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달력을 뜯어내자
그곳엔 1월의 흰색 달력대신
그 끝이 보입니다.
좋은 한 해를 보냈습니다.
여태 보냈던 많은 해(年) 중에서
가장 뜻깊은 해였습니다.
좋은 일이 많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지만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제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던 일이었습니다.
아물었다 생각했던 흉터에 칼을 대고 안을 헤집어
그 속에 박힌 조각들을 꺼내는 고통스러웠던 그 작업이
지금의 저에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 건
부끄럽게도 불과 얼마 전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반성과 용서를 위한 용기,
그리고 지난 일들에 대한 구원과 위로를
당신에게서 받았었습니다.
그러한 은총을 과거의 흉터들과 직면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달력의 한 장을 걷어내는 것이 아닌
걸어둔 달력을 떼어내야 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다시 그 달력을 떼어내야 하는 시간이 올 때까지
아득히도 먼 길을 걸어야 하겠지요.
그 길이 쉽고 평탄한 길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힘들고 고된 오르막길이어도 좋습니다.
예전처럼 ‘한 말씀만 하소서’라 하며
투정 부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길을 의심치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굳건한 믿음만을 제게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