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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Apr 19. 2024

비트라고 우기다가 마음이 비터해졌다.

양화대교에서 생긴 일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이 새벽에 누구야?를 외치며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떨리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선배님... 지금 양화대교 건너세요?”


“응? 어… 어찌 알았지?”


나는 당황하며 주변을 돌아봤고, 신호를 받아 막 출발한 택시에 후배의 얼굴이

빼꼼히 나와서 나와 내 친구 얼굴이 가관이라는 듯 흠칫 놀라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아... 선배님... 어떻게... 이 새벽에.."

"아.. 어.. 그게.. 산책해 친한 친구와.."


새벽 4시에 친구와 양화대교 산책이라니, 너무 어처구니없는 변명이었다.

하지만 막상 떠오른 말은 그게 전부였다. 입사 세 달 밖에 안된 신입 사원이 하늘 같았던 선배가 술에 만취해 양화대교를 건너는 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산책을 한다고 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와 마스카라가 눈두덩이 아래로 사방으로 번진 여자 둘이 미친 듯 웃으며 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 후배가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걱정하기보단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비트의 주인공 정우성과 이정재가 되어 양화대교를 뛰어다녔는데, 그때의 이정재였던 친구는 어느덧 두 딸의 엄마가 되어있었고, 당시 정우성이었던 나는 그때의 몰골을 후배와 브런치를 먹고 있다. 나중에 친해지고 알게 사실 우리는 동갑내기였다.


"야! 나 그때 퇴사하려고 했잖아. 너 때문에"

"왜? 내가 왜?"

"너 기억 안 나? 그때 양화대교에서 웬 미친년 둘이 술 마시고 뛰어다닌다고 생각해서 창문 올리려는데, 얼굴이 낯이 익더라고. 자세히 보니까 얼마 전에 자기를 야근조라고 소개한 미친개 선배님이었던 거지."

"그래서 그게 뭐.. 그게 니 퇴사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지. 저 사람이 내 선배라니. 내 사수라니. 가뜩이나 호텔에서 한번 물면 안 놓는다고 예약실의 미친개라고 알려져 있는 선배인데 얼마나 아찔 했겠어?"

10년이 지난 아직도 내 흑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후배에게 나는 그때의 나를 미화시키기로 했다.

"그때 나는 분명 비트의 정우성이었어!"

 

내 대답을 들은 후배는 차라리 손예진이라고 하라며 한참을 배를 잡고 웃었다. 짜식 회사 다닐 때는 내 눈도 못 쳐다보더니 이제는 조롱을 해? '으르렁' 대며 이를 내보이지만, 세월이 지나 미친개의 이빨도 이제는 한없이 초라하게 너덜 거릴 뿐이었다.


 양화대교를 건너며 우정을 다짐했던 내 친구야 우리 분명 그때는 비트의 이정재 정우성이었어? 그렇지? 그렇다고 해줘.라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지만. 고된 육아에 잠이 든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마음이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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