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란답게 찬란하게 빛나리
"수만 씨 만약 환불을 하시려면, 그냥 그 기억을 플랫폼에 올리는 건 어떠세요?"
충동적인 제안이었다. 옷이나 물건 따위에 흔하게 붙는 환불 불가라는 말이 기억이라는 단어에 붙으니 안타깝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냥 내뱉은 말이었다. 어차피 환불하면 사라질 바에 올려나 보자는 심상이었다. 내 제안을 들은 수만은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전 경험자로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차피 딥페이크 기술을 쓰기 때문에 수만 씨의 생각도 목소리도 모두 다 지워져요. 사람들은 수만 씨가 우는지도 아마 모를걸요?"
나는 마우스를 꽈악 쥐었다. 솔직히 수만의 기억은 첫째가 아니면 공감하기 힘든 기억이었다. 분명 판매는커녕 구석으로 처박힐 게 뻔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 말하다 보니 수만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덧붙여 미모리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몽글몽글 피어났기 때문에.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내 기억을 팔고, 커피 한 잔 사주지 않는 거지? 쿠폰이라도 만들어서 보내줄 수 있잖아.
미모리라는 A.I. 의 명성에 조금이라도 금이 가게 하고 싶었다.
“뭐 어때요? 돈도 벌 수 있는데 일단 올려봐요 우리! “
나는 우리라고 던진 찌가 가져올 파장을 익히 알고 있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숱하게 했던 말이었으니까. 그래 우리 조금 더 힘내볼까? 우린 가족 같은 사이잖아! 뭐 어때? 우리 사이에 부탁 좀 할게. 우리라는 말이 가져오는 파장은 실로 강력했다. 수만은 어쩌지 그러면 이라는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수만에게 던져진 찌가 흔들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래 라고 말해!
"하지만, 그건... 그래도."
배짱 없는 자식.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지. 일단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다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차피 당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이제 이것뿐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미모리 들었지? 수만 씨 더 메모리 플랫폼에 올려줘. 가격은 9,900원 어때?"
"좋아요. 제목은 뭐라고 올릴까요?"
"제목은 기억을 다 시청한 후에 공개됩니다.로 해줘"
갑자기 떠오른 제목치곤 완벽했다. 이것만 한 낚시성 제목은 없을 것 같았다. 무슨 제목이길래? 라며 몇 번의 조회수를 끌어올리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그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추가 구매는 이뤄지지 않을 게 뻔했다. 하지만 내 검은 속내를 알리 없는 미모리가 알았다며 작업을 시작했다.
정확히 3분 후, 업로드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나는 플랫폼의 로그인을 했다. 아이디가 직원 1에서 기억의 편집자로 등업이 되어있었다.
프로필 창에 보이는 검은색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모습의 캐릭터가 다소 저승사자 같아 보였지만, 이제는 기억들을 돈을 내지 않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용서할 수 있었다. 나는 최근 업로드 된 이불세탁님의 영상을 클릭했다.
웅성웅성 사람들이 가득 찬 공항 안, 화면은 하염없이 비행기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파란색 바탕에 가루다 항공 오전 11시 35분 비행기 옆에 Delay라는 빨간 글씨가 써져 있었다.
영상에서 갑자기 풍선에 바람 빠지는 한숨 소리가 나더니 바뀐 시선에는 일정표 종이가 사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듯 떨리고 있었다. 실시간 댓글이 이어졌다. 대박 항공편 결항인가 봐. 내가 J였다면 멘붕 올 듯.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여자 둘이 소근 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수만의 생각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인 것 같았다.
"엄마! 오빠 또 저러고 있어."
"어쩌냐 쟤 또 이번 여행에서 저 일정표만 들고 다닐 건가 봐"
"엄마 내가 알아보니까. 사회부과 완벽주의자라는 게 있는데, 딱 오빠더라고. 본인이 원한 건 아닌데 사회적인 압박에 의해서 완벽주의자가 된 사람들이라 특히 우울증이나 히스테릭한 성격을 갖기 쉽데."
"어쩐지 쟤는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지랄 맞더라니만."
엄마와 여동생이 맞다고 하면서 깔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대화소리가 이어졌다. 늦게 가면 룸서비스 먹자며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그들에겐 비행기 지연이라는 상황이 크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 내가 이번 여행에 한 가지 결심한 게 있어"
"그게 뭔데?"
"오빠가 들고 있는 저 종이 찢어버리게 만들 거야! 여행은 즐기라고 가는 거지! 종이를 붙들고 다니라고 있는 건 아니잖아?"
"그게 될까? 쟤가 어떤 앤 데... 너 들키기라도 하면 쟤가 난리 난리 칠걸?"
"엄마 왜 이래 나 이래 봬도 밤새 연영과 나온 여자야!"
"딸 파이팅!"
그들의 목소리만 들려올 뿐 수만은 계속 일정표만 보고 있는지 화면의 이동도 없었다. 6시간 뒤, 수만이 일정표에 빨간 줄을 그으라고 말을 하는데도 모녀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여동생이 나지막이 말했다.
