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죽어서 기억을 남긴다.

복수의 서막

by 야초툰

역시 예상대로 한숨도 못 자고 출근하고 말았다. 컨디션도 좋지 않아 오늘은 조퇴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김 사장실로 곧장 향했다. 거의 떨어질 것 같이 달려있는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시큼한 냄새가 코 끝을 찔렀다.


사장실 바닥은 비를 잔뜩 맞고 온 것인지 사방이 흙투성이의 신발 자국이 묻어나 있었고, 담배 잿떨이에 있어야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책상 위 또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류에 대출 상환 독촉장까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책상 위에 눞혀져 있는 사각형 월넛 액자가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기에…."


나도 모르게 사장실을 보고 나온 혼잣말에 모리가 대답했다.


"그에게도 말 못 할 사정이 많아요. 그의 기억을 보여드리고 싶지만 보안 코드가 걸려있어 보여드리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네요. 어제 잠을 못 주무셨나 봐요?"

"맞아. 네가 보내준.. 차란이 의 기억 때문에. 너도 이미 읽었겠지만."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나는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떠올리기만 해도 불쾌한 기분이 올라왔다. 모리도 실망스러웠다는 듯 대답했다.


"저도 그 기억을 읽고 얼마나 실망했던지, 분명 불륜에 관련된 어떠한 처절한 복수, 아니면 치정극을 예상했지만 그저 그런 회사 이야기더라고요."


모리의 말이 가뜩이나 저린 내 가슴을 찔렀다.


"뭐라고? 그저 그런? 너에게 그런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그 애한테는 아니 적어도 우리 인간들에게는 다시는 떠올리지 않고 싶은 기억들이었어. 그 애가 그 이후에는 누굴 믿어야 하고, 어떻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겠어. 전화벨 울리는 것도 공포로 느껴졌을 거라고!"


내가 본 차란이의 기억 때문인지, 평소와 다른 감정이 불쑥하고 튀어 올라왔다. 마치 내 온몸의 세포가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겪지도 않은 일인데도 마치 내가 직접 겪은 것 같은 분노가 느껴졌다. 이는 당연하다는 듯 모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 기억의 동화현상이 일어났나 보군요. 하긴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죠. 당신의 세포로 차란 씨의 기억이 스며들었을 테니까 말이에요. 그래도 흥분하지는 말아요. 보통 회사생활을 하면 흔히들 겪는 그런 일이라고 말한 것뿐이니까."

"네가 어떻게 알아? 봤어? 봤냐고!"

"매일 보고 있죠. CCTV로."


모리는 화나서 씩씩대고 있는 나를 향하고 있는 모니터에 여러 회사의 CCTV 화면을 틀어줬다. "어디 신입이 부장님이 하는 말에 끼어들어!"라고 소리치는 여자가 있는 회의장, 오늘 점심 메뉴는 뭘로 정해야 할지 손톱을 물어 뜯으며 고민하는 남자직원, 사내연애를 하고 있는지 사내 메신저로 채팅을 하고 있는 남녀직원까지 각양각색의 직장인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모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처음엔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죠. 왜 일전에 제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제를 찾아서 드라마를 분석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거길 보면 꼭 죄지은 회장님이 대뜸 사내 CCTV부터 지워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궁금증이 생겼죠. 저들이 지우라는 저 CCTV에는 뭔가 흥미로운 것이 있구나! 하고. 그래서 바로 제안 메일을 써서 회사들에 뿌렸어요. 회사의 CCTV 데이터를 분석하고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며 멋쩍은 이유까지 적어서요. 아! 사장님한테는 비밀이에요 일종에 취미생활 같은 거니까.."

"그걸 맡기는 회사가 있다고? 그건 회사 기밀 같은 거잖아."


대기업의 임원이었던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모리와 같은 A.I. 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니 소름이 돋았다.


"대략적으로 7,723만 개 회사예요. 거의 다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CCTV를 관리하고 나서 사내 불륜이나 퇴사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의뢰가 들어왔어요. 자기네 보안코드까지 직접 알려주면서 말이에요. 저희가 데이터를 분석해서 직접 회장실에 보고 하거든요. 세세한 것까지 분석해요. 승진 대상에 오른 이 사람이 과연 적합한 사람인가? 실제 평판은 어떤가? 마케팅 부서에 송대리가 박 과장한테 괴롭힘을 당한다거나, 얼마 전 들어온 조 인턴이 구직사이트를 보고 있다거나 사장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세요? 심지어 이 모든 서비스가 무료라니!"


"나도 임원이었는데 몰랐는데.."


모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하죠.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지능을 가진 A.I. 가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하면 제일 먼저 들고 일어설게 임원들 아니겠어요? 본사 회장들만 아는 극비리 사항이라고요."


모리는 자신이 비밀요원이나 하는 극비리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처럼 나에게 속삭이며 말했다. 참 더러운 세상이었다. 예전에는 부장님 몰래 구직 사이트도 보고 연예뉴스도 보는 게 일하는 재미라면 재미였는데, 그런 것도 이제는 통제가 되고 있었다니. 아픈 머리가 지끈대기 시작했다.


"그래 알았어. 대단한모리씨 나 오늘 너무 머리가 아파서 조퇴할 테니까. 사장님께 전달 부탁해."

"수연 씨가 가면 또 저 혼자 떠들어야 하는데..."


모리는 김사장이 언제 올지 돌아올지 모른다면서 투덜 되더니, 뜻밖에 제안을 해왔다.


"수연 씨... 만약 제가 차란 씨의 일을 해결해 주면 머리가 안 아플 거 같아요?"

"해결?"

"아니... 복수라고 해두죠. 그게 맞겠네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차란 씨에게 해가 가지 않으면서 회사에 남아있는 늙은 호랑이들을 해치울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있어요."


모리의 제안에 갑자기 지끈 거리던 머리가 멈춘 듯 오히려 가볍게 느껴졌다.

"그게 뭔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잖아요."

"그런데?"

"수연 씨는 죽어도 저에겐 당신의 실수는 영원히 남아 있을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야? 답답하니까 빨리 말해라고 독촉하는 내 물음에 모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스테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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