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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May 30. 2023

나는 남편과 드라마를 볼 때마다 녹음버튼을 누른다

"응응" 남편

 남편 키가주니는 무언가에 집중할 때 입을 쭈욱 빼고 “응응”이라고 성의 없이 대답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 표현이 나는 너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공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 대답이 나를 농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늘 그렇듯 어두운 밤, 그가 퇴근하고 돌아와 내일은 휴일이니 같이 맥주를 마시며 드라마나 보자고 티비를 틀었을 때 발생하였다. 내가 맥주를 들이키며 말했다.


"크흐~ 야.. 엄정화 대박 완전 속 시원하다 나도 저렇게 말하고 싶다"

"응응"

"그치? 그런데 나중에 나 간 이식 필요하면 해줄 거야?"

"응응"


뒤를 돌아보니 입을 내밀고 핸드폰을 하고 있는 남편이 나의 눈을 돌게 했다.


"아... 진짜 너 뭐 하냐?"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

“아니 이럴 거면서 왜 나 제시간에 드라마 못 보게 하고 기다리라고 하는 건데! 어차피 혼자 보는 거랑 똑같구먼”


여기서 놀라운 점은 내가 화가 난 게 그가 핸드폰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내가 화가 난 포인트는 다시 그에게 그 드라마의 줄거리를 설명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 네가 다시 설명해 주면 되잖아 왜 그렇게 화를 내? 내가 지금부터 집중해서 볼게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됐다고?”


나는 화를 꾸욱 누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엄정화의 남편이 저 아저씨고, 엄정화를 좋아하는 의사가 저 잘생긴 청년인데..."

"그럼 불륜이네"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지난주에 설명해 줬잖아 저 남편이 불륜에 애를 낳았는데 엄정화를 속여서 복수하는 이야기라고 그리고 불륜은 아니지 저 잘생긴 의사 선생님만 혼자 좋아하는 거니까"

"엄정화를 왜 좋아하는데?"

"아니 그건 지지난주에 설명했잖아 엄정화의 주치의였는데... 됐다 말을 말자"

"아니 왜 해줘"


분명 같은 시간, 똑같은 자리에 앉아 닥터 차정숙이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그때의 줄거리를 다시 설명하고 있는 상황에 갑자기 현타가 몰려왔다.


"아니! 그럼 왜 그때 응응했는데!!"

"응응?"

"네가 나랑 드라마 볼 때마다 대답했잖아 응응 이라고..."

"내가? 언제? 아닌데.."

"분명했거든.. 이제부터 내가 녹음하고 만다 그리고 복수할 거야 내가 당한 거 몇 배로 돌려줄게!“


이렇게 억울한 상황이 계속되자, 오늘부터 키가주니와 드라마를 볼 때마다 녹음버튼을 키기 시작했다.


반드시 잡고야 만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덧, 오늘부터 마카오로 떠난 언년언니를 위해 다시 야솔이를 돌보기 시작했어요~이제 다행인 건 야솔이가 저희 집에 익숙해져서 이제 저를 감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움직이지마!!넌 포위 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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