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응답이 응답이었다. 당신이 잘 살고 있다는...

팔리는 기억의 조건

by 야초툰

"뭐라고? 계약서에 점자는 너무 하잖아"

당황스러웠다. 이런 내용이 있었다고?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너무 하다긴 보단 전 확률을 높인 거예요. 김사장이 저에게 면접자들의 기억을 읽는다는 걸 거부감 들지 않게 사인할 수 있게 계약서를 만들어줘 명령했고, 저는 그들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확률을 높인 것뿐이에요 누가 좋아하겠어요? 자신의 기억을 읽는다는 걸 말이에요."


순간, 모리가 A.I.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성공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어쩌면 나도 그 숫자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졌다. 그래도 동료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럼 나 말고 다른 면접자가 있었다는 거야?"

"네 그랬죠. 다만 그들은 기억을 읽혔다는 걸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럼 수연 씨는 매일 확인하는 엑셀파일의 그 메일 주소들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셨어요? 저도 그들의 이름을 알아야 정보를 찾을 수 있잖아요."

"그냥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로 아무한테나 보내는 그런..."

"아무한테나 보낼 수는 없어요. 이건 저희 회사에 사활이 달린 일이라고요!"

"그럼..."

내가 말을 잊지 못 하자, 자신의 사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다시 한번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설명했다.


"당연히 팔리는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보내야죠. 제 데이터에 따르면 역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 대부분은 불륜이나 세기말 로맨스 아니면 복수를 다룬 이야기더라고요.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그런. 그래서 이곳에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의 기억들에서 연관된 주제를 찾기 시작했죠."

"그랬는데?"

"다들 재미없는 기억들 뿐이라 결국엔 무응답 불합격 통보가 되었죠. 웃기지 않아요? 본인은 모르지만, 이 회사에서 떨어진 이유가 너무 평범하게 살아서 라니 말이에요."

"그럼 나는? 나도 그런 기억은 없어!"


내가 정색하며 대답하자, 모리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네~에?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수연 씨 면접 때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 안 나세요?

"....."

"아니 제가 기억을 읽기도 전에 "저는 내정된 합격자예요"김사장에게 말했잖아요."

"뭐라고? 내가 언제? 이거 또 사기 치는 거야? 그때 난 김사장이 가장 힘들게 한 기억이 있냐고 물어서 분명히..."


"수연 씨는 그때 분명"제가 숨을 쉬고 있는 모든 순간입니다."라고 말하셨죠."


모리는 기다렸다는 듯 내 답을 가로챘다. 그리고 자신이 할 이야기에 흥분한 듯 말을 이어갔다.


"모든 기억이 고통이었다니, 너무 멋지지 않나요? 그럼 그 속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있다는 거잖아요. 저는 너무 흥분되었어요. 당신의 기억을 읽기도 전에 말이죠. 해피엔딩을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줄 알아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기까지 주인공이 저 바닥까지 꼬꾸라져야 하거든요. 동질감이랄까? 당신의 기억에는 그런 이야기가 넘쳐났죠. 그래서 당신의 기억을 읽을 때 저도 모르게 심봤다를 외칠 뻔했다니까요?"


모리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나는 불현듯 불안한 어떤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다급히 나는 회사 메일함을 열었다. 안돼 그 애만은... 불안한 마음에 손이 떨려서 비밀번호를 몇 번이나 틀렸는지 모른다.


보낸 편지함에 여태까지 내가 확인한 메일이 날짜별로 정렬되어 있었다. 나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스캔하며 메일함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하지만 나는 어제 보낸 메일 중에 맨 끝에 걸쳐있는 메일 제목에서 그 애 이름을 찾을 수가 있었다.


"서 차란 씨 당신의 기억을 파시겠습니까?"


보낸 메일은 이미 읽은 상태. 회수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예전과는 또 다른 절망이 나를 덮쳐왔다. 주먹을 불끈 쥔 채 내 머리를 두 팔 사이에 처박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어떻게 이걸 놓칠 수가 있지? 자책에 끝을 달리고 있던 나에게 미모리가 속삭였다.


"마침 서차란 씨에게 답변이 왔는데 읽어 드릴까요?"


모리는 내가 "그래"라고 대답하길 기다리는 것처럼 Re:라고 적혀있는 답장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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