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기억에서 느껴지는 기시감
살인마가 일어난 듯 자연스럽게 암막커튼이 열렸다. 어둠 속에 자취를 감추었던 방 안의 모습이 서서히 영상 속에 드러났다. 새하얗다는 말이 어울리는 방. 하얀 솜이불 위에 가지런히 놓인 새하얀 면 베개들 하며 심지어 나무 협탁의 색조차 때 하나 묻지 않은 하얀색이었다.
무슨 결벽증이 있나? 싶을 정도로 먼지 하나 내려앉아 보이지 않는 방에서 어렴풋이 비치는 살인마의 그림자가 흰 옷에 묻은 더러운 얼룩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살인마에게 인간이란 이런 느낌일까? 일렁이는 생각에 숨이 막히면서도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기억이 시간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동시에, 별표로 가려졌던 댓글들이 하나 둘 영상에 올라왔다. '아 대박 살인마인데 결벽증인가 봐' '아마도 자신도 모르게 현장에서 묻혀온 증거들을 없애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걸까?'
그들의 궁금증은 살인마의 하루를 쉴 새 없이 따라다녔고, 그들의 시선은 기억을 따라 탐정이나 관객 혹은 주인공이 되어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았다. 그래서인지 실시간 댓글을 읽는 재미가 영상의 흥미를 배가 시켰다. 그들의 댓글은 차마 살인마 앞에서는 하지 못 하는 말을 익명이라는 아이디 안에 숨어서 몰래 쏘아대는 화살들처럼 느껴졌다.
살인마의 시선은 다시 침대로 향했다. 지난밤 살인의 자책감 때문에 악몽을 꿔서 사방으로 구겨져 있을 것 같았던 살인마의 이불은 지퍼락에 끝 쪽만 열려 있듯이 그렇게 누운 자리만 봉긋하고 올라와 있었다.
살인마는 그 이불을 침대에서 긁어내서 창문가에 가져갔다. 햇살 좋은 날씨에 먼지 나게 두드려 맞는다는 표현처럼 하얀 이불은 회색 난간에 부딪혀 공중으로 몇 번이나 패대기를 쳐진 후에나 이전보다 더 창백하게 보이는 낯빛으로 침대 위에 누울 수 있었다.
이어서 살인마는 다정하게 놓여 있던 베개를 들었다. 그 둘을 싸움이라도 붙이려는 듯 서로를 바라보게 한 듯 그들의 머리채를 잡고 힘껏 흔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람이었다면... 상상만으로 아찔해졌다. 그의 행동엔 죄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살인마의 행동엔 한 치의 오차가 없었다. 그래서 살인마의 걸음마저 한치의 망설임 마저 느낄 수가 없었다. 이번엔 베스트 댓글이 달렸다. '사람을 죽일 때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좋아요가 순식간에 999개를 돌파했다.
순간, 나는 고작 살인마의 동선만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수시로 띄어지는 댓글들이 이미 부풀어진 내 상상력 풍선에 바람을 넣고 있는 것만 같았다.
대화도 아닌 얼굴도 아닌 행동에서 이 모든 게 느껴지다니.
이런 나의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살인마는 자연스럽게 다음 동작을 이어갔다. 침대 위에 널브러진 이불 양쪽 끝에서 잡아당겨 매트리스 아래로 평평하게 접어 넣어 넣었다. 그리고 한참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마치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던 흔적을 없앤 것처럼 만족한 듯 묘하게 고개를 두 번 끄떡였다. 나 역시 깔끔해진 침대를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누군가를 죽인 후 청소도 저렇게 하는 것일까?
몇 분을 침대를 보며 가만히 서 있던 살인마는 이번에는 침대 옆에 놓은 하얀 협탁을 향해 걸었다. 살인마는 협탁 위에 놓여 있던 분무기에 하얀 오른손을 뻗었다. 이때부터는 기억의 영상에 슬로 모션이 걸린 듯 천천히 흘러갔다. 가장 살인마가 애정하는 기억인가? 분무기를 뿌리는 장면이 이어졌다.
햇살이 쏟아지는 창문에 스치듯 보이는 새하얀 팔과 다리 그리고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방울이 공중에 흩날렸고 햇살에 비쳐 알알히 빛나던 물방울은 이내 차르르 침대에 내려앉았다.
무언의 말을 예술로 승화하는 춤처럼 숨이 막힐 듯 아름다웠다. 분무기를 조금만 더 뿌린다면 영상에서 무지개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청소하는 모습이 뭐라고 이렇게 아름답지? 감탄을 하는 사이. 댓글이 달았다. 이번엔 아이디도 있었다.
"특급 호텔에도 이불이 축축하던데? 살인마가 청소한 거 아님?"
ID: 입을 세탁
그 댓글을 읽자마자 나는 충동적으로 대댓글을 달았다
"그건 아닐 겁니다. 보통 호텔에서는 분무기를 뿌려 정전기가 생기는 걸 방지하고 있거든요."
ID: 더 메모리 직원 1
더 메모리 직원 1이 내 아이디였지. 처음 더 메모리 컴퍼니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때 미모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메모리 직원을 뽑을지 모르지만 나에게 넘버 1을 달아준다고 만들어준 아이디였다. 넘버 1이라니 그때는 내가 무엇이 된 것처럼 기뻤는데. 충동적으로 쓴 처음 쓴 댓글에서 보게 되자 기분이 묘했다.
어쩌면 넌 직원으로서 중립을 지켜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살인마의 행동에 빠져버린 상태였다. 이상하게 살인마의 행동이 낯설지가 않았다. 너무 나와 닮아있었다랄까? 다음 그의 행동도 예상이 되었다. 혹시 내 안에도 살인마가?!
처음 내가 살인마와 같은 이불을 정리하는 시작한 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어떤 영상을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이 습관이 되자, 이불 정리를 하지 않고 나온 날에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니는 이름 모를 찝찝함. 어쩌면 하루의 시작이 무조건 이불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옭아 메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내가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살인마의 동선은 파란색 현관문 옆에 놓여 있는 빨래 통을 향했다. 그 안에는 흰색 빨래들이 수북이 담겨 있었다. 살인마는 그 빨래통을 바닥에 질질 끌며 주방으로 향했다.
싱크대에 흰 반팔을 하나씩 꺼내며 주무르는데 흰 옷이 전체가 땀으로 얼룩 졌던 것처럼 회색 구정물이 싱크대 배수구를 타고 흘렀다. 역시나 실시간 댓글이 다시 달렸다.
"저렇게 많은 흰 티셔츠가 땀에 젖을 정도로 뭘 한 거야?"
ID: 나는 셜록
"드디어 살인 증거가 나오는 건가? 빨간색 나오면 빼박이다!"
ID : 너는 셜록 나는 범인을 찾아서 곧 골로
도파민에 중독된 사람들이 미친 듯이 다는 댓글이 빠르게 지나갔다. 빨래하는 기억이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가 있다니.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듯이 이번에는 영상에 빨갛고 진득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열성적으로 댓글을 달기 시작했고, 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기억의 화면을 조금 더 조금 더 크게 확대했다.
'저건....'
분명 본 기억이 있다. 그것도 심지어 자주. 저렇게 빨갛고 진득한 액체가 나오는 물을 나는 주말마다 마주했다. 익숙하고 낯익은 발걸음. 딥페이크를 썼다하지만 사람 한 명 만나지도 연락이 오지도 않는 일상. 그리고 흰 빨래에 묻은 알 수 없는 형체의 빨간 물. 나는 다급하게 미모리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