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다로 떠난 그 범고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퇴사자의 소식

by 야초툰

“야 씨뱅아 다음 주 월요일에 시간 되냐? K선배가 만나자는데?”

“시간이 없어도 만들어야지! K 선배가 부르는 거라면”

K선배가 퇴사를 하고 나는 사원에서 대리가 되었고, 그녀 역시 초초고속 승진을 해서 한 부서를 책임지는 팀장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각자 다른 곳에서 승진의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바쁘게 스쳐 지나가기만 했고, 다행히 그 열차들의 승강장에는 그런 우리 둘을 늘 이어주는 유리 선배가 있었다.



보통 회사에서 퇴사를 한다고 말하면 동료들의 눈빛은 바뀌기 마련이다.

내 옆에 앉았던 동료에서 이제 자신의 일을 나에게 던지고 떠나는 배신자를 쳐다보는 듯한 그들의 눈빛들로 말이다. 처음에 그들은 퇴사자를 어떻게든 회유해 보려고 많은 조건부 조건을 제시하곤 했다.

- 주임을 꿈꾸는 자에게는 ‘언젠간 곧‘ 주임

- 타 부서 이동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곧 부서가 한가해지면’

하지만 그 퇴사자의 결심이 굳은 듯 보이면 바로 그 배신자를 쳐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싸악 바뀐다.

전우에서 적으로 우리에서 너로 말이다.


하지만 유리 선배는 달랐다.

그녀의 카톡에는 늘 퇴사한 사람들과의 대화로 가득 찼고 퇴사한 인연도 인연이라고 줄을 끊지 못하고 결국은 보이지 않은 많은 거미줄을 여기저기 만들곤 했다. 그리고 자신은 스파이더 해 우먼이 되어 그들의 소식을 물고 다녔다. 그래서 보통 점심시간에 심심해서 퇴사자의 소식을 물어보면

“몇 달 전에 퇴사한 개는 뭐한데?”라고 물으면

“아 개는 호텔은 다시 꼴 뵈기도 싫다고 여행사 들어갔데 “바로 동전을 넣은 자판기처럼 대답했다.

(호텔이 정이 떨어져서 간 사람은 여행사로 여행사에 정 떨어지면 호텔로 간다 라는 정설이 있다.)


심지어 어떤 때는 인스타그램을 알고리즘을 타다가 우연히 본 남자 퇴사자 피드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유리 선배의 얼굴을 그가 들고 있는 소주잔에서 찾은 적도 있었다.

“언니 어제 회에 소주 먹었더라~”

“어? 어... 어떻게 알았냐?”

“그래도 그 사람 퇴사했는데 동창회에 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야 나도 몰랐어.. 불러서 갔는데 동창회 자리더라 그래서 인맥 좀 넓혔지 뭐”

나라면 당황해서 다음에 보자 하고 돌아섰을 그 자리를 마치 주인공이 되어 마셔라 부어라 했을 유리 선배의 모습이 떠올라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를 좋아해서 침을 흘리고 찾아다니는 사람'이어야 마케팅 부서에 일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때 마케팅 부서를 향했던 마음을 고이 접어서 비행기를 만들어 멀리 날려 보내게 되었다.


"잘 가~훨훨 날아서 유리 선배 같은 사람에게 착지하렴~"


그러다 보니 그녀가 소식을 전하는 사람 중에는 절반 이상이 나와 맞지 않았던 사람들이거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매일 그들과 어색한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려는 그녀의 메시지는 늘 읽씹의 대상이었다.

“아니! 시설부 퇴사자는 어떻게 알아?!”

“야! 술 한잔이면 안 친해지는 사람 없어!”

그런 유리 선배의 성격 때문에 지금의 남편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유리 선배는 '자기가 우리를 이어주었으니 자신에게 명품 가방을 사주어야 한다' 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녀가 그럴 때면 나는 지금의 나의 남편을 소개해준 그녀에게 쌍둥이 칼 선물 세트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

“당신도 나와 같은 남자를 만나길 바라면서”


그러나 이번 만남 주선은 퇴사자 K선배였다.

당연히 있던 약속을 취소하고 나가야 했다.

“우리는 전우 아닌가? 고난과 비난을 같이 받았던!!!”

심지어 다음날도 쉬는 날이어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실수 있는 날이었다.

그렇게 기회의 날이 밝아 왔다.

술을 많이 마실 기회의 날


유리 선배는 저질 체력인 '예약실 미치다 지친 개'를 이태원의 어느 언덕 위에 파란색 복층 집으로 겨우 끌고 올라갔다. 유리 선배가 초인종 벨을 누르자 흰색 문을 열어주며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겨주는 K선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사람 사이에는 그런 관계가 있다. 오랜만에 만나도 마치 어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 말이다. 아마 그녀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고 그녀한테 나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서로를 애틋하게 얼싸안고 있다가 눈물이 나올뻔하다가 K 선배의 주방을 보고 쏙 들어갔다.

그녀의 부엌에는 방금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전쟁이 한바탕 치러진 듯한 야채들이 곳곳에 쓰러져 있었고, 겨우 야채들이 침투해서 올라간 접시들 위에는 형형색색 소스로 뿌려져 있었다.


