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달라요.

달라서 엮일 수 있는 사이.

by 야초툰

남편과 나는 너무 다르다. 그래서 처음엔 신기함이 주는 신선함에 끌렸다. 문제는 결혼 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좋아하는 마음이 홑이불처럼 덮어두었던 그 다름이 결혼 시작과 동시에 벗겨졌다. 다름이 매력적이었던 관계에서 다르기 때문에 부딪히는 관계가 되었다.

전혀 다른 곳에 존재했던 세상이 만난 것이다. 서로 충돌하고 깎였다. 그러다 결국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 결혼 생활이란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것. 그 말은 동시에 다른 형태의 상처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남편을 너무 잘 알고, 그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 역시 게으른 나를 잘 알고,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어렵게 꺼낸 말이 복수의 형태로 돌아온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게 바라는 게 줄어들었다. 상대방에게 무심해지는 것이다. 우리 역시 오랫동안 동지애 비슷한 형태로 사랑을 굴려 나갔다. 모났지만 찐득한 형태로.


야초와 산책을 나갈 때도 그 다름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감지 않은 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손에 잡히는 아무 외투나 들고 현관문을 향하는 반면 남편은 바깥에 나가려면 예의를 차려야 한다며 화장실에 들어간다. 머리부터 감기 시작한다. 준비 시간만 20분을 쓰고 나서도, 핸드폰, 산책 끈, 야초 똥주머니까지 야무지게 주머니에 넣고 나서야 현관문을 연다. 물론 나는 밖에서 그런 그를 그저 기다린다. 심지어 보채지도 않는다. 나에겐 그게 일상이니까. 나는 기다리고, 그는 종종거리는 결혼 생활.


그가 나오면 나는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를 부른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끝도 없는 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건 대화가 아니다. 남편이 혼자 떠는 수다의 장. 그는 수다로 나를 찌르고 나는 영혼 없이 "그래? 그랬구나"를 반복해서 방어한다. 서로의 역할이 다른 배우처럼. 그의 대화는 나에게 물수제비 같다. 스쳐는 지나가는 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 그런 파동.


결국 남편은 무신경한 나에게 지쳐갔고, 나는 그가 나에게 수시로 보내는 감정 신호에 지쳐갔다. 그러다가 생각했다. 그가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건 어쩌면 외로움의 다른 형태가 아닐까? 라는 단순한 결말.

사람에게 집착하게 되는 건 결국 외로움의 표현이니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남편을 바꿀 수 없다면, 기획하자. 나를 향한 화살표를 쪼개서 양분하자. 여러 가지 취미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럼 그는 외롭지 않고,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있으니. 그래서 남편을 엄마에게 맡겼다. 뜨개를 소재로 글을 써야 하니 남편을 가르쳐 달라고.


그런데 남편이 뜨개를 배우고, 무언가 그의 안에서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끌려오는 소였는데, 나에게 계속 뜨개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핸드폰을 들고 찍어달라고까지 한다. 자신이 성장하는 시간을 기록으로 만들고 싶다고. 같은 시간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우리가, 뜨개를 하는 순간에는 같은 장소에 모였다. 남편은 뜨개를 하고, 나는 그 모습을 찍고.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내가 이렇게 만들까?"라고 물었더니 남편이 해보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매번 "이거 해볼까?" 하면 안 돼, 어려울 것 같다고 한사코 거절하던 남편이었는데. 처음엔 며칠이나 가겠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며칠이 한 달이 되고 두 달이 되고 이젠 일 년이 되었다. 그만큼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쌓였다. 우리는 너무 다름에 서로에게 무뎌졌던 시간이 다름으로 인해서 행복한 시간이 된 것이다.


그는 이제 나를 존중하고 나도 그의 영역을 배려한다.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며 무늬를 만들어가듯이 어쩌면 뜨개는 우리의 인생에 새로운 챕터를 펼치고 있는 게 아닐까?

뜨개인의 로망이 부부가 같이 뜨개하는 거라는데, 우리는 뜨개를 찍는다. 많지 않은 남자 뜨개인으로서 남편이 나아가는 그 길에 나는 꽃가루를 날리는 역할을 하기 위해 꾸준히 쓰고 기록하고 뜨개인의 생활을 낱낱이 파헤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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