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이미 시작되었다.
전화벨이 울리면, 내 심장도 동시에 울린다. 벨 소리를 따라 울리는 심장소리가 흡사 오케스트라 음악처럼 들린다. 이와 동시에 온갖 악상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야 와 너를 번갈아가면서 부르는 노랫소리에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계속 사과를 한다. 받지 못 하는 전화벨 소리를 들으며, 울고 또 운다. 그러다 잠에서 깬다. 아, 꿈이었구나. 이미 내 몸은 꿈이 아니라는 듯, 땀으로 흥건하다. 악몽이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꿈. 퇴사 했는데도 나를 끈질게 따라오는 전 직장동료 전화벨. 애나벨을 넘는 무서운 소리를 내는 동료. 호텔에서 전 직장동료와 일한 지 12년. 나는 아직도 전화벨이 무섭다.
그래서 아직도 핸드폰은 무음이다. 벨 소리가 울리는 순간, 몸이 경직되고 마니까. 놓치는 전화도 많다. 언니도 화를 낸다. 전화를 못 받으면 전화벨로 소리를 바꾸라고. 하지만 나는 바꿀 수가 없다. 애나벨보다 전화벨이 더 무서우니까.
나는 24시간 내내 전화벨이 울리는 부서에서 일했다. 호텔에서 전화 한통으로 모든 걸 해결해주는 부서. 우리는 그곳을 고객 서비스 센터라고 부른다. 아이러니 한 것은 손님은 전화 한통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만, 직원은 그 한 요청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했다. 기본적인 호텔 정보는 물론이고, 룸서비스 주문, 호텔 예약, 투숙 시 필요한 요청 사항, 분실물 신고 및 객실끼리 전화 연결까지. 그것도 동시 다발적으로 해야 했다. 울리는 전화는 많은데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선배들은 신입들에게 기본적인 시스템 교육은 시키지만, 일어날 일에는 대비시키지 못 한다. 벨소리가 울리면 알 수 없는 사건들이 터지니까. 그래서 기본 정보가 숙지되면 전화 받기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과 호텔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사람의 통화 접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벨 소리가 울리면 심장이 요동을 쳤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니까. 신입인 나는 허허벌판에 풀어놓은 가젤처럼 달리기 시작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살기 위해 나는 뛰고 있고 뒤에서 사자가 쫒아오고 있으니까. 물론 내 전화를 듣고 있는 사자가 선배다. 바로 위에 선배. 그 역시 얼마 전에 가젤이었던. 그래서 더 잔인할 수 있다. 선배는 언짢은 표정으로 메일을 읽으면서, 내가 하는 통화를 모두 엿듣고 있다.말이 막히거나 헛소리를 한다면, 귓전에 경적이 울린다.
“야! 미쳤어?”
귀가 찢어질 것 같다. 물론, 그 목소리는 가젤과 사자 사이에만 들린다. 호텔 전화기에는 속삭임기능이기 때문에. 언뜻 들리기엔 연인 사이에 주고받는 달콤한 속삭임 같지만, 선배가 신입의 전화를 들으면서 잘못된 안내를 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만든 기능이었다.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다. 그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면, 메시지가 날아온다.
“야, 너 잠깐 전화 멈춰.”
이름은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한참 대화를 하던 손님에게 갑자기 요금 확인을 위해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알겠다고 손님이 대답하는 동시에 화난 선배가 뛰어와 소리친다. 조식 시간은 6시가 아니라 6시30분이라고, 손님이 조식 패키지를 예약하는 거니 시간을 다시 잘 안내하라고 소리친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일 일수 있다. 예약할 때 듣는 설명은 거의 절반 이상 날아가 버리니까. 하지만 선배에겐 실수는 치명적이다. 모든 통화는 녹음되기 때문에. 혹시나, 설마, 만에 하나 라는 상황에 예외를 들 수 없다. 가젤의 실수는 곧 사자의 실수가 되는 여기는 정글이니까.
시간이 지나자 우물에 빠진 가젤처럼 울던 내가 미친개가 되었다.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질문 하는 신입에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묻는다.
“너, 방금 그 질문 충분히 생각하고 나에게 묻는 거야? 나야, 이 구역에 미친개.”
새로 들어온 신입은 모른다. 이 선배가 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하는지. 그게 얼마나 큰 배려인지. 컴퓨터 모니터에 비친 내 얼굴은 가뜩이나 빨간데, 쉼 없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더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전화벨 소리에 맞추어 심장도 뛰고 있다. 신입이 보면 바로 퇴사를 하겠다고 말하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얼굴과 다른 친절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나는 생각한다. 다행이다. 내 얼굴을 모니터 뒤에 가릴 수 있어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평범한 하루가 좋은 날이었고, 나머지는 다 비통한 날이었다. 나에게는.
그래서 아직도 전화벨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빠르게 뛴다. 나를 다시 내가 떠나온 그곳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모니터에 비추던 얼굴을 잊지 말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