아마도 K선배는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아침부터 치열한 전투를 한 것처럼 보였다.

“너네가 온다 해서 너무 긴장했나 봐 이것저것 하느라 이렇게 됐네~다들 눈을 감고 주방을 건너 저 테라스로 곧장 향해 주세요!”

K선배의 안내를 따라 테라스로 향하니 작은 전구들이 반짝 반짝이며 우리를 환영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빛들은 K선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 테라스 있는 집만 보고 다녔다는 말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K선배의 우리에게 다가와 이 조합은 생각도 못했다며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친해졌는지 물었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내가 I(내향형)이고 유리 선배가 E(외향형)인데 1년간 서로를 돌고 도는 숨 막히는 탐색전을 끝내고 결국 돌 I. E.(돌아이)되어서 친해졌죠!”

K선배는 나의 썩은 개그에 숨이 막힌다며 “어.. 어 너 참 많이 변했구나” 라며 어쩔 줄 몰라했고 그런 나의 개그가 이제는 익숙해진 유리 선배는 그런 나의 입에 상추쌈을 욱여넣었다.


갑자기 차갑게 얼어붙은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 나는 K 선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봤다. 얼음을 깨기 위한 내 질문은 어떻게 보면 우물에만 갇혀 있던 나에게 그녀의 퇴사 후 이야기는 매일 상상만 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언젠간 나도 나가야 할 바다였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었던 두려움을 대체할 행복한 결말을 꿈꿨다. 그녀는 소고기 한 점을 들고 씹으면서 말했다.

“아니 나도 이렇게 유명한 N호텔로 가게 될 줄 몰랐어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한 N호텔 총지배인이 밥을 같이 먹자고 나를 부른 거야~”

“갑자기요? 그 총지배인 외국인이잖아요! 독일 출신이라 했나?”

“아.. 어 뭐 그래도 영어로 말하는 건 떨리진 않았어. 면접도 아니고 밥을 먹는 건데 뭐…. 그보다 무엇 때문에 나를 불렀는지가 더 궁금해서 앉자마자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서 혼났잖아! 총지배인은 밥부터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나를 진정시키더라고 그때나 지금이나 성격 급한 건 숨길 수가 없나 봐~아무튼 N호텔 총지배인이 밥을 먹으면서 지금 N호텔에 세일즈 과장 자리를 못 뽑고 있어서 고민이 많았는데 N호텔에 투숙하는 친한 손님이 나를 그 자리에 추천했데. 세일즈 하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나? 그 말을 들은 총지배인은 갑자기 나를 만나고 싶어졌데. 왜냐면 그 손님이 진상 중에 개진상이었는데 그런 손님이 어떤 서비스를 받았기에 나를 추천하는 건지 궁금해졌다고 하더라고!”

“우와~엄청난 서비스 꾼!!”

“그런가? 아무튼 내가 우리 호텔에서 세일즈 주임인데 거기서 갑자기 N호텔에서는 과장이라니? 말이 돼? 나는 그건 좀 말이 안 된다고 했어 그런데도 총지배인은 자기가 최종 결정자니까 걱정 말라고 하면서 밀어붙이더라고 너무 부담스러운 자리라 나는 생각해 본다고 했어. 사실 거절하려고 했었지. 그런데 일주일 뒤에 N호텔 인사부에서 연락이 왔어 연봉 협상하러 오라고 말이지 나는 까짓것 그들이 절대 못 주는 연봉을 불러서 나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에 연봉 테이블에 불려 갔지!”

“그래서 그래서요?”

“나는 정말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단위의 연봉을 불렀어! 그런데 그들은 웃으면서 그거 받고 플러스알파를 더 준다는 거야! 그때부터 나는 흔들리기 시작했지!”

“얼마 얼마 준다는데요? 영혼이라도 바쳐야죠! 얼만데요?”

“그건.... 말해줄 수 없어... 암튼 내가 생각한 금액에 배에 해당되는 액수였어!”

“와! 그럼 가야쥐 가야쥐!”

“그래 솔직히 나는 그 금액을 보고 흔들렸어! 그리고 그 총지배인님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을 텐데 나를 선택한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는 말로 어느새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지! 왜 그런 말도 있잖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 말이야! 그렇게 나는 정신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보니 N 호텔에 출근을 하는 첫날이 된 거야! 그렇게 정신없이 출근을 했는데 출근하자마자 놀랄 수밖에 없었어”

“뭔데요? 뭔데?”

이건 술이 들어가야 말할 수 있다며 호텔에서 파는 비싼 와인이라면서 2병을 테이블로 가지고 왔다.

나는 갑자기 그 와인을 보고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음식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값 비싼 소고기가 15팩 뜯어져 소고기는 종적을 감추고 있었고 후식으로 먹을 N호텔 케이크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이제는 비싼 와인까지 정말 그동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호화스러운 식사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서 태연히 앉아서 음식들을 먹고 마시고 있었다.

어쩌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리에 앉기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음식과 음료가 자리에 앉으니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K 선배는 와인 코르크를 따서 이미 얼큰하게 취한 유리 선배를 잔을 가득 채워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벌써부터 취하면 곤란해 아직 할 이야기가 많다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잠들지 않는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