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장님을 믿지 마세요

숨겨진 퍼즐 한 조각

by 야초툰

내 예상이 정확히 맞았다. 차.찬.빛으로 검색한 채널에 운영자가 차란이가 분명해 보였다. 영상에 정확히 내가 쓰던 똥 나오는 흰색 볼펜을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차란이가 자신의 기억을 팔고 산 290원짜리의 동료를. 그래 잘 살고 있었어. 너라면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어. 모든 기억은 연결되어 있다는모리의 말이 새삼 와닿았다. 목소리도 예전과 다르게 자신감이 넘치게 들렸다. 밤이 돼야 퇴근하던 차란이는 누구보다 빛나는 조명 아래 앉아있었다.


"빛나리들 안녕~오늘은 자이언트 개미를 만들 거예요. 준비되었나요? 개미 스케치는 러프하게 이렇게 준비해 봤어요."


차란이는 화면에 흰색 종이에 삐뚤어진 선으로 이어진 자이언트 개미의 그림을 보여줬다. 그림 못 그리는 건 여전하군. 졸라맨 같은 그림에 코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리고 개미 그림 아래 희미하게 적혀 있는 문장이 있었는데, 워낙 작은 글자라 잘 보이지 않았다. 차란이는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이번에 왜 자이언트 개미로 골랐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예전에 저와 함께 일하던 분 별명이었어요. 미친 듯이 개미처럼 일해서 회사에 자이언트 같은 사람이 되었다고. 자이언트 개미. 밤마다 그분이 타자 치는 소리가 탁탁탁 나는 바람에 개미가 밤에만 땅굴을 판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을 정도였으니까요."


내가 그런 별명이 있었나? 나는 염병할 년인 줄 알았는데, 왠지 내 별명인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이언트는 무슨 쭈글이가 되어 해고 통보를 받았다는 걸 차란이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댓글로 그 자이언트 개미는 나대다가 잘렸어요라고 남기려다가 사실 굳이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 그냥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기억은 그자리에 남겨두고 싶었다.


내 이런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영상 속에 차란이의 손은 빠르게 검은 플라스틱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맞춰갔다.어느새 개미의 얼굴의 반쪽이 완성 되었다. 그 속에 마이크로 칩 같은 걸 넣으면서 설명했다.


"그런데 그 개미들은 어떻게 길을 찾는 지 아세요? 개미는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이용하여 길을 찾아요 길을 찾아가면서 발생하는 페로몬을 다른 개미들이 감지하고 그 흔적을 따라가며 길을 찾게되죠. 이를 통해 개미들은 자신들이 찾아간 길을 탐색하고 효율적으로 음식이나 자원을 찾을 수 있게 되죠. 어쩌면 저의 자이언트 개미님도 저에게 페로몬을 뿜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그분을 따라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에요."


차란이는 중요한 작업을 하는 것처럼 큰 돋보기를 화면에 끌어오더니 미세한 칩에 특수 제작한 장갑을 끼고 풀처럼 생긴 고체를 개미의 촉수 쪽에 밀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개미가 길을 찾는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어쩌면 저는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이 우리들의 기억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길을 잃어버린 누군가에게 길을 알려주고, 흔적을 찾아가면 진실을 알 수 있게 만들잖아요. 하지만.."


갑자기 자이언트 개미를 조립하던 손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최근에 슬픈 일이 있었던 건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댓글이 이어졌다.


"페.. 페로몬과 기억이 명확하게 다른 점이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도 흔적을 남기는 페로몬과 달리 기억은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에요. 자신에게 소중했던 존재도 영영 잊어버릴 수 있게 되죠. 그러니까..."


차란이는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지 말문이 막힌 듯, 몇 분 간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입을 가린채 흐느끼는 울음 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실시간 방송이라 갑자기 방송을 중단 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간신히 진정된 것 같은 차란이가 말을 이어갔다.


"그.. 그러니까... 더 메모리 컴퍼니에 여러분의 기억을 파세요. 소중한 누군가를 잊지 않기 위해서요.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쉽게 기억을 보관하고 팔 수 있습니다. 판매된 수익의 10%로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치료비를 위해 기부됩니다."


차란이의 설명에 동화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더 메모리 컴퍼니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이 모든 게 간접 광고를 위한 큰 그림 이였던 거야? 어디서부터 광고고 아닌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차란이에게 광고를? 내 혼잣말을 여태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모리가 대답을 했다.


"기억을 팔았던 사람이야말로 그 가치를 아니까요."

"그럼 이것만 알려줘. 차란이가 말하는 자이언트 개미가 누구야?"

"글쎄요. 그건 개인정보라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수연 씨!"

