸로 태어나서 첫째의 눈을 피해 그녀의 옷을 입어야 했고 그녀의 기분을 미리 파악해서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날을 파악 했던 것이 자연적으로 눈치를 잘 보는 것이 장점이 되어갔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자연스럽게 손님의 눈치를 봐야 하는 호텔일에 발을 담그고 아직도 남편의 기분을 눈치를 살피고 있는 나를 보고 소름이 돋았을 때도 있다. 성장을 멈추지 않는 나의 모습에 말이다.
그리고 그 눈치라는 말이 좋은 말로 하면 남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빨리 다른 나라 사람들의 언어를 두바이에서 배웠지 않았을까 싶다.
관찰할 대상이 많았으니까 말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말레이시아 이집트인 태국인 베트남 중국인 말 그대로 ‘We are the world’였다.
하지만 역시 그중 제일 먼저 배운 문장은 직원 식당 이모가 필리핀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꾸아이 구똠" /저는 배가 너무 고파요
였고 한 그릇 더 먹기 위해서는
“마사랍!! 마낭! 마사랍!"/ 맛있다 언니~ 맛있어
*따봉을 보여주면 가루로 된 망고 주스를 더 따라 주셨다.
였다.
또 아랍인이 레스토랑 책임 매니저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배운 단어는
“얄라 얄라"/ 빨리빨리
*그 지배인은 항상 Move your ass. 를 꼭 붙여 말했는데
엉덩이를 빨리 움직이라는 영어 속어였지만
그 당신에는 그 뜻을 잘 몰랐다.
였다. 그리고 그 말이 얼마나 한국인인 나에게 '착' 붙었는지 아직도 나는 그 단어를 남편에게 나도 모르게 쓰고 있다.
그렇게 피부와 와닿게 배웠던 언어가 또 있었는데 힌디어(인도어)였다.
뷔페 레스토랑 주방은 룸서비스 주문을 같이 받는 곳이어서 늘 바빴고,
그 셰프들 중에 호랑이 R 셰프가 있었다.
그 R 셰프는 인도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만든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 자기 음식에 컴플레인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면 불같이 화를 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레스토랑에 새로 들어온 직원이 그 셰프에게 컴플레인을 전달하게 되었는데,
그게 점점 레스토랑의 통과의례처럼 새로 들어왔다면 그 셰프에게 가야지가 된 것이었다.
선배는 우리가 처음 들어와서 영어를 잘 못 알아듣고, 그 셰프는 오히려 신입 직원에게 친절하다는 둥 여러가 지 이유를 댔지만 결국은 본인들은 욕먹기 싫었고, 오히려 신입들이 울면 다독여 주는 게 낫다고 오랜 경험에 의해 결론을 낸 것 같았다.
그렇게 새로 들어온 나는 신입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 셰프에 욕받이가 되었다.
(아마 이때부터 내 성격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 같다.)
비록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욕이라는 건 뉘앙스로 알았기 때문에 손님이 스테이크가 덜 익었다던가 음식이 짜다고 하면 나는 그 그릇을 들고 도망부터 가고 싶었다.
그러나 여지없이 내 손에 그 음식이 들려졌고 나는 또 욕을 먹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역시나 F로 시작하는 욕을 시작했고 나는 그가 음식을 다시 만들 때까지 그 욕을 듣고 서 있어야 했다. 비록 그 욕이 나를 향하진 않았지만 이 시간이 새로 신입이 들어올 전까지 내가 계속 감당해야 할 시간이라는 게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신입 교육 담당 니티시 주임이랑 그 R 셰프랑 웃으면서 힌디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속으로
‘맨날 나한테는 욕만 하면서 어쭈 웃기도 하네?’
라고 생각하면서 지나가던 니티시 주임님한테 물어봤다.
그는 인도에서 유명한 영화가 두바이 몰에서 개봉했다고 하면서 자기 보고 꼭 보라고 추천했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불현듯 한 문장이 떠올랐다.
“외국에 나오면 누구든 애국자가 된다.
그게 설령 호랑이 R 셰프라도!!
아무리 성격이 불 같은 그라도 외국이라는 두바이에 나와 있으니 애국자가 되어 자기 나라 영화를 홍보한 것이었다.
나는 이거다!
라는 생각으로 다음 쉬는 날 두바이 몰을 가서 그가 추천한 영화를 봤다
“옴 샨티 옴 (Om Shanti Om)”이라는 영화였는데 환생과 복수 그리고 사랑에 대한 막장 한국 드라마 3요소가 다 있어서 나 역시 그 영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netflix에 있으니 찾아서 보셔도 좋을 영화 남편 사룩칸이 국민배우고(우리나라의 최수종배우) 부인이 감독한 영화
영화를 보다가 신기한 점도 발견했다.
보통 인도영화는 1부, 2부로 나눠서 영화를 상영하고 그 중간에 쉬는 시간(Intermission)이 있어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영화의 내용도 전반부는 조금 느슨하게 진행되고 후반부는 다이내믹하게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그 영화에 빠져 들어 한참 그 영화에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아마도 그동안 다른 외국어를 이미 많이 접해서 그랬었던 것이었나? 그 속에 나오는 노래는 한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입에 맴돌았고, 그런 중독성이 강한 음악 때문에 몇 개의 힌디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나는 교육 담당 니티시에게 그 뜻을 물어봤다.
나는 반복 또 반복했다.
언어에서 반복 학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욕받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숨죽여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한가한 주방을 향해 다가갔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조심조심 걸으면서 말이다.
그리곤 나는 아무렇지 않게 R셰프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내가 또 컴플레인을 갖고 왔을까봐 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용기 내서 한마디를 던졌다.
“께세 헤?/힌디어: How are you? 에 해당된다. ”
그는 눈이 커져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는 그가 못 들었을까 봐 다시 용기 내서 크게 말했다.
“께세 헤? 오늘은 어떻냐고!”
그는 놀란 듯 한 얼굴로
“띡...헤?”/좋아
나는 그런 그를 보고
“아차해!(좋다니 최고네~)
라고 말했다.
그는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너 인도 사람 다 됐구나 하면서 웃기 시작했다.
그가 본 나의 모습은 마치 한국에 외국인이 한국어를 어색하게라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랴
나는 부끄러웠지만 앞으로 그게 내가 앞으로 이 호랑이 굴에서 살아남을 마지막 수단이었기 때문에 용기를 냈고 그는 그런 말들을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 물음에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옴 샨티 옴'이란 영화에서 들었다고 설명하면서 내가 본 영화 중에 제일 재밌었다고 노래를 비슷하게 따라 불렀다. 거기서 이런 노래를 들었어라고 말하면서
“뚬~꼬바에~무 제세~ 꼬야~ 뚬~”
아직도 그 뜻은 자세히는 모른다.
쐐기를 박았다. 나의 셰프의 킥이었다. (나의 MBTI 는 INTP이다.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 알아주시길)
그 모습에 그는 미친 듯이 웃더니 엄지를 들었다.
(그 모습도 마치 외국인이 트로트 송대관의 차차차를 부르는 모습과 같았을 것이다.)
그리곤 앞으로 자기를 엉클지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친해졌고 그가 나에게 화내는 일은 그 후로는 없었다.
오히려 그 뒤로는 그가 계속 힌디어를 알려줘서 동료들이 나보고 인도 사람이세요? 라고 놀리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2년간의 두바이 생활은 인도 사람이 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