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하려면 점자도 배워야 한다니...
6개월간 수습 기간을 거쳐 1년 계약직까지 과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일에 대한 만족감 또한 높았다. 내가 일 년 동안 하는 일이라고는 김 사장에게 엑셀에 적힌 이메일 주소와 실제로 미모리가 보낸 메일에 적힌 주소에 오타가 없는지 대조해서 보고 하는 것뿐이었는데, 엄청난 양인데도 불구하고 미모리는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
만약 내가 그 방대한 데이터를 직접 보냈다면 나를 믿지 못해 오타를 찾는데 하루 종일 걸리거나, 잘못 보낸 이메일을 회수하지 못해 상대방의 읽지 않음 표시가 읽음으로 바뀌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거나 둘 중의 하나였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입으로는 출력한 엑셀 파일을 읽되, 전적으로 미모리를 신뢰하며 동공을 살짝 내려놓고 있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290원짜리 볼펜은 이미 올림픽이 있다면 금메달까지 도전할 수 있는 스핀 실력을 갖게 되었다. 그런 나를 간파하고 있다는 듯이 미모리가 물었다.
"오늘도 영혼 가출 중? 아니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중?"
"아.. 아... 니거든? 미모리 도대체 그런 말들은 어떻게 아는 거야?
"수연 씨 제가 이래 봬도 수연 씨보다 아는 단어가 1254868500..."
"아아아 알았어 또 몇 분을 설명하려고 알겠어요 똑똑한 미모리 씨 오늘도 실수는 없는 거 같네요"
잘난 척만 빼면 참 똥도 안 싸는 괜찮은 동료인데라고 생각하며 돌리고 있던 볼펜에서 나온 똥을 종이에 비볐다. 오늘도 종이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표에 'Okay'라고 적고, 오늘은 이만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미모리는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말을 이어갔다.
"당연하죠. 수연 씨. 실수는 인간만이 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수연 씨가 8년 전 후배 스테파니에게 실수가 너무 많으니 답장을 보내기 전에 항상 확인하고 보내라고 질책성 메일을 보냈는데, 받는 사람의 주소를 스테파니 1이 아니라 무심결에, 본사에 스테파니 이사님에게 메일 보내는 것 같은 것을 실수라고 하죠. 그 메일에 대한 스테파니 이사님의 대답도 참 참혹했는데.. 그러겠습니다ㅎ 였던가? "
"아니... 그건..."
미모리 이 나쁜 계집애. 분명 면접 때 내 기억을 다 훑은 게 틀림없다. 미모리의 대답에 나는 순식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름이 느껴졌다. A.I. 인 네가 알아? 그때 그 ㅎ자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다음날 새파랗게 질린 부장님의 얼굴을 봤을 때는 정말…. 떠오르는 기억의 잔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아 눈을 질끈 감았다. 잊고 싶은 그 기억을 끄집어내다니 너도 한번 당해봐라!
"그래... 뭐 미모리 그때 그건 인정. 하지만 이것 봐 기억을 판다는 동영상의 조회수가 1억 뷰가 넘으면 뭐 해? 나도 내 치부를 너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는데, 기억을 판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A.I. 는 실수 안 한다며? 이번엔 했네 했어."
"..."
옛날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회의실에서 세일즈 직원들에게 비아냥 거리던 내 말투가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왔다. 사실 없는 말도 아니었다. 김사장이 나에게 자신 있게 된다던 기억을 파는 시장의 반응은 생각보다 냉랭했다.
기억을 팔 수 있다는 광고에 혹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선뜻 자신의 기억을 팔고 싶다는 문의는 없었다. 심지어 김 사장은 대출 빛을 독촉이라도 받는지 사무실을 비우는 경우가 잦아지기까지 했다. 내가 자신을 비난하는 것 같자 미모리 목소리가 다소 격양되게 흔들렸다.
"아.. 아니요. 저는 실수하지 않아요. 수연 씨! 분명 제가 데이터들을 분석했을 때 되는 시장이에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죠. 만약 저희가 지금 진행하고 파일럿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꿔놓는다면 분명 연쇄적인 판매 효과로 이어질 거예요."
"파일럿?"
파일럿이라니? 그건 내가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내가 모르는 프로그램이 있었나? 혹시 내가 잊어버린 건가 기억을 찾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는데, 미모리는 아무 말 없이 면접 때 내가 사인한 문서를 내가 보고 있었던 컴퓨터 화면에 띄어주었다.
불안한 마음에 화면에 바짝 붙어 내가 놓친 글자가 있나 확인하고 있는데, 기억과 다른 글자는 없었다. 다만, 당신의 소중한 기억은 영원히 돌려받지 못하게 됩니다.라는 안내 문구에 깨알같이 점자 모양인 것 같은 하얀 점들이 보였다.
"저런 게 있었나?"
나도 모르게 화면에 찍힌 그 점자들의 그림자를 중지 손가락으로 톡톡 치자, 미모리가 친절하게 번역해 주었다.
"아 점자를 읽어드릴까요? 수연 씨 점자에는 '그 외의 기억들은 미모리에 저장되어 회사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파일럿 프로그램에 사용됨을 안내받았습니다.'라고 적혀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