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길거리엔 낙엽이 흩날리고 있었다. 요한은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있었다.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쓰디쓴 블랙커피와 함께. 카페에서는 최근 유행하는 사랑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퍼져 나오고 있었다. 요한은 애써 그런 음악들을 듣지 않으려 했지만, 음악은 마치 벽을 뚫고 나오려는 좀비 떼 마냥 요한의 귓속을 파고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요한은 커피를 마셨다. 쓰고, 독했다. 박카스만 마셔도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대서, 음료를 마실 때면 카페인 함량을 확인했던 그였다. 그런 그가, 커피를 사서 마시고 있었다. 요한의 표정은 커피만큼 검게 변해있었다.
그의 시선은 나무 울타리 너머 길거리를 향해있었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요한의 눈에는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너무 좋아 보여서, 그는 마치 사람들과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았고, 동시에 세상의 평화를 위해 자신이 그들의 슬픔과 걱정거리를 대신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이 너무 과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며 요한은 커피를 한 모금 살짝 마셨다. 썼다. 여전하게도. 입안을 맴도는 커피의 씁쓸하고 시큼한 맛이 아직도 요한은 익숙지 않았다.
요한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 안의 담뱃갑을 만지작 거렸다. 담배를 끊기로 약속했었는데, 쉽지 않았다. 자주 생각이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 담배가 마치 칼로 찌르듯, 그의 머리에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때도 독한 마음을 먹고 피지 않았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고작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밖으로 보고 있는데 담배가 생각이 나다니.
그러던 중 덜컥, 하고 테라스의 문이 열렸다. 누군지 뻔했다. 들어온 사람은 아영, 요한의 소꿉친구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한 손에 반숙 계란 프라이와 버터로 구운 식빵이 담겨있는 작은 접시를 들고 있었다.
“먹어.”
하고 아영은 그릇을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려놓고 그의 옆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담배를 주머니에서 꺼내 입에 물고 얼굴을 살짝 기울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 다음 코로 연기를 내뱉었다. 요한이 커피를 마시면서 말했다.
“여긴 금연 구역인데요.”
그녀는 못 들은 척 담배를 계속 폈다. 요한은 토스트를 들고 노른자가 깨지지 않게 조심스레 가장자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계란 밑에는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으로 만든 칩과 잘게 자른 생 파슬리가 숨겨져 있었다.
“이제야 완벽한 계란 반숙을 만들 수 있게 됐네.”
“신경 좀 많이 썼어. 금연 중이잖아. 맛있는 거 먹으면 담배 생각이 덜 나겠지.”
“금연 중인 사람 옆에서 맛있는 담배 한 모금이라.”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해주는 게 최고의 위로라고 생각해.”
“이제 반숙은 완성했으니까 노래 취향을 바꿀 차례네. 요새 카페에선 재즈 아니면 뉴에이지라고.”
“알 게 뭐야, 여기 찾아오는 사람이라곤 나 밖에 없는데?”
그렇게 말하며 아영은 씩 웃었다. 요한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노른자가 올려져 있는 토스트의 가운데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노른자가 녹아내리듯 요한의 입 안으로 들어와 커피의 쓴 맛을 그의 목구멍 깊숙이 끌고 들어갔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글쎄.”
“혹시라도 그 애 만나러 간다고 하면 내가 널 죽이든 걜 죽이든 아니면 내가 죽든. 최소한 셋 중 하나는 무조건 죽는 거야.”
“세상에나.”
요한은 토스트를 우물거리면서 어깨를 으쓱하고 올려 보였다. 아영은 요한을 슬쩍 노려보며 담배를 다시 한 모금 빨아들였다. 요한은 아영의 행동과 표정에서 ‘잔소리를 할 거야.’라는 그녀의 속내를 읽어냈다. 요한은 아영의 시선을 피해 눈길을 돌렸다. 거리의 사람들이라던가, 낙엽이라던가, 완벽한 반숙 계란과 함께한 토스트라던가, 맛없는 블랙커피라던가.
“가끔은 ‘더럽게 힘들다, 죽을 거 같다, 그 년은 날 버리고 절대 잘 못 지낼 거야, 걔가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같은 말도 좀 해. 이 답답아.”
아영이 요한에게 쏘아붙이듯 이야기하며 담배를 땅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껐다. 요한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 쓴 커피를 삼켰다. 식은 커피는 따뜻한 커피보다 더 쓰고 셨다. 그래도 아영의 말에 대답하는 것보다는 달달한 맛이었다.
“왜 그렇게 이야기해. 그냥 헤어진 거야. 헤어질 수도 있는 거지. 안 맞았던 거야. 그냥.”
“아주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 납시셨네.”
아영이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려다 한숨을 푹 쉬며 다시 담뱃갑에 집어넣었다.
“아픔에 겪고 있는 친구에겐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해야겠지만 아무도 안 오는 망한 카페에 굳이 찾아와서 유튜브를 즐기고 있던 저한테 일거리를 준 손님께는 최대한 정중하게 이야기를 하겠어요. 정신 차리세요. 제발.”
그렇게 말하고는 아영이 답답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요한이 뭔가를 말할 게 있다는 듯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아영은 거칠게 요한의 팔을 뿌리쳤다. 그 바람에 의자가 넘어졌는데, 아영은 의자를 내버려 두고 테라스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돌아갔다. 요한은 넘어진 의자를 일으켜 세우면서 곁눈질로 아영을 보았다. 아영은 요한을 흘겨보며 가방에서 구취제거 스프레이를 꺼내고 있었다.
“아니, 불러낸 건 너잖아. 이러려고 불러냈냐. 힘든 건 내가 힘든데, 왜 네가 더 힘들어하냐. 남 속도 모르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요한은 남은 커피를 원샷하고는 다시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뱃갑을 만지작 거렸다. 그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