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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초툰 Sep 02. 2024

씨앗 인턴의 시작

아무도 찾지 않는 곳으로

그렇게 나는 무작정 떠났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처음에는 그저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있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떠난 길의 종착역은 한적한 고시원이었다. 월 30만 원. 다행히 내가 들고 나온 현금 전부였다. 아무도 없는지 적막만 가득했다.


예전에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꿈을 그리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 되어버린 곳. 그래서 더 끌렸던 것 같다. 적갈색 벽돌이 빼곡히 박혀 있는 벽면에 컴컴한 창문의 빛들이. 막연히 어딘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간은 가만히 누워 4평 남짓한 공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한 달간의 공백이 생김과 동시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제 나 어떻게 살지.'


천장에 불빛이 꺼질 듯이 깜빡였다. 나는 눈을 감고 암울한 내 미래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쿵쾅 거리는 소음이 들렸다. 벽과 벽사이에 이어폰이 꽂힌 것처럼 소음은 적나라하게 통과해서 내 귀에 꽂혔다.


"야 말이 되냐? 씨앗 인턴이라니. 내가 살다 살다 이제 별에 별 공문을 올린다니까. 그러니까. 이제 뽑아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고. 뭐 라드라 흙에 묻혀 있는 씨앗을 발굴한다고 쓰라는데? 뻔하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자리에 씨앗처럼 박혀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거라니까! 거의 유령 같은 존재라고 보면 돼"  


유령이라니! 내가 원하는 곳이었다. 벽을 타고 들리는 정보에 따르면 씨앗 인턴을 뽑는 곳은 경기도 행복 시청에 위치한 가족 관계 팀이었다. 행복 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혼인율은 역대 최저점을 찍고 있었으며, 새로 전입하는 사람조차 없는 그런 유령 중 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씨앗인턴은 씨앗처럼 박혀 혼인 신고를 담당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업무를 시 내가 할 일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출근을 한다. 커피를 마신다. 멍 하니 컴퓨터만 바라보다가 퇴근한다.’


 그렇게 나는 씨앗 인턴으로 행복 시청에 출근하게 되었다. 심지어 출근 한지 한 달 만에, 혼인 신고 간소화 서비스의 일환으로 근무처가 재택으로 전환되었다. 재택근무라는 공지를 마주한 순간, 이제는 무작정이 아닌 제대로 아무도 마주치지 않는 곳을 찾고 싶었다. 다행히 곧 만기인 적금이 떠올랐다.


지금 마음만으로는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아무 곳이나 갈 순 없었다. 재택근무의 조건은 하나 행복 시 내에 위치한 집이어야 했다. 이번에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집을 상상해 보았다.


1.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누가 탈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단층 주택

2.     핸드폰에 5분 단위로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이 아닌 창문을 열면 파도 소리에 눈을 뜰 수 있는 바닷가 가까운 마을에 위치한 곳

3.     배달이 되지 않아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조그마한 텃밭이 있는 곳


자연스럽게 한 예능프로가 심어준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들과 내가 다른 점은 그들은 쉬기 위해 온 곳이지만, 나는 나에게 이어진 모든 끈을 투명한 가위로 끊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다행히 주민등록 실거주 조사 차 방문한 어느 조용한 해안가 마을에 위치한 파란색 대문이 있는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이사 가는 날. 날씨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햇빛이 하늘에서 쏟아질 듯 눈부셨고, 이런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소나기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어렵게 부른 용달차 사장님이 짐을 실으며 날씨가 이상하다고 투덜거렸지만. 마치 하늘이 나를 축복하는 선물처럼 느껴졌다. 7월 5일 내 생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평생 꿈꾸었던 직장에 나는 매일 출근하기 시작했다. 굳이 5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출 필요도 없다. 방 안으로 내리쬐는 햇빛에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여니, 바닷가에 보이는 출렁이는 물결들이 나를 향해 인사하려고 다가온다. 나는 크게 숨을 쉬고 뱉는다. 오늘도 내가 겪을 평온한 일상을 떠올려본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내 눈앞에 보이는 저 작은 문을 열면 바로 출근이니까. 흘러내리는 머리를 대충 묶고, 부엌에 커피를 마시러 부엌으로 향한다.


 빨간색 블랙커피 봉지에서 종이컵에 두 번 털어 넣는다. 검은색 커피포트에 수돗물을 받아 끓이기 시작한다. 굳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된다. 이미 내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달콤한 향이 커피를 넘기는 한 모금 안에 천천히 스며들 테니까.


나는 눈을 감고 도시에서 내 삶을 떠올려본다. 숨을 쉬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 그게 나였다. 그런 나를 마주칠 때마다 무엇이 힘들게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차가운 시선들과 마주쳤다. 턱 끝까지 숨이 막혔다. 이러다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짐을 쌌다. 아무 말하지 않고 무작정 행복 시에 오게 되었고, 1년 계약직 인턴으로 시청에 취직하였다.

 

 하지만 이곳도 내가 온전히 숨 쉴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점심시간은 공격권을 갖기 못한 펜싱선수와 같았다. 내가 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공격을 막아야 했지만, 그저 온몸이 뻣뻣하게 굳을 채,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나의 과거에 대한 질문들에 찔릴 뿐이었다. 그런데 재택근무라니. 공기를 잔뜩 불어넣어 터질 것 같은 풍선을 묶어 두었던 매듭이 풀리며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콧노래를 부르며 컴퓨터가 켜진 작은 방을 향했다. 컴퓨터 부팅 버튼을 누르고, 커피 한 모금을 마셨을 때, 시청에서 받은 낡은 수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도 울리지 않아 쌓여있던 먼지들이 전화 벨소리를 타고 울리는 잔 진동으로 인해 공기 중에 나풀나풀 날리기 시작했다. 귀를 뚫는 듯한 다소 높은 벨 소리에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심장도 질 수 없다는 듯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찍힌 번호는 처음 보는 핸드폰 번호였다. 누구지? 인사말을 어떻게 해야 하지? 전화를 받았어야 알지. 고민도 잠시. 시끄럽게 울리던 전화벨 소리가 끊겼다. 다행이다. 깊은 한숨과 동시에 괄약근에서 바람 빠진 풍선에서 나는 소리가 단전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때,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이번에는 다른 번호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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