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얼굴이 붉지 않았어요.
"지루성 피부염입니다."
"네? 새집 증후군이 아니고요?"
신혼집으로 이사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얼굴이 가려워서 찾은 피부과에서 들은 내 병명이었다. 지루성 피부염. 피지 분비가 많은 부위에 발생하는 만성 염증성 피부 질환으로, 붉은 반점과 비듬 또는 얇은 각질과 간지럼증이 동반되는 염증. 갑자기 피부염이라니. 의사 선생님은 이제 막 홍조증에서 지루성 피부염으로 탈바꿈한 상태라고 나를 진단했다. 포켓몬도 아니고. 염증이 진화하다니.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선생님, 그러면 왜 염증이 생긴 건데요?"
백옥 같았던 피부에 뾰루지라도 나는 날엔 하루 종일 우울했는데, 평생 달고 살아야 하는 피부염이라니. 거짓말 같았다. 적어도 네 잘못은 아니라고. 지구가 아파서 너도 아픈 거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보고 있던 모니터로 쓱 돌려 자기 얼굴을 가리면서 나에게 말했다.
"글쎄요. 환자분, 지루성 피부염이 생기는 이유는 특정할 수 없습니다. 보통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강한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었을 때 그 증상이 발현될 수 있기도 하지만 발화 시점은 사람마다 달라서요."
물론 의사 선생님은 으레 환자들에게 자동 응답기처럼 하는 대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대답 속에서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강한 햇볕에 장시간 노출.’
그 말에 내 피부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했다. 순간 창피함이 단전에서부터 밀려왔다. 부끄러웠다. 나만 아는 그 이유로. 얼굴이 다시 벌겋게 달아오름이 느껴졌다. 혹시 들킬까 황급히 고개를 푹 숙였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내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았냐는 듯 물었다.
"왜요? 특별히 떠오른 게 있으세요?"
나는 고개를 숙인 상태로 고해성사를 했다.
"네, 선생님, 사실 제가 스무 살 때. 두바이에서 뜨거운 태양과 언제 싸워볼 수 있겠냐며. 매일 30분씩, 그 두바이 뜨거운 햇볕을 벗 삼아 호텔에서 기숙사까지 걸어갔었거든요."
"…."
의사 선생님은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자외선이 강한 햇빛에 2년 동안 장기간 노출된 결과일 것 같다는 내 추측에 강하게 고개만 끄덕이실 수밖에. 의사로서 맡은 임무를 다했다는 듯, 선생님은 나가는 문을 가리켰다. 아마도 우리 피부과의 명성에 곧 먹칠을 할 환자라고 생각한 듯. 모니터에 고개를 묻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을 가망성이 없는 환자에게 약을 지어주셨다는 점이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 준 약봉지를 끌어안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무모했을까? 아마도 가진 게 패기밖에 없다고 생각했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타지에서 외로웠을 뿐. 한 달에 30만 원 월급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없었으니까. 걸을 수 있는 건 목적지가 정해진 길뿐이었다. 호텔과 기숙사. 호텔에 가면 서툰 영어와 잘못 주문한 음식 때문에 주방에서 혼나기일 수였고, 기숙사에서도 누구에게 힘들다고 누구에게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래서 태양이라도 벗 삼았을 뿐이었다. 모래로 만든 갈색 건물들을 바라보며, 뜨겁게 달궈진 도로를 걷고 있자면, 내가 한국이 아닌 타국에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니까.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짐하게 되었다. 여긴 외국이니까 말할 사람이 당연히 없는 거라고. 혼자 어떻게든 사는 것도 당연한 거라고, 나를 달래고 또 토닥였다. 뜨겁게 달군 팬에서 익는 계란 프라이처럼. 뜨거운 온도가 내 마음까지 따뜻하다고 착각하게 했으니까. 어쩌면 나는 나를 달구고 싶었는지 모른다. 마음이 차가워질 바엔 뜨거운 게 나으니까. 그래서 그 시간이 원망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억울하긴 했다.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내 손안에 무지갯빛 약뿐이라니. 완치도 안 되는 피부병을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니. 그래서 약도 몇 번 먹다가 말았다. 피부가 가려우면 가려운 대로. 뾰루지가 나면 나는 대로 그대로 두었다. 세수도 하지 않았다. 환경을 지키는 건 소중하니까.
다행히 며칠 지나니 가려움증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더 심해질 거라던 염증 부위도 점점 옅어졌다. 그저 빨갛던 얼굴이 더 빨개졌고, 동시에 스티븐 존슨 증후군이 생겼을 뿐. 스티븐 존슨 증후군은 약을 먹으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가려운 알레르기 증상이 발현되는데, 나는 특히 아세트아미노펜 (진통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했다. 잦은 두통에도 타이레놀도 못 먹는 인생이라니. 머리가 아프면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남들과 다른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토마토 인간이 되었다. 그것도 남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호텔에서. 망했다고 생각했다. 사회생활도, 인간관계도. 앞으로 창피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닫았다. 호텔에서는 필요한 말 이외엔 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