모리가 수연씨라고 거리를 두는 것 같은 말투에 꾹 누르고 있던 감정의 끈이 탁하고 끊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아직도? 우리 사이가 이것 밖에 안된다고? 라는 질문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모리 넌 맨날 이런 식이야. 안된다. 구매하셔라. 심지어 연쇄 살인자의 기억 때문에 그렇게 대박 나고도 커피 쿠폰 한 장을 안 쏘냐고!“


차가운 모리의 대답에 결국 나는 이성을 잃었다. A.I.에게 한 배를 탄 동료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자체가 이상했지만 어느새 나는 모리와 내 기억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네가 나라면 나를 이해 할 수 있잖아. 라고 소리쳤지만 모리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마치 자신은 기계일 뿐이라 당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무래도 여기 더 있다가는 더 이상해질 것 같아 막 영상을 끄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모리가 나를 붙잡았다.

"수연 씨! 나가실..때 나가시더라도 이건 보고 가세요. 얼마 전 김 사장이 광고도 찍었거든요. 아마도 이 영상 5초 뒤에 나올거예요."

미모리도 더이상 나를 자극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 지, 조심스러운 말투로 제안했다.

"안 봐... 뭐? 광고?"

모리의 말대로 차란이의 영상 뒤에 청바지에 꽉 끼는 검은색 목티를 입은 김사장이 앉아 있는 영상이 나왔다. 맙소사 딱 봐도 누굴 따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모리는 내 미묘한 표정 변화를 눈치챈 것인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급하게 촬영한 터라 수연 씨에게 물어보지 못했어요. 그건 죄송하게 생각해요. 그래도 봐봐요 수연 씨가 조언하지 않으니 김사장이 어떻게 입고 갔는지를요."

처음으로 모리에게 들은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들끓었던 감정이 한층 사그라 들었다. 영상을 본 나는 모리에게 설마 아니지?라는 마음에 물었다.


"설마.. 스티브 잡스는 아니겠지?"

"사장님이 가장 신뢰가 가는 착장을 알려달라고 하셔서."

"뭐야? 그냥 배 나온 아저씬데."


하얀색 각진 방에 검은색 목티에 청바지라. 심지어 앉아있어서 바지 단추가 터질 것 같은 화면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김사장의 인터뷰 광고 영상은 내 상태와 상관없이 재생되었다.


Q. 기억을 저장하고 판다는 아이디어는 처음에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어요?

"사실 창피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알츠하이머였거든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 자신을 사랑했던 모든 사람을 잃어버리게 되는 거예요. 결국 자신도.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을 없애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장님 저는 이미 알고 있는데, 아내와 부부싸움에서 이기려고 이 회사를 설립하셨다는 것을요. 너무 아름다운 거짓말을 준비하셨군요. 모리가 미리 준비해 준 대본 같이 느껴졌다.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Q. 요즘 들어 더 메모리 컴퍼니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성장의 비결? 판매할 기억을 잘 선별하는 기준이 무엇인가요?

"글쎄요. 저에게 판매가 많이 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저희 회사를 통해서 잃어버렸던 기억을 찾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를 찾는다면 참 뿌듯할 것 같아요"


저것도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김사장은 어제도 내가 추린 기억들이 잘 팔린다며 신나서 통장을 들고 갔다. 복도에서 울리던 "머니이즈 에블 띵"아직도 잊히지 않았는데 저기서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니. 역시 장사는 철면피를 깔아야 하는 것일까? 화면에 비친 김사장의 미소가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마지막 질문이 이어졌다.


Q. 마지막으로 혹시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개인적으로.

"음... 마지막으로 말이죠? 우리 딸. 아빠 보고 있지? 내가 꼭 다 찾아줄게. 너의 소중한 기억."


뭐야? 딸이 있다고? 저것도 거짓말임이 분명했다. 사장님은 아내에 대해서 악처라고 말한 적은 있어도 딸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모리에게 물었다.


"모리 저 대사들 다 네가 만든 거야? 이렇게 감성을 건드려야 사람들이 기억을 많이 판다고?"

"어느 정도는요."

"이 정도면 거의 A.I. 사기단이네."


모리는 사기는 아니라며 흥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긴 예전에 내 입으로 직접 마케팅을 다른 말로 고급스러운 사기 기술이라고 가르친 적이 있었지. 포장을 그럴싸하게 하는 직업. 판매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포장을 그럴싸하게 한 사장님의 영상도 모리는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마케팅의 일환 정말 누군가 자주 했던 말인데. 누구였지? 모리의 말에 어렴풋이 사무실에 모여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행복했던 기억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수면 아래에 갇혀 떠오르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혹시 모리가 가져간 내 소중한 기억 아닐까 싶어졌다. 머리가 다시 지끈 거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그만 집에 돌아가 쉬어야겠다고 모리에게 말하고 회사에서 나왔다.

'내 소중한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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