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덕분에 뜨개요

무심코 시작한 취미에 코꼈다.

by 야초툰

뜨개의 시작은 단순했다. 글을 위한 소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을 타고 항해하는 보트처럼, 나를 알 수 없는 곳에 떨구고 떠났다. 바람이 몹시 부는 계단 위. 지금 나는 여기 어디를 외치는 순간. 멀리서 괴종시계가 자정을 알린다. 아니 여기는. 신데렐라가 벌써 신발을 두고 떠났을 그 계단 위였다. 그곳에 내가 서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 앞에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있긴 하는데, 신데렐라가 아니네.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내 발끝에서 무언가를 뜨고 있다. 저건 모자인가? 그 순간 그의 등 뒤에는 적혀 있는 문구가 눈에 띈다. "뜨개렐라." 뜨개렐라라고? 백마 탄 왕자님을 바라지도 않았다. 그런데 신데렐라가 아닌 뜨개렐라니. 마법이 아직 풀리지 않은 듯, 떠나지 않는 뜨개렐라에게 나는 소리친다.


"여보, 제발 잠 좀 자자. 나 진짜 졸려."

뜨개렐라는 내 외침을 듣지 못하는 듯, 뜨고 있는 동전 지갑에 콧수를 세고 있다.


"조용히 해! 나 콧수 헷갈린다는 말이야. 하나, 둘, 셋."


인과응보. 불평하는 나에게 엄마가 한 말이다. 네 욕심 때문에 남편을 뜨개 세상에 밀어 넣었을 때, 그만한 각오를 하지 않았느냐고. 당연히 하지 않았다. 남편이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으니까. 성격 급한 소띠 아내가 느긋한 소띠 남편을 채찍질하며 뜨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워낭소리가 아닌 나를 원망하는 소리를 더 들었었는데.


'도대체 뜨개가 뭐라고, 남편이 이렇게 심취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전혀 다른 곳에서 원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만났고, 교차점을 만들고 싶었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교차점 찾기에서 우리는 충돌하고 깎였다. 너무 달랐던 우리였기에. 그러다 결국 상처만 남겼다. 다시는 교차점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졌다. 익숙해진다는 말은 다른 말로 다른 모양의 상처를 갖게 된다는 말이었다. 나는 남편을 너무 잘 알고, 남편 역시 내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서로에게 바라는 게 줄어들었다. 상대방에게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말이 낯설어졌다. 사랑보단 동지가 더 익숙해졌다.


그러다 우리는 뜨개를 만났다. 서로에게 관심 두지 않았던 일상에 질문하게 되었다. 오늘은 몇 시에 와? 오늘은 뭐 만들 거야? 나 지갑 디자인해 봤는데, 우리 같이 만들까? 나를 향한 화살표를 쪼개서 남편에게 양분했다. 그랬더니 이젠 키가 190이 넘는 남편은 한주먹도 안 되는 코바늘을 들고 방 안에 앉아 있다. 그는 뜨고 나는 그가 뜰 편물을 디자인한다. 오케스트라에 각자 정해진 역할이 있듯이, 불협화음을 내던 우리가 아주 가끔 어울리는 소리를 낸다. 버스 운행이 끝나면 남편은 집에서 뜨개질할 생각에 신이 나서 온다. 나는 남편과 뜨개 영상을 찍을 아이디어를 생각한다. 거친 해라실을 면 실에 엮어서 가방을 만들 듯, 우리도 엮여간다. 둘에서 하나가 되듯이. 어쩌면 나와 남편에게 뜨개는 우리가 놓쳤던 교차점이 아니었을까?


나는 방향치지만 다행이다. 남편은 운전을 잘해서.

나는 성격이 급한데 다행이다. 남편이 꼼꼼해서.

나는 무뚝뚝한데 다행이다. 남편은 다정해서.

남편은 예민하지만, 덕분에 뜨개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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