"하늘이 도우셨네, 첫 번째 미션을 손 안 대고 코 풀었네. 마음대로 안 되는 일도 있다 성공!"
화면의 앵글이 슬픈 일을 마주한 사람처럼 아래로 툭하고 떨궈졌다. 페이드 아웃 되는 화면에는 기억의 주인인 수만의 손에는 구겨진 종이가 보였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선 여동생의 지르는 소리에 헐레벌떡 뛰어가는 화면이 보였다. 403호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진짜 엄지만 한 바퀴벌레가 두 개의 촉수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진 듯 수만이 바닥에 쓰러졌다. 아버지의 비명소리와 함께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지금이야 나와!"
"이거 액션은 다 내 몫이구먼"
화면에 하얀 물체가 하늘을 향해 날랐다가 착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영상은 주인공의 감정을 말해주는 듯 지지직 거렸다. 이번에도 역시 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잘했어."
"야 아무리 움직이는 모형이래도 너무 징그럽게 생겼다"
"그래도 너무 그럴싸하지 않아? 왜 내가 일전에 말한 적 있지? 내 친구가 곤충 모형 만드는 영상으로 유명한 유투버라고. 아 왜 직장 상사들이 곤충보다 못한 것 같다면서 곤충 모형을 만들다가 이제는 진짜 유명해졌다고 말했잖아."
"아 대기업 다니던, 채널 명이 뭐랬지? 그... 뭐시냐 삐- 삐-"
화면에 PPL 이슈가 있을 수 있어, 채널명이 삐 처리되었다는 안내문이 스쳐 지나갔다.
"응. 맞아! 이번에 한국 가면 걔한테 커피 쏴야겠어. 밥은 걔가 쏘고 하하하 두 번째 미션 성공. 당신 말고 이 일을 해결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오케이!"
두 번째 미션까지 성공한 여동생의 목소리는 흥분한 것처럼 들렸다. 나 역시 이 모든 게 계획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그리고 지민의 친구인 유투버가 궁금해졌다. 곤충 모형을 만드는 유투버라고? 이 일이 끝나면 유투버를 검색해 볼 생각에 가까이 놓여 있는 종이에 볼펜으로 적었다."곤충 모형 유투버" 내가 잠깐 딴짓 한 사이 화면은 이미 가게 안 부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역시나 이제는 익숙한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내가 말한 대로 알지?"
"아니 이렇게 하면 진짜 너네 오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응. 아 뒤에 온 것 같다 아빠 빨리!"
미세하게 떨리는 부녀의 뒷모습이 이제는 귀엽게 느껴졌다. 일전의 영상처럼 아빠가 먼저 운을 띄었다.
"아아.. 니.. 그.. 그러니까. 아빠만 믿어. 너희 오빠가 오면 내가 사라고 했다고 할 테니까까.. 하하하하!"
"지진 짜지? 아아 빠빠.. 그럼 난.. 저 빨간 가방으로 할래."
지금 다시 보니 아빠와 지민은 로봇 연기를 하고 있었다. 보고 있던 내 손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를 듣지 못한 수만의 영상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분노인가? 억울함인가? 울고 있나? 실시간 추측성 댓글이 이어졌다.
영상이 격하게 흔들리더니, 수만의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갑자기 일정표를 갈기갈기 찍기 시작했다. 바닥을 향한 시선을 따라 남자도 서글프게 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듯이 울음소리가 영상을 가득 메웠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그때 갑자기 수만의 옆으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오빠 그래 이딴 종이 다 찢어버려. 이게 뭐라고 여행을 즐기지 못해. 오빠가 짊어진 짐도 이제 내려놔 동생 이제 벌써 마흔이야. 그래 오빠 성격 상 내려놓기 정 힘들면 이제 내 어깨에도 올려. 내가 이렇게 우리 어깨동무해 줄게. 어때? 이제 박태환 부럽지 않지?"
수만이 뒤에 서 있었던 엄마도 아빠도 갑자기 수만의 앞과 옆으로 뛰어왔다.
"그럼 엄마도"
"그럼 아빠도"
서로가 어깨동무를 한 듯 한쪽 어깨를 서로의 어깨에 올린 채 둥글게 모이며 영상이 끝났다. 끝으로 여동생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마지막 미션, 어깨가 좁다면 어깨동무를 하면 된다 미션 성공!"
영상이 끝나자 가려졌던 영상의 제목이 나타났다.
"미션 임파서블을 파서블 하게 만든 건
오롯이 가족의 힘"
수만의 영상이 끝나자 실시간 댓글과 조회수가 미친 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수만의 생각을 지웠을 뿐인데, 첫째의 서러움에서 하나의 가족 영화로 탈 바꿈 되어있었다. 그리고 실시간 댓글 중에 하나의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저 이 유투버 알아요. 차. 찬. 빛. 아닌가요? 차란답게 찬란하게 빛나리요!"
차란? 설마 그 차란이? 나는 설마라는 가정 자체가 가져오는 두근거림에 검색하려고 든 핸드폰에서 잔 떨림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