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이 결국 운이었다.
세상엔 생각지도 못한 일 때문에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바뀌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아직은 젊다는 오만한 생각 때문에 남편이 하는 말을 무시했다. 숨이 잘 안 쉬어진다는 말에 최근 담배를 끊기 시작해서 그런 걸 테니,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말한 게 화근이 되었다.
출근했던 남편이 신호를 기다리던 횡단보도에서 쓰러졌다. 새벽 7시,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3분 동안 의식을 잃었고, 정신을 차린 그는 응급실에 실려가면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기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나 구급차야. 어떻게든 혼자 해결하려고 했는데, 보호자는 꼭 필요하다고 해서. 미안한데, 00병원으로 와줄 수 있어?"
"왜 무슨 일 있어? 병원에는 왜?"
당황한 내가 묻자, 남편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첫 차를 운행 마치고 갔다가 화장실에서 똥을 누고 나오는데 머리가 핑 도는 거야. 그래서 쓰러졌는데. 3분 정도 의식이 없었던 것 같아. 더 웃긴 건 내가 쓰러질 때 무슨 생각했는 줄 알아? 앞니는 장모님이 해주신 거니까 옆으로 쓰러져야지 하고 옆으로 쓰러졌어. 그리고 잠시 꿈을 꿨는데...."
옆에 있던 응급 대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자분, 말씀 더 하시면 안 돼요. 아 보호자님이세요? 남편분이 쓰러지셔서 응급차 따고 00 병원으로 가시니까. 천천히 준비하시고 00 병원으로 와 주세요."
"네."
역시 남편이었다. 와달라고 하면 끝날 일을 그는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있었다. 쓰러진 시점부터 응급실 차에 실려가는 그 순간까지를. 아파서 미안하다며 전화를 돌려받은 남편은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아픈 일이 미안한 일이 되다니. 그 한 마디에 내내 가슴이 출렁거렸다.
다행히 병원은 집과 30분 거리에 있었다. 응급실에 6개의 침대 중에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눈에 딱 보였다.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말과 다르게 그가 누워있는 침대는 상당히 비좁게 느껴졌다.
두 발은 이미 침대를 빠져나와 공중에 허우적 대고 있었다. 허연 얼굴은 먼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한 듯 꾸벅이면서 웃고 있었다. 잇몸에서 흐르는 빨간 피가 보였다. 아마도 아까 쓰러졌을 때 다친 모양이었다. 가슴에 줄이란 줄은 달고 웃고 있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그런데도 남편은 자신의 아픔보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게 더 미안하다는 듯, 계속 날 보고 그 좁은 침대에 앉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오전 9시 30분.
처음엔 정신이 없었다. 잠시 일상에서 빠져나와 다른 세계에 들어간 듯이 멍했고, 그런 나를 깨우듯 여기저기서 보호자를 외쳤다. 무슨 검사를 한다고 했고, 남편은 다시 사라졌다 돌아오고.
“000님 보호자님!”
예비 신부님으로 불린 적은 있었지만, 갑자기 보호자라니. 멀리 앉아 있던 의사 선생님이 우뚝 서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뻥 뚫린 칸막이에 의자 두 개가 놓여있었는데, 나보고 의자 하나에 앉으라고 가리켰다. 무테안경을 올리며 잘못을 꾸짖는 판사의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보호자분, 남편 분이 폐에 혈전이 생겼어요. 혈전이라고 아시죠?"
"아.. 아니요."
"혈전 모르세요?"
"네에..."
아무것도 모르는 유치원생처럼 연신 눈만 깜빡였다. 낯도 가리는데 취조실 같은 분위기에 더 주눅이 들었다. 얼굴은 더 붉게 달아올랐다. 의사 선생님은 그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설명을 해주었다. 혈전이 무엇인지.
"보통 수술을 해서 오래 움직이지 않거나, 오랜 시간 비행으로 앉아만 있어서 생기는 증상인데, 남편 분에게 생겼어요. 젊은 사람에게 흔치 않은 증상이에요."
"아, 그러면 어떻게."
"일단. 혈전을 녹여야 하기 때문에 혈전을 녹이는 약을 배에 주사를 해야 하고요.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수술을 해서 스탠스 삽입하는 수술을 해야 해요. 젊으신 분이기 때문에 갑자기 급속도로 안 좋아질 수 있거든요."
의사 선생님은 안 좋아질 수 있는 경우라며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이미 남편을 이미 보내고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계속 선생님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를 반복했다.
일단 심장 전문의 선생님이 오셔서 초음파 심장 소리를 들어 보셔야 하니까, 다시 가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또 기다리라고? 차라리 미리 말해주지 말지. 다 검사하고 알려주지. 기다리는 시간이 꼴딱 세어버린 하루처럼 느껴졌다. 자기 병도 모르고 웃고 있는 남편에게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말하면 내 무서움이 겁쟁이 남편에게 전염될 것 같아서.
결국 심장 전문의 선생님이 오셔서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중환자실 입원이라고요? 나는 놀라서 물었고. 남편은 계속 괜찮다며 집에 가면 안 돼냐고 물었다.
그러자 심장 전문의 선생님이 남편이 아닌 나를 째려보며 말했다.
"보호자 분, 이렇게 환자 분이 괜찮다고 해도 이거 위험한 병이에요. 만약 뇌로 갔으면 뇌졸중. 심장으로 갔으면 심정지까지 갈 수 있는 병이라고요. 정신 차리세요!.”
아니, 제가 아니고 남편이 가겠다고 한 건데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눈빛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마치 내 잘못이라는 듯이. 후회가 밀려왔다.
