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던 회사를 살린 한 조각의 기억

어느 평범한 하루

by 야초툰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복수는 상상보다 달콤했다. 그들이 지옥같이 보낼 하루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죄를 짓지 않아도 내부 감사실에서 불렀다는 사실만으로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드니까. 그들이 보이지 않는 투명 수갑을 찬 것 같은 모습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모리 또한 4년 전 영상이 들춰지는 동시에 그들의 과거의 행동들이 끈적이에 달라붙은 종이처럼 낯낯이 드러나게 될 거라며 들뜬 내 마음에 부채질을 해댔다.


"수연 씨, 기억이라는 게 단순한 점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미줄과도 같아요. 하나로 끝났을 것 같은 상황이 알고 보면 여러 개의 기억들로 얽혀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스테파니 본부장님에게 얽혀있던 하나의 줄을 당기게 만든 것에 불가하죠. 그렇지만.."


"아주 줄줄이 얽혀 들어가겠군."


생각해 보면, 박팀장과 세련 씨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앙숙에 가까웠달까? 회의를 할 때면 그들은 민사장의 총애를 갈구하는 하이에나로 변해 서로를 물고 뜯었다. 사장 비서인 세련씨가 갑자기 수익과 매출의 연관 관계를 알고 싶다며 내 옆에 앉아 배우기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한 배를 타다니, 그 배의 바닥에 적혀있는 무언의 계약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모리가 보낸 메일 한 통으로 밝혀질 그들의 이해관계가 내 궁금증을 커다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연락 할 번호가 없었다. 일 할때는 몰랐지만 퇴사하게 되면 입 안에 거친 모래알이 가득 씹히는 느낌을 만드는 것. 그건 전 직장동료와의 연락이었다. 혹시 늦은 밤 이거 기억나냐고 연락이 온다거나, 내가 어렵게 지원한 회사에서 면접관이 혹시 000 알아요?라고 묻는다면 늦었지만 그애에게 전화 좀 해볼까?하다가도 정작 연락할 수가 없다.


마치 그들의 연락처에는 '네가 성공하지 않은 이상 연락하지마' 라고 적혀 있는 것 같아서 여러 번 핸드폰을 들어다 놓았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포기하게 되고 결국 그들의 번호는 있지만 걸 수 없는 유령 번호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이번에도 만약 모리의 말처럼 기억이 이어진 거미줄과 같다면 언젠간 나에게도 닿겠지라며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단념해 버리고 말았다. 내가 컴퓨터를 키자 모리가 급하게 나를 불렀다.


"수연씨! 오늘부터 메일을 보내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뭐야? 나 여기서도 잘리는 건가? 갑자기 하지 않아도 된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이야?라고 묻는 순간, 김사장이 뛰어 들어왔다. 계단을 뛰어 올라와서 인지 차려입은 정장이 땀이 범벅이었지만, 환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심지어 면도도 한 것 같았다. 놀란 눈으로 김사장을 보고 있는 나에게 김사장은 한 손에 든 핸드폰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 사이에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걸까?


"대박! 수연 씨,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뭐가요?"


무슨 일이라니? 영문을 모르는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김사장이 말했다.


"모리 아직 수연 씨에게 말 안 한 거야? 어제 더 메모리 플랫폼에 올린 신규 기억의 영상이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고?"

"영상이요?"

내가 되묻자 김사장이 답답해서 인지 자신의 핸드폰을 나에게 다짜고짜 들이밀었다. 그 핸드폰에는 위로 향하는 그래프가 그려져 있었고 지금 판매되고 있는 금액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일 심 백.. 그러니까 삼백? 오늘 아침까지 이렇게 팔렸다고요? 내가 김사장 핸드폰에 찍힌 숫자를 가리키며 묻자, 김사장은 지금도 엄청 팔리고 있다며 이렇게 대박이 날 줄 알았다고 연신 외쳤다.


기쁨도 잠시 김 사장은 서둘러 은행 빚부터 갚아야겠다며 지저분한 사장실에 들어가 빛 독촉 서류에 파묻혀 있던 통장을 찾아 나갔다. 사무실을 나가면서 김사장이 하는 혼잣말이 텅 빈 복도에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거의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다니 역시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거야! “


김사장이 나가자 오래된 나무 문이 덜컹덜컹 거리며 닫혔다. 도대체 뭘 판 거야? 모리?라고 모리에게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감정 없는 차가운 답변이었다


"현재 판매 중인 상품이라 어떠한 내용 미리 알려드릴 수는 없어요. 직접 구매해서 보시는 걸 추천드리겠어요."

"왜 이래?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라니요? 저는 A.I, 당신은 내 고용주가 고용한 직원일 뿐이죠."


이럴 때만 꼭 발을 빼더라 너는. 모리가 얄미웠다. 같이 배를 탔었고 복수까지 했는데 갑자기 선을 긋는 듯한 모리의 태도에 네 모리님 제가 알아서 볼게요라고 비아냥 거리며 더 메모리 컴퍼니 플랫폼에 접속했다.


정말 어제까지 아무것도 없었던 흰색 화면에 기억 영상 하나가 떡하니 올려져 있었다. 제목이....


"연쇄 살인마, 보통의 하루."

ID : The ordinary


아이디가 충격적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니? 연쇄 살인마가? 이런 기억들도 올려도 되는 거야?라고 내가 묻자 모리는 적정 심의 내에서는 가능하다고 에둘러 대답했다. 댓글도 가히 폭발적이었다. 영상의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는 댓글은 별표 표시로 가려져 있었고 베스트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보통 살인자라고 어떤 강박관념이나 환상에 시달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토록 평범한 일상이라니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 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댓글을 읽고 나니 더 보고 싶어졌다. 나는 서둘러 그 영상을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영상의 시간은 총 25분 30초. 검은 화면이 지지직 거리며 나왔다. 역시나 '주인공이 실제 겪은 기억의 조각이며, 나오는 인물들은 초상권 및 인권 침해를 보호하고자 딥페이크 기술이 적용되었습니다.'는 안내 문구가 빠르게 지나갔다.


이게 그러니까 진짜 살인자의 기억이라는 거야?호기심이 생겼다. 그런데 재생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영상이 멈췄다. 그리고 알림 메시지가 갑자기 나타났다.


"나머지 기억을 시청하시길 원하신다면 구매하세요. 9,900원입니다."


아 이건 한 사람에게 파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파는 거니까 구매 금액이 먼저 나오는구나. 처음 내가 샀던 방식과 달라 당황함도 잠시 이건 결국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제안이라는 걸 깨달았다. 살인자의 기억을 남몰래 훔쳐볼 수 있다니, 나는 구매 버튼을 무엇에 홀린 것처럼 눌렀다. 구매가 결정되자 흐렸던 초점이 다시 또렷하게 맞춰졌다. 검은색 암막 커튼에 가려진 방이 비쳐졌다. 거의 죽어가던 회사를 살리는게 살인마의 기억이라니. 나는 보기도 전에 이미 그 기억에 감정이 이입되기 시작했다.


객관적 관찰을 위해 기억 속 주인공의 목소리와 생각은 음소거 처리가 된다.라는 메시지가 사라지고 독백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음성 변조를 한 것 같았지만, 굵고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어두운 밤에 혼자 걷고 있다가 들으면 무조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갈 것 같은 그런 목소리 톤이었다.


"어떻게 흔적도 없이 그것들을 치울 것인가, 매일 드는 생각. 날씨가 중요하다. 비가 오면 기분이 우울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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