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이불세탁님의 기억
남자는 태어날 때 세 번 운다라는 말이 있다.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전쟁이 났을 때" 하지만 나는 첫째로 태어난 남자에게는 태어날 때에는 울지 말고 웃으라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당신에게 쥐어진 인생에 눈물 자국 마를 날 없을테니.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이미 이번 여행에서 세 번 울었다. 마음으로 한 번, 형체가 알 수 없이 부서진 사체 앞에서 한 번, 그리고 관광객이 몰려 있는 쇼핑몰에서 마지막 한 번.
사실, 첫 번째 울음은 예측할 수 없는 여행의 예고편과 같았다. 발리행 티켓 발권을 끝내고 비행기 이륙을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때 한 겨울에 몰아치는 한파와 같은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인도네시아 가루라 가루라 딜레이 포 웨덜..."
창문 밖에 보이는 날씨와 상반되게 빨간색 딜레이라는 글자가 전광판에 적혔다. 내 심장은 널뛰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첫 환갑여행. 세 달 넘게 지우고 다시 세웠던 23번째 완벽한 내 일정표.
모든 게 완벽하게 준비되었다고 생각 한 순간, 맞닥뜨린 고통이었다.
심지어 햇빛이 이렇게 내 눈앞까지 내리쬐고 있는데 맑은 하늘의 배신이라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승무원에게 창문 밖 맑은 하늘을 가리키며 이렇게 맑은 데 왜 떠날 수 없냐고 따졌다.
"비가 세차게 내려도 떠날 수 있지만 바람이 세게 불면 비행기는 날 수가 없어요"
이봐요! 당신 대답에 이젠 내 마음에도 세찬 바람이 부네요라고 외칠 뻔했다. 언제 떠날 수 있겠냐고 묻는 내 질문에도 하늘만이 알겠죠라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오전 11시 35분부터 시작된 숨 막히는 기다림이 오후 6시가 되어야지 끝이 났다. 아니 끝이 난 게 아니었다. 계획형 인간으로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행과 열 아름답게 짜여 있는 일정표를 들고 있던 가족들에게 빨간 펜을 건네주며 말했다.
"제가 드린 펜으로 오늘 일정은 일단 빨간 줄로 그어주세요."
두 번째 울음은 거의 울분에 가까웠다. 7시간 비행 끝에 겨우 도착한 특급 호텔. 깔끔하게 정돈된 투 베드에 테라스까지 딸려 있는 객실이었다. 그래 전에 기억은 잊어버려, 이제부터 시작이야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갈색 라탄 라운드 테이블에는 방문을 환영한다며 웰컴 과일과 초콜릿이. 침대에는 직원들이 정성스럽게 수건으로 접어서 만든 백조가 서로 입을 맞추고 있었다.
"허니문이라고 해야 서비스를 많이 준다고 해서 신청했더니...."
나는 서둘러 백조로 접힌 수건을 풀었다. 그 모습에 아버지는 껄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네가 허니하고 내가 문하면 되겠네. 그래서 허니 다음 계획은 뭐데?"
아버지와 멋쩍게 서로를 바라보고 웃고 있었는데, 옆방에서 송곳처럼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여동생의 목소리였다. 나와 아버지는 황급히 옆방으로 뛰어갔다.
"바퀴... 바퀴벌레야!"
동생이 너무 놀라 침대 위에 뛰어올라서 울먹이고 있었다. 진짜였다. 살색 마루 바닥에 엄지 손가락보다 큰 갈색 물체가 두 개의 촉수를 사정없이 움직이며 런어웨이를 하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화장실에서 나온 씻고 나온 하얀 생명체가 “누가 감히 내 딸에게”라고 외치며 바퀴벌레를 향해 날아오른 것이. 방역 직원이 왔다고 해도 믿을 만한 속도였다. 그 후로 아버지와 내가 마주한 건 바퀴벌레의 사체뿐이었다.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어떻게 특급 호텔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그것도 내 가족 방에. 주체할 수 없는 화를 누르고 나는 프런트에 전화를 했다. 헬로라는 말이 들리자 하고 싶은 말은 목구멍까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부족한 짧은 내 영어 실력으로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카쿠로치 인 마이 룸. 플리즈 첵 마이 룸"
내 입술은 억울함에 더 말하고 싶어 몇 번을 뻐끔거리다가 결국 땡큐를 뱉었다. 전화기를 내려놓는 나를 쳐다보고 있던 여동생은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부모님은 잘 말했다며 축 처진 내 어깨를 툭툭 치셨다. 한국이었다면 15분 넘게 따질 수 있었던 문제를 열 다섯 음절로 끝내버렸다는 울분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마지막 피날레는 발리에서 생긴 일 그 자체였다. 발리 유명한 쇼핑몰. 캐리어를 파는 가게 안. 나는 다정하게 투닥거리고 있던 부녀의 그림자를 밟고 서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아빠만 믿어. 너희 오빠가 오면 내가 사라고 했다고 할 테니까!"
"그래도 돼? 그럼 나 이 빨간색 가방 살래 아빠."
"그래! 여기 이걸로 주세요!"
꼭 다정한 카쿠로치 같았다. 두 손을 꽉 잡은 그 모습이. 나는 둘이 갑자기 사라져서 한참을 쇼핑몰을 헤매었는데, 마주한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하지만 그들의 웃음소리에 묻힌 채,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억울함에 가게 벽을 쿵하고 쳤다. 그제야 인기척을 느낀 아버지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수만아! 아니 나는 정말 잘못이 없단다. 네 동생이 안된다는 데 꼭 이 가방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말리던 참인데 정말. “
거짓말. 지민이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시면서. 항상 나에게 돌아오는 건 네가 첫째니까 네가 참아라였는데… 결국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발리의 한 쇼핑몰에서 폭풍 오열을 하고 말았다. 누가 보면 발리의 조인성 같다고 할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여행에 꾸역꾸역 누르고 있던 눈물샘이 폭발하여 쏟아지고 있었다. 참으려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모든 걸 누르고 있던 여행과 첫째로서의 삶. 사실 그게 내 인생 그 자체였다.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은 조립되지 않은 투명 레고 박스를 손에 쥐어 주는 것만 같았다. 앞으로 내가 맞춰야 할 레고 박스라며. 그 안에 가득 써진 글씨.
첫째로서
처음에는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다. 나도 내 인생이 처음인데 누군가의 모범이 되어야 했고, 좁디좁은 내 어깨에 짐을 가득 지어야 했다. 와 씨 이럴 거면 박태환 같은 어깨를 주던가. 그리고 결국 아등바등 버티고 있던 내 어깨의 짐이 와르르 쏟아졌다.
"이젠 정말 몰라 다 포기할래요. 다들 마음대로 하세요!"
자포자기의 심정이랄까? 준비한 일정표를 그들의 눈앞에서 다 찢어버렸다. 종이를 찢으면서 이상한 희열이 느껴졌다. 그 뒤의 일정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미모리가 틀어준 영상이 끝났다. 아마도 아직 플랫폼에 올려진 기억이 아니라 기억의 주인의 생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기억의 주인인 수만 씨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어깨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전화기 너머로 따지는 이불세탁님의 컴플레인도 정답게 느껴졌다.
"이건 무슨 울기만 하는 사람 같잖아! 이건 내 기억이 아니야. 난 울보가 아니라고! 내 기억 판다는 거 취소할래!"
취소라는 말을 하자 미모리가 그 말을 인식한 듯 안내문구를 적었다. 나는 미모리가 적은 문구를 이불세탁님에게 그대로 말했다.
"기억을 판매한다고 동의한 약관에 적혀있다시피, 판매를 결정한 기억은 고객님의 세포에 남은 기억들을 뽑아 영상화한 기억이기 때문에 만약 취소 환불 시 해당 기억은 영원히 사라집니다. 그래도 취소 및 딥페이크 비용을 환불해 드릴까요?"
"뭐... 뭐라고? 그건...."
이불세탁님의 놀라서 울먹이는 목소리에 떨리는 음이 수화기를 타고 흘렀다. 행복한 기억이라고 판 대가
치곤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다. 환불 시 영원한 삭제. 나는 수만 씨를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