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나를 좋아하게 되었어.
15년 넘게 목소리로 돈을 벌었다. 호텔 예약 실에서 전화로 손님을 응대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목소리를 쓰면 쓸수록 내 것이 아닌 기분이었다. 내가 내는 소리인데, 다른 곳에서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웃기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웃는 웃음소리, 미안함보다 귀찮음이 가득 찬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식으로 꾸며진 목소리가 가시가 박힌 듯 내 목을 찔러댔다. 승진하고 나서는 더 내 목소리가 싫어졌다. 승진한다는 말은 결국 더 많은 불평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고, 그 말은 즉 가식적으로 목소리를 꾸며야 한다는 이야기니까.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내가 내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같이 일하는 직원을 혼내고, 비난하고, 사과하고. 다시 타 부서에 사과하고. 반복되는 행동으로 얻는 건 자괴감뿐이었다. 하루 종일 사과하는 사람의 마음속 불행이 싹을 틔우듯,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화초를 화분에 키울 때도 행복한 말을 해야 잘 자라는 것처럼, 나는 나를 향하는 날 선 비난과 직원들에게 뿜어대는 독기에 시들어 갔다. 정말 말이라는 건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는 것처럼. 그래서 일을 그만뒀다. 문제는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데, 이제는 내 목소리 자체가 싫어졌다. 그냥 편안하게 내는 소리도 가식이 섞여 있는 것처럼 들렸다.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아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전화받고 거는 일에서 멀어졌다. 가능하면 남편을 시켰다. 심지어 남편과 유튜브 촬영을 했을 때도, 나는 내가 나온 촬영본을 보지 못했다. 내 목소리를 듣기 거북해서. 남편은 그런 나를 놀리듯 계속 옆에서 동영상을 틀었고, 그때마다 나는 도망쳤다.
그런데 갑자기 팟캐스트라니. 목소리로 하는 방송을 하게 되었다. 시작은 단순한 충동이었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형식의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충동. 아마 그 생각의 발단은 센과 치히로 공연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형 뮤지컬 공연을 사람 손으로만 연출하는 무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하늘을 나는 신의 움직임도, 석탄을 든 먼지들도 모두 다 사람이 든 막대기로 만든 무대라니. 사람이 줄 수 있는 그런 감동이었다. 뜨개도 마찬가지였다. 기계로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이 만듦으로 인해 자신이 뜨는 시간을 선물하는 게 아닌가? 그럼, 우리도 우리가 만들고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목소리로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충동적인 생각.
물론 혼자였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말 많은 남편이 옆에 있으니, 내가 어설프더라도 어느 정도 상호 보완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설프게나마 남편과 팟캐스트 채널을 오픈하게 되었다. 대본도 없었다. 주제도 대충 뜨개질하는 이야기, 우리 부부 이야기, 내가 쓴 단편 소설 읽기 등 해보자고 말만 했다. 남편은 또 자신을 끄는 소에 끌려 옆에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리가 매일 하는 수다를 녹음하는 거라고 말하니 남편도 떨지 않고 평상시처럼 수다를 떨었다.
아이폰에서 하는 녹음은 Garage Band 어플로 하라고 해서, 남편과 나는 뚝딱이며 24분을 채워서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남편이 녹음하고 같이 들어보자고 하는 게 아닌가. 솔직히 도망가고 싶었지만, 녹음본을 올리기 위해서 녹음한 사람이 들어야 하는 건 당연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남편에게 틀어보라고 했다. 정적과 동시에 녹음본에서 남편과 섞여서 내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놀랐다. 녹음된 파일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예전에 내가 알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거짓 웃음을 짓고, 사과하던 목소리가 아닌 단단한 울림을 내는 소리였다. 부드럽지만 심지가 깊은 목소리. 이 목소리가 내가 듣던 목소리가 맞나? 싶어서 남편에게 물었는데, 남편이 내 목소리가 맞단다.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일렁였다. 혼잣말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였으니까.
“여보, 내 목소리 좋다. 정말 좋아.”
“그래. 내가 말했잖아. 여보 목소리 좋다고.”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15년 동안 싫어했던 목소리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그 목소리가 좋게 들리다니.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바꾸어 놓았을까? 목소리가 수년간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야, 너는 예전에 네가 아니야. 잘 들어봐. 너 생각보다 더 단단해졌어.
피했기 때문에 듣지 못했던 목소리가 들렸다. 나에게 똑바로 살라고 소리 지르던 손님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보이지 않아도 전화기에 대고 머리를 조아리던 내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이 무심코 만들었던 발자국이 생각지도 못한 길로 안내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우연히 시작한 길에서 발자국을 보게 되었다.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는 목소리가 싫었던 게 아니었다. 나를 미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 마음을 목소리에 담았을 뿐. 나는 15년 동안 목소리를 팔았다. 이제야 목소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고마워. 나를 위해 열심히 소리 내줘서. 이젠 나는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아. 너 때문에 내가 좋아졌거든. 앞으로 우리 더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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