먹을 걸 좋아하는 남편, 조금만 덜 먹으라고 할걸. 여기저기 아프다고 양치기 소년처럼 말하는 남편, 말을 조금 더 들어줄걸. 운동 가자고 하면 나 혼자 갔다 오라고 말하던 그 입을 꼬메버릴 걸.
왜 난 그러지 못했을까? 귀찮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의 병을 방치했다. 그래서 저런 눈빛을 받아도 당연했다.
남편도 단호한 의사 선생님의 경고에 겁을 먹었는지 아까부터 떠들던 입이 축 늘어졌다. 놀란 눈에 눈물이 고인 것처럼 반짝였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남편은 감정을 못 속이는 사람이니까.
그 모습에 그래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지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붉던 얼굴을 더 붉게 태웠다. 눈을 크게 떴다. 신경을 잔뜩 곤두 세웠다. 막 벽에 부딪혀 깨질 수 밖에 없는 토마토처럼.
아까 나를 불렀던 응급실 선생님이 다시 나를 불렀다. 나는 또 칸막이 쳐진 공간에 의자에 앉았다. 의사 선생님은 흘러내리던 안경을 다시 올리고 나에게 물었다.
"폐혈전증 이제 아셨죠? 그러면 보호자님, 여기서 입원하시겠어요? 만약 원하신다면, 더 큰 대학 병원에 연계해 드릴수도 있는데. 여기서 입원하시겠어요?"
나는 선택해야 했다. 지역 병원에 있을 것인가? 그래도 나중을 대비해 큰 대학 병원에 가야 할 것인가? 무조건 큰 병원이라고 생각했다.
"저희는 대학병원으로 갈게요. 확인해 주세요."
의사 선생님은 어리버리 했던 보호자의 머리가 갑자기 이상해진건 아닌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도 되시긴 하는데, 응급차는 따로 부르시는 거라서, 그 돈도 내셔야 해요."
"네. 그럴게요. 대학 병원으로 보내주세요."
처음으로 병원에서 큰 소리를 냈다. 낯가리던 내가 의사 선생님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낯가림을 넣어두자. 뻔뻔해져야 해.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한 말이 떠올랐다.
병원에서는 아프면, 어디가 아프다고 정확히 말해야 치료가 되고, 보호자가 되면 모르는 건, 모든 물어봐야 한다. 우리 엄마가 누구냐?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우리 아빠 외삼촌까지 모두 병원에서 병간호를 했던 사람이다. 병원에 관한 엄마의 말은 모두 국룰이었다.
또 다른 말도 있었다. 일단 병원에서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엔 대가가 따른다. 멍하게 처맞고 이거 할까 저거 할까 하다 보면 때를 놓칠 수도 있다.라고.
그 순간 나는 왜 그 말이 떠올랐을까? 알 수는 없지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무과에서 병원비를 지불하고 퇴원했다.다행히 가까운 대학병원에 자리가 있다고 해서 15분 떨어진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처음으로 응급차를 같이 탔다. 이 차에 내가 탈 줄이야. 아까 전화 통화를 하면서 들었던 요란하게 엠블란스 소리를 내가 듣게 되다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큰 병원. 가서 승준이 큰 주사 여러 방 맞자!"
"안돼~~~!!"
나만 정신 차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 병원에 가니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오전에 했던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니 이미 받고 왔는데요.라고 해봤자 소용이 없었다. 오전 내 검사를 하고 왔는데 다시 검사라니. 차라리 아까 거기서 입원할걸.이라는 후회를 하고 있을 때, 남편이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아, 아까 구급차에서 지역 병원 갈지, 대학 병원 갈지 물어봤는데. 나는 너 오기 편하게 지역 병원 간다고 했었는데. 그럴 거면 대학 병원 갈걸. 검사비 아깝다. 그렇지?"
그는 아프다. 나를 몇 번이나 다독였다. 하지만 환자가 배려는 무슨 배려야. 결국 네가 싼 똥이 나에게 투척되는구나. 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색하게 왼쪽 입꼬리를 올리며, 남편을 그윽하게 쳐다봤다.
"그래, 그랬구나. 잘했네. 우리 남편. 그럼 좀 조용히 있을까?"
"아, 어."
오전 9시부터 한 검사를 다시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 바람에 오후 6시나 돼서야 모든 검사가 끝났다. 역시나 결과도 같았다. 폐에 혈전이 생겼다는 것. 중환자 실에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입원 기간을 물으니 그건 주치의 선생님이 결정하는 거라 간호사분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혼란스러웠다. 처음 간 대학 병원에 입원인데, 일반실도 아닌 중환자 실이라니.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야, 중환자실은 무서운 곳이 아니야. 승준이처럼 관찰이 필요한 사람이 가서 괜찮은지 확인받고 오는 곳이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나는 뭘 해야 해?"
"너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환자는 아픈 사람이니까. 그리고 얼마나 불행 중 다행이니. 승준이가 운행 중이 아니라서 승객들이 위험하지 않았고, 바로 응급차가 왔고, 다른 장기가 아니고 폐에 혈전이 생겼고, 그게 발견 돼서. 앞으로 의사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다 돼. 모르면 알지? 엄마한테 물어봐. 엄마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있는 사람이잖아."
엄마의 말에 혓바늘처럼 솟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병아리가 놀다가 주변이 어두워져 버렸는데, 저 멀리서 반딧불이 불빛을 본 기분이었다. 계속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서, 용암처럼 부글대던 배도 잠시 가라앉은 것 같았다. 몰라도 돼가 아니라,모르면 엄마에게 물어봐라.라는 단순한 말이 나를 진정시켰다.
모든 검사가 끝나자 남편과 함께 중환자실 입구까지 올라갔다. 간호사가 나는 입구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와서 나머지 부분을 알려주실 거라고. 나는 남편이 들어가고 없는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대기실에서 의사 